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쿠바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캐리비안 해에 있는 멋진 섬나라라는 건 어디서 얼핏 들었을 것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 훌륭한 몇몇 야구 선수들 정도면 양호하다. 당신이 시사나 역사에 좀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3차 세계 대전 직전까지 몰고 갔던 쿠바 핵미사일 배치라던가 아직 오바마가 대통령이던 시절 미국과의 오랜 적대를 멈추고 국교를 맺었던 것도 알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가 그것을 얼마나 고까와 하는 지도.)


만약 당신이 문화적 소양이 깊다면, 혁명 이후 자취를 감췄던 쿠바 음악인들의 열정적 공연을 담아낸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떠올릴 것이다. ('석봉아'로 유명한 밴드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 애연가라면 쿠바산 시가도 빼놓을 수 없다. 물리적·정서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당신 일상엔 이미 쿠바의 편린(片鱗)들이 흩날리고 있다.


이렇게 드문드문 떠다니는 조각들로 한 나라를 파악했을 때의 폐해는,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했을 때의 문제점과 유사하다. 상대방을 '일상을 영위하는 존재'가 아닌, '일탈적 존재'로 파악하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맞는 행동을 해주길 기대한다. 라틴 박자의 맞춰 춤추는 쿠바인, 야구를 잘하는 쿠바인, 시가를 입에 문 쿠바인, 체 게바라와 카스트로의 후예로 혁명을 부르짖는 쿠바인! 오호, 마치 스타크래프트를 미친듯이 잘하고, 수학과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샤이한 한국인들을 보는 기분이랄까.


p.31 아바나에서 밤낮의 바뀜은 이데올로기적이다. 당신은 현대의 아바나에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동시적 세계를 이루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눈앞의 현실을 초현실적인 마주침, 경이로 받아들었던 것이다.


백민석 작가의 <아바나의 시민들>은 이러한 기존의 쿠바인들에 대한 편견을 배반하지도, 그렇다고 계승하지도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여행기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묘한 긴장 사이, 온전한 통제도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도 영위하지 못하는 경계의 나라 쿠바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다.


p.136 당신이 좋았냐고 묻자 아바나에는 뭐 볼만한 자연경관이 없잖아, 라고 했다. … 아바나의 진정한 볼거리는 자연경관이나 유적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아바나의 현재를 구성하는, 과거를 짊어지고 미래를 향한 시민들인데.


이 책에서 작가는 '당신'이라며 독자에게 말을 건다. 하지만 사실상 이 '당신'은 작가 자신이다. 자신의 경험에 2인칭을 덧붙여 우리를 쿠바의 아바나 시 어딘가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에 더불어 생생한 사진들이 완벽한 짝을 이룬다… 기계 눈으로 포착한 사진들에 작가의 덤덤한 듯 자상한 설명이 덧붙여 지며, 나는 어느새 가보지도 않은 쿠바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p.155 쿠바에서는 스펙터클한 대자연의 장관이 언제나, 다양하게 펼쳐진다. 당신이 알던 그 태양이 아니고, 그 구름이 아니고, 그 파도가 아니고, 다신이 알던 그 하늘이 아니다. 아바나에서 황도를 가로지르며 당신의 정수리를 태우는 그 태양은 전혀 새로운 태양이다. 쿠바는 햇볕이 강하고 대기오염이 적은 탓에, 카메라로 피사체를 겨냥할 때마다 명암의 멋진 대비를 맛볼 수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셔터만 눌러도 사진이 되어 나온다.


강렬한 태양, 맑은 하늘, 그리고 바다와 사람들… 피사체들에 목마른 사진가들에겐 쿠바의 아바나는 천국과 같은 곳일 것이다. 다만, 백민석 작가가 포착하려는 것은 쿠바는 배경 앞 멋진 모델들의 전경도, 유명한 유적지와 관광지도 아니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이곳에서 퇴색해버린 도시와 다양한 인종들이 자아내는 미묘한 감상들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며, 그 간격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 또한 제시한다.


p.309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생산의 실천에 익숙하다. 아바나의 시민들이 어딘지 모르게 당신보다 행복해 보인다면, 이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은 우연히도 대중매체가 시원찮은 아바나에서 태어나 살게 되었고, 필연적으로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겐 쿠바가 그저 먼 나라이고, 어떤 관광객에겐 쿠바는 그저 와이파이도 잘 안 터지는 불편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민석 작가는 그 불편함에서 오히려 즐거움과 행복을 본다. 대중매체가 시원찮아 스스로 즐거움을 생산하게 된 쿠바인들은 지금 우리가 산업화를 거치며 어느새 잃어버린 '생산'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p.233 당신이 한국에서와 똑같이 생활하고 싶다면, 아바나가 싫어질 것이다. 당신의 영혼이란 변화를 싫어해 습관과 규범에 묶여 있고, 귀가 얇아 통념에 휘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코디네이터의 말처럼 이런저런 영혼의 족쇄를 훌훌 벗어던질 수 있다면, 당신은 아바나에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물론, 자본의 힘을 빌어 더 나은 일자리를 얻고,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일이다. 허나 그 과정에서 내가 왜 살아가는지, 어떤 것에 기쁜지조차 사유할 기회조차 잃어버린다면 그만큼 애석한 일이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면, 아바나의 시민들의 삶은 당신을 회복시킬 실마리를 제시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델라이언 : 우리들은 내면에 사자의 송곳니를 품고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한가 악한가? : 추리 소설의 질문


p.28 어린아이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잔혹하다. 인간은 원래 타고나길 파괴 충동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더할 나위 없이 흉악하고 난폭한 생물이다. 남자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곤충과 작은 동물들을 밟아 죽인다. 여자아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풀을 잡아 뽑고 꽃을 봉오리째 꺾어버린다.

어린아이는 이윽고 예의범절과 정서 교육에 의해 '가엾다'는 개념을 이식받고, 살아 있는 생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친다. 그리하여 금지된 행위에는 심리적인 제동이 걸리고, 함부로 산 생물을 죽이는 짓을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죽여선 안 된다는 것은 가르쳐도, '왜 안 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

단지 인간의 흉악하고 난폭한 본능이 드러나지 않게 막고 있을 뿐이다. 떨어지면 위험한 깊은 구멍 위에는 뚜껑을 덮어두는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감쪽같이 숨겨도 구멍은 늘 그자리에 존재하고, 누군가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어떤 찰나에 뚜껑이 벗겨지면, 그 깊은 구멍은 곧바로 모습을 드러내어 입을 쩍 벌리고 사람을 집어삼킨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개인적으론 악하다는 쪽을 지지한다. 인간에게 '교양'이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 혹은 교양 따위는 챙길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일어나는 잔혹한 일들을 보았을 때 애초에 인간이 선한 존재라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추리·스릴러 소설들은 우리의 사악한 본성을 덮어두는 뚜껑이 벗겨졌을 때 일어나는 일들과 또다시 그 벌어진 일들을 덮어내기 위한 기만의 장막을 걷어낸다. 주로 기묘한 살인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 장르의 소설들은, 단순히 잔인하게만 보였던 사건들 사이에 치밀하게 짜여진 내막을 목도했을 때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인간의 심리는 물론, 범죄에 대한 지식과 탄탄한 반전이 있어야 하기에 추리 소설은 쓰기 어렵다. 그럼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가와이 신지다.


나약한 외모 속에 숨겨진 사자의 송곳니 : 단델라이언


p.387-388 단델라이언.
영어로 민들레를 가리키는 단어. 그 의미는 사자의 이빨 또는 사자의 송곳니. 그렇게 귀여운 꽃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사납기 그지 없는 이름이 붙어 있다니, 나는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민들레가 가엾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단어의 의미를 모순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제아무리 나약한 생물일지라도 무언가 한 가지가 어긋나버리면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흉포한 송곳니를 맹수처럼 드러낼 때까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 지금의 나처럼…….


가와이 신지 최신 작인 「단델라이언」은 영리하게도 '기묘함'과 '사실성'을 잘 배합한 작품이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대학생 '히나타 에미',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환경주의 모임 '민들레 모임' 그러나 그 만남의 끝은 16년 만에 미라화된 시체로 발견된 히나타 에미였다. 그녀는 어느 방치된 목장의 사일로에서 공중에 떠있는 채로 복부가 쇠파이프로 관통되어 사망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보수계 야당인 민생당의 국회의원 모토야마의 비서 가와호리가 고층 호텔의 옥상에서 불에 타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이 도망칠 수 없는 밀실이었다는 것, 그리고 피해자 두 명이 '민들레 모임'의 멤버였다는 것. 형사들이 수사를 진행할 수록 '민들레'라는 순박한 이름에 감춰진,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과연 인간은 스스로의 욕심과 이상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을까?어떤 일까지 저지를 수 있을까?앞서 말했던 '폭력적 본능'을 지닌 인간들은 상식과 도덕으로 인해 그들 속의 깊은 심연을 덮어놓은 채 산다. 가와이 신지가 전작의 「데드맨」에서 컬트적이고 기묘한 이야기 구성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에선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생명마저 수단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의 심리와, 예정된 파멸의 운명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는 여러 우연들에 더 집중한 것 같다. 그렇게 내면의 송곳니를 천진난만한 도덕의 외피로 숨긴 우리들은 모두 단델라이언(Dandelion)이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


p.414 "저,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싫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다. 인간 속에는, 살아남기 위해 기르고 있는 악마가 있는 거다, 때때로 인간은 그 악마에게 자기 자신이 먹혀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그 악마와 결별하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들은 형사로서 살아가는 거라고."


가와이 간지 소설의 매력은, 코난이나 김전일 같이 '트릭을 위한 트릭'이 아니라 인간이 '범죄'라는 진창에서 벗어나기 위해 쥐어짜낸 마지막 삶의 발악이 느껴져서다. 소설 속에 악인(惡人)은 존재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지금도 뉴스에 틀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별 감흥이 없다. 온전히 악하다고 할 수 없는, 오히려 피해자의 가까운 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며, 가슴 속에 연민을 자아내게 한다.


뻔하지 않은 트릭, 흔하지 않은 이야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가와이 신지, 단델라이언을 포함한 가부라기 형사 팀의 이야기인 <데드맨 시리즈> 외에도 다양한 그의 작품이 있다고 하니 이번 여름을 그의 작품으로 불태워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흉터의 꽃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흉터의 꽃 : The Life Must Go On


1. 아무리 모진 일이 있어도, 다시 살아나는 뿌리처럼

우리 민족은 종종 민초(民草)라 불린다. 그 이유는 질긴 생명력을 지닌 풀처럼, 외세의 침략 등으로 인해 국가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끈질기게 삶을 유지해서다. 그러나 민초의 자생력이 곧 국가 붕괴를 정당화 시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자생력이라는 이름 아래 감추어진 멸시와 착취의 서사 또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김옥숙 작가의 흉터의 꽃은 흉터로 상징되는 원자폭탄에 따른 피해에도 불구하고 인생이란 꽃을 피워낸 민초들에 대한 찬사를 담은 책이면서, 동시에 그 지옥 같은 삶에서 표출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고발하는 작품이다.


2. 버림받은 국민, 외면 받는 인생

흉터의 꽃은 액자식 구성으로, 아버지의 고향 합천에서 왜 이토록 원폭 피해자가 많은 지에 대해 취재하며 소설을 써내려가는 정현재와, 4대 째 원폭으로 인해 고통 받는 강분희, 박인옥의 한 많은 삶이 교차되며 진행된다. 처음엔 왜 강분희의 아버지인 강순구가 왜 일제강점기에 고향 합천을 떠나 히로시마에 온 가족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 아니 생존조차 할 수 없도록 철저히 버려진 국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실패한 국가 조선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분노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자폭탄으로 인해 얼굴의 반이 화상을 입어 일그러진 분희를 괴롭히는 건 일본인도 아니고, 해방 뒤 그녀가 돌아간 조국 대한민국이다.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웃들이 아닌, 그녀의 남편과 시댁 식구들이다. 피폭으로 인해 약해진 몸으로 낳은 아이들이 얼마 안 지나서 죽어버리면 모든 비난은 아내의 몫이다. 남편이라는 작자들은 술에 취해서 때리거나 돈 내놓으라고 성화다. 작가는 한국의 가부장주의가 유독 여성 원폭 피해자들에게 더욱 가혹한 환경을 만든 것을 고발한다.


3. 원자폭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다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일본, 동아시아 내에서 입지를 잃지 않기 위해 원폭을 터트린 미국, 자국 원폭 피해자들을 돌봐주기는커녕 무시로 일관한 대한민국, 원폭 피해자들을 멸시하고 심지어 폭행을 일삼는 가족들. 흉터의 꽃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그들은 사랑 하나만으로 극복하고 일어선다. 우리는 항상 사랑 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을 언제나 사랑 할 수는 있다. 사랑 받는 객체에서 사랑 하는 주체로서의 발돋움, 그 과정에서 불완전한 자기 자신까지 사랑하게 되는 기적을 이 책에서 볼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 사랑은 기술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다. 앞에 말한 가부장주의라는 권위주의적이고 가족구성원을 착취하는 문화에 젖어 사랑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역설적으로, 원폭 피해로 인해 육체적인 한계가 명확한 이들이 더욱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이나마 이웃에게 기여하려며 살아간다. 원자폭탄이라는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건 완벽한 치료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주위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흉터의 꽃은 보여준다.


4.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연약한 신체에도 불구하고 원폭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려고 노력한 고 김형률 씨야말로, 이런 사랑의 힘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이다. 원폭 2세 피해자로 촛불처럼 간신히 삶의 불꽃을 지키던 그가, 횃불 같은 열정으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장면이 바로 이 소설의 백미라고 본다. 비단 원폭 피해자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삶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수많은 비극들이 있다. 각자 비극의 당사자이기도 한 우리가, 그 고통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그래서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p.191 "뿌리만 살아 있으마, 살아갈 수 있는기라. 내 말 무슨 말인 줄 알제?" … "아무리 모진 일을 당해도, 뿌리라도 살아 있으마 된다, 분희야."

p.68 원폭이 터지는 꿈을 꾸는 모양인지 누군가 고함을 질렀다. 비통한 여자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는 기괴하고 음산했다.
영문도 모른 채 졸지에 당한 일이었다. 개미나 벌레보다 못한 목숨. 폭우에 휩쓸려 내려가는 풀포기보다 하찮은 것이 사람의 목숨이었다. 강순구는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한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온 죄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도둑맞고도 넋을 놓고 있는 바보 천치 같은 나라, 저만 살겠다고 자식을 내팽개친 부모 같은 나라, 조선의 백성으로 태어난 게 죄라면 죄였다.

p.447 인간이 하는 행동 중에 가장 어리석고 끔찍하고 추한 것이 바로 전쟁이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사랑이 아닐까. 사랑만이 전쟁과 죽음을 이길 수 있다. 사랑은 원자폭탄보다 힘이 세다. 사랑만이 원자폭탄을 이길 수 있다. 오직 사랑만이.

p.393 삶은 금방 깨지는 유리컵처럼 연약했다. 살아 있는 순간만이 유일한 진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 살아서 밥을 먹고, 살아서 노래를 듣고, 살아서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한 시간이라도 더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누군가를 보살펴줄 힘이라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p.287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것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존재했던 시간,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만이 강분희 할머니에게는 살아 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는 말임을 나는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어쩌면 강분희 할머니는 이 길고 긴 이야기를 통해 박동철이라는 한 남자에 대한 고백을 한 건지도 몰랐다. 나를 사람 대접 해줘서 고마웠노라고, 사랑해주어서 고마웠노라고, 나를 살 수 있도록 해줘서 고마웠노라고. 어쩌면 박동철과 강분희 이 두 사람은 그 원폭의 지옥 속에서도 죽지 않는 꽃 한 송이를 피워낸 것인지도 몰랐다. 시들지 않는 노란 꽃송이 하나, 죽지 않는 꽃, 그것은 사랑이었다.

p.421-422 "고통을 겪은 자만이 그 고통의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 "고통은 고통을 겪은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 원폭 피해 당사자인 우리들이…… 스스로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싸워나갈 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 다시는 이 땅에 핵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 원폭 2세 환우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올빼미 농장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9
백민석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은 올빼미 농장

내 어렸을 적 친구는 앵무새들을 키우며 살았네.

울타리도 지붕도 없는 이상한 집에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려는 에로스와 자신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타나토스 간의 긴장 속에 살아가는 존재다. 둘은 기계적으로 균형을 이루지 않고, 종종 한 쪽에 힘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가능한 평형을 맞추려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시도는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에로스의 끝, 그곳에는 성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타나토스의 끝에는 죽음의 세계가 존재한다. 너무나 강력한 에로스를 누리다가 상실해버린 사람은 그만큼의 빈 공간을 자기 파괴적 충동인 타나토스에 내주기도 하는 등 두 에너지는 표현되는 방식만 다를 뿐, 그 성질은 유사하다.

백민석 작가의 죽은 올빼미 농장은 에로스와 타나토스 사이 휘둘리는 인간의 작태를 관찰할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잘못 배송된 편지의 발송지인 죽은 올빼미 농장을 찾아나서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시에서만 자라왔던 그에게 농장은 기분 전환삼아 가는 곳이었다. 아파트먼트 키즈가 지니는 날 것, ‘자연에 대한 동경이었을까? 하지만 농장에 대해서 알려고 하면 알수록 미궁에 빠지게 되고, 공교롭게도 그것을 기점으로 그의 일상이 균형이 어긋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남자임을 벗어나고 싶은 작곡가 후배, 부유한 아버지의 지원을 통해 가수로 데뷔하려는 여고생, 뽕짝을 벗어나 제대로 된 기획사를 차리고 싶은 김실장각자의 에로스들은 폭죽처럼 자신의 빛을 내며 섞여 들어간다.

그 중, 가장 크게 빛나고 싶었던 한 별은 이내 자신의 빛을 잃고 그 상실감은 그 주변에 거대한 블랙홀을 드리워 폭력과 죽음의 길로 자신의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모순을 버티지 못한 이의 죽음에 목도한 주인공은 이라는 모순과 미스터리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가야하나는 고민 속에서, 주인공 자신이 품고 있었던 모순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얻게 된다.

2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중편 소설에서, 그 짧은 분량치고는 많은 향기를 이 책 속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행, 무의미한 섹스,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복잡해지는 미스터리 등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는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순례를 떠난 해, 상실의 시대, 해변의 카프카 등 하루키의 저작들을 재밌게 읽었다면 이 책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방식에 큰 낯섦을 느끼지 않으리라고 본다. 정신병, 상실감 등 소설을 풀어감에 있어 주요 소재가 겹치는 게 이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종종 목도하지만 우리가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는 부조리에 대한 조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 책을 높게 판단한다. ‘죽은 올빼미 농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샘이 말라버린 들판과, 주인공과 그의 오랜 친구가 들른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등 버려지고 방치된 상실의 공간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들어나는 소설이었다. 그 농장과 아파트는 누군가의 터전이고 고향이라는 점에서, 태어는 났으나 결코 자신이 태어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스티븐 더수자.다이애나 레너 지음, 김상겸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는 선언을 한 이후로, 우리는 ‘힘’으로써의 지식에 탐닉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성장보다 더 높고 강한 지위의 성취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원래 목적마저 상실한 채로 그야말로 ‘입시 지옥’이 되었다.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들이 이런 ‘채우는 지식’, ‘경쟁하는 공부’에 익숙한 이들이라는 것은 좋은 일이기만 할까? 대개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자신들이 기존에 알던 것에만 집착하고 새롭게 닥친 위기에 대한 반응이 굼뜨다는 것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알고 있다.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은 이런 ‘지식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 대해 처방전이 되어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론 왜 굳이 ‘팀장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라는 겸손한 제목을 붙였는지 의문이다. 이 책의 타이틀은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책은 ‘모르는 것(Not Knowing)'에 대해 두려워하고 배제하기 보단,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법에 대해서 알려준다. ’모르는 것‘은 수학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만 그 자체의 질서가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대답해줄 수 있는 그런 ’난해한 문제‘와는 다르다. 애초에 유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많은 아이디어가 충돌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맥을 못 추는 그런 ’복잡한 문제‘의 영역이다. 청년 실업, 저출산 고령화, 북핵 위협 등 최근 몇 년 간 국가적 문제들은 대개 이런 ’모르는 것‘들이라, 정부의 그 많은 전문가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 이유로는 일단 기존의 쌓아뒀던 지식에 의존하려는 마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아서 등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버틸 경우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그래서 나는 책 제목이 ‘대통령인데 1도 모릅니다만’이 어울린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대표적인 ‘모르는 것’을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수 백 명이 탄 배가 가라앉은 전대미문의 어떤 사고 현장에서, 해수부와 해군・해경은 기존에 ‘하던 대로’ 늦장 대처와 부서 이기주의를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자가 바로 대통령이다. 테러, 사고, 경제 위기 등에 맞서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썩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통제에 두려는 지도자를 뽑은 결과는 어떠했는가? 시스템의 구멍을 인정하고 보강을 해도 모자란 해경을 ‘해체’시켰다. 희생자들에 대해 애도와 위로는커녕 그들을 ‘시체팔이’로 몰아갔다. 사회적 비극에 대해서 추모와 애도하는 자들을 ‘블랙리스트’로 엮어 밥줄을 움켜쥐고 침묵하게 했다. 그들의 대처는 전형적으로 ‘아는 것’에 집착하는 썩은 전문가 집단들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 ‘모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시간도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거대한 국가적 비극이 아니더라도, 이 시각에도 ‘사소한 비극’들이 독선적이고도 오만한 이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전문가’라는 명찰을 단 채 이루어지는 ‘선의’로 말이다. 지금이라도 각자의 빈 공간을 직시해야 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 그 무지의 공간은 실패가 아닌 가능성의 공간이 된다. 지식이라는 콘크리트로 굳어진 허례허식을 깨부순 순간, ‘모르는 것’ 속의 유동성과 혁신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라에 필요한 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대응할 줄 아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p.398 ‘모르는 것‘은 참기 힘든 것처럼 보이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전지한 신들이 부러워하는 선물일 수도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스터리한 것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호기심과 궁금증, 흥분감, 가능성이라는 선물의 축복을 받았다. 마침내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의 진정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