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귀 - 듣기의 수행성, 애도와 기억에 관하여
유은 외 지음 / 히스테리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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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따옴표("") : 「애도하는 귀」 책속 구절 인용

한동안 아니, 어느샌가 '애도'는 내 삶의 주요 화두가 되고 말았다. <애도>라는 검색어로 온라인 서점에 검색해 마음에 드는 책을 산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쩐지 끝까지 읽지 못했다.(그냥 재미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애도하는 귀>라는 제목에 또 이끌려버렸다. 애도도 애도인데 애도하는 귀는 어떤 귀일까. 나도 그 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며 서평을 신청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애도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이라는 의미이겠으나, 나에겐 내 삶 어느 한켠을 차지했다가 떠나간 모든 존재가 상실이고 애도의 대상이었다. 기억하면 슬프고 조금은 아프니까. 가장 큰 영향은 아무래도 아빠의 암과 죽음일 것이다. 그 이후 떠나간 존재는 더 아프게 느껴지는 것만 같다. 푸른 보석 같은 눈동자에 누룽지 색 털을 가진 작은 고양이 달리가 그렇다. 상실로 인한 마음의 구멍은 다른 구멍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공감되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나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슬퍼했다." 이 사실이 어떤 가책으로 자꾸만 남지만, 그렇게라도 드문드문 기억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기억의 추는 무언가와 마찰하고 마주하며, 압축하고 팽창"하고, 결국 서로에게 울릴 테니까.


세월호는 내가 기억하고 마주한 첫 사회적 사건, 인적 재난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대리님이 뉴스 기사를 읽어주었다. 웅성웅성. 팀 사람들은 일을 하며 대리님이 실시간으로 읽어주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아, 모두 구출됐대! 대리님의 한마디에 모두 한숨.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리고 그 후의 기억이 없다. 다만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를 기억이 있다. 배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했을 사람들.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메시지. 서로 맞잡은 손.

슬픔이 채 오기도 전에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나는 이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그렇게 슬프지 않은데. 고작 일주일 같이 살던 길냥이 달리가 죽은 게 뭐가 그리 슬프다고! 세월호가 떠올라서 운다니. 내가 뭐라고.

때로는 감정보다 몸이 먼저 반응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는 것을 썩 유쾌하게 여기지 못하니까. 자꾸 들출수록 힘드니까. 그렇게 몸이 먼저 간 자리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다. 그렇다면 책에서 말하는 '회복의 방향'은 무엇일까. '온전한 애도'는 대체 무얼까.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앞을 알 수 없고, 망막한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하는 때가 있음을. 애도한 어떤 말, 행동, 의식보다도 삶 속에서 내밀하게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런 책을 통해 애도를 생각하고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것처럼.

우리는 모든 슬픔에 늘 공감하며 슬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절실히 누군가 필요한 그 '때'에 곁에 '잠시나마' 있어 주어 '우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애도할 수 있다. 그 '잠시의 우리' 덕분에 나는 나에게서 고개를 들어 다른 이야기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울컥한다. 그렇게 "나 아닌 세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공명할 수 있는 것이다. 부디 나의 귀가 누군가 필요할 때 <애도하는 귀>가 되어줄 수 있길 바란다. 나의 몸이 가장 알맞은 때에 슬픔의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란다.



실제로 현실정치에서 권력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귀에 가닿을 수 있는 말은 언제나 공적 형태로 가공되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로부터 고민의 가지가 한 줄기 뻗어 나온다. 선별된 말 이전의 소리와 침묵, 말이 되지 못한 말들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당신이 하지 않은 말과 하지 못한 말, 말줄임표와 쉼표 혹은 침묵 속에 숨겨진 말들을 들으려면 나는 나의 귀와 몸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 P119

통증이 우리를 세워두는 자리. 그곳은 진실한 몸이 기억을 만나는 자리다 - P157

감당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슬퍼했다. 애도하는 감정 옆에는 고통을 직시하는 것에 대한 거대한 피로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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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유령 - 폭력의 시대, 불가능의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W. G. 제발트 지음, 린 섀런 슈워츠 엮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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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독일 작가 W.G.제발트와 관련된 논평, 인터뷰 집이다. 그의 에세이로 기대했었는데, 직접 쓴 에세이와는 또다른 매력이다. 제발트의 소설은 맛보기 정도로만 해서 그의 소설을 좀더 차분히 읽고 난 뒤에 <기억의 유령>을 읽으면 더 많은 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소설을 집중해서 잘 못 읽는 편인데 작가와 그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와 서평들을 읽고 난 뒤라면 훨씬 더 집중이 잘 될 듯 하여 든든한 기분이 든다.

제발트의 소설은 아닐지라도, 마지막에 실린 버지니아 울프와 카프카의 짧은 단편도 아주 인상적이다!

#기억의유령

제발트는 홀로코스트와 독일 도시의 파괴에 대한 사회의 ‘집단 기억 상실‘과 ’모의된 침묵‘에 분노했다. 또한 전쟁 중 이민자가 될 수밖에 없던 이들의 이야기를 신기하도록 간접적으로 표현해내는 작가다.

나는 참혹한 역사가 우리 삶을 침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 처럼 제목만 알던, 그걸로 끝이던, 우리의 아픈 역사 소설들을 들춰보았다.

문학의 효용이란, “기억를 돕고”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나 학식을 넘어 회복의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제발트의 말을 은근슬쩍 믿으면서.

#밑줄

“제발트는 진보랄지 개혁이랄디 하는 그 아떤 낙관적 관념 없이, 그 확인 행위 자체를 보전하기 위해, 오래 지속될 언어로 상실돤 것을 부활시키는 만족감을 위해 그 일을 했다.” 53p


“미술관에 가서 16세기나 18세기에 누군가가 그린 훌륭한 그림들을 보고 있을 때 우리는 시간을 이탈합니다. 그렇게 시간의 진행에서 이탈할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건 구원의 일종입니다. 사진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흐름을 막는 장벽 내지는 둑의 역할을 하는 것이죠. 그건 긍정적인 무엇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독서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죠” 90p

“늙어갈 수록 더 많은 걸 잊는다고 할 수 있죠. 그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 하지만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는 부분의 밀도는 상당히 높아집니다. 이로 말미암은 무게가 한번 짓누르기 시작하면 우리를 침몰시킵니다.“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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