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반쯤 농담이었겠지만 아렌스버그는 한술 더 떠서 그 작품이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형태"라고까지 했다. 이 말은 뒤샹에게조차 놀라웠다. 나중에 뒤샹은 사람들이 그의 레디메이드, 즉 상점에서 산 변기나 병꽂이, 금속 빗, 자전거 바퀴, 눈 치우는 삽 같은 공산품을 아름답다고 칭송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난 미학이란 것에 반대한 거였어요." 그가 말했다. "그래서 병꽂이나 변기를 그들의 얼굴에 들이대며 덤빈 건데 이제 사람들은 그걸 두고 미적으로 아름답다니 황당하지요." 78

 

 

 

뒤샹의 작품은 조각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때까지 조각이란 어떤 대상을 재현한 것, 인간의 손으로 어떤 재료를 환영으로 변형시킨 것, 영적인 모험 등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레디메이드는 보는 그대로였다. 변기는 그냥 변기였다. 그것이 표상하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전통 조각가들의 경우처럼 차별적인 취향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뒤샹은 '차별의 예술'대신 '지정의 예술'을 들여놓은 것이다. "나는 이 눈 치우는 삽을 예술이라 선언한다."라고 뒤샹이 말하는 순간 삽은 예술이 되었다.

 

그게 예술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것인가? 같은 이유로 누군가 삽이 아름답다고 한다면 감히 누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78

 

 

 

 

 

아름다움은 그렇게 해서 공인된 비례를 따르는 이상적인 형태와 관련지어졌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단순히 수학적 공식을 따르는 일이라면 진부해지고 말 것이다. 오히려 정확히 그 반대여서, 뭔가 전형에서 벗어나고 예외를 세울 때 우리는 이를 두고 아름답다고 한다. 인체를 재현하는 예술에서 아름다움이란 유일한 공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알브레헤트 뒤러의 누드는 미켈란젤로나 피카소와 다르며, 또 루카스 크라나흐의 것과도 다르다. 말하자면 이 예술가들은 모두 무언가 색다른3.

2 걸 창조하기 위해 고전적 비례를 왜곡시켰다.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은 이를 잘 요약해 준다. "뛰어난 아름다움 중에 비례적으로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81

 

 

 

 

 

또한 예술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보자마자 알 수 있는 질에 달려 있는 건 아니다. 그렇게 명백하다면 깊이가 전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이자 미술 비평가인 아서 단토는 아름다움이 그저 장식적인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예술 속에 더 깊은 근거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예술의 본래적 의미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91-92

 

 

 

 

 

 

예술은 어떤 차원에선 이미 마음의 상태이다. 물론 예술이란 우선 우리가 어느 순간 소통하는 물리적인 오브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작품을 보고 난 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기억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기억은 생각이고 예술가가 심은 정신의 씨앗이다. 그리고 이는 작품을 보고 기억하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게 재현된다. 예술의 힘은 변하는 기억, 만질 수 없는 개념으로서 개개인의 의식을 거치며 번성한다는 데 있다. 114

 

 

 

 

 

케이지의 조용한 혁명 후에 이어진 예술 중에는 물론 실망스러운 것도 적지 않았지만 그 밑에 깔린 생각 자체는 잊어선 안 된다. 감각을 깨워라.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들어 올려라. 예술이란 고양된 자각의 상태에 관한 것이다. 일상을, 적어도 일상의 부분 부분들을 예술 작품 대하듯 하라. 118

 

 

 

 

렘브란트 같은 작가의 작품들은 예술이고 비싸니까 당연히 수집할 가치가 잇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힉스 씨가 증명하듯 수집가들이란 미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가치가 있건 없건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경향이 있다. 예술에 있어 취향이 그런 것처럼 수집에 있어 가치란 수집가의 감식안에 있고 진정한 가치는 상징성이 있을 때 최대가 된다. 수집품들은 효용을 잃을 때 상징성을 띠게 된다. 133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이냐를 고민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붓 자국을 없애는 거였어요. 선명한 붓질이야말로 추상 표현주의의 핵심이었으니까요. 그게 내가 배운 거였죠. 드 쿠닝은 붓질에 있어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했죠.

빌렘 드 쿠닝, 무제

 

 

 

 

하지만 나(펄스타인)는 매끈하게 마감된 표면을 택했어요. 그래도 그림의 각 부분마다 고유한 질감이 있죠. 살은 살대로 트랙터는 트랙터대로. 그림이란 원래 완전히 평평할 수는 없어요.

 

 

필립 펄스타인, 두 모델과 같이 있는 무대의 꼭두각시 미키마우스, 점보제트기, 장난감 트랙터 

 

 

몬드리안의 그림도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해요. 표면이 살아 있죠. 그는 고쳐 가며 오래도록 그림을 그렸는데, 선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그림을 오랫동안 쳐다보고 그림을 고쳤어요. 그게 몬드리안 그림이 지닌 시간적 요소예요. 나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하는데 단지 그림 속 형태들이 통통 튀는 걸 보기 위해서예요." 223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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