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운동은  근본적으로 인간 정신의 두 가지 발명에 그 근거를 둔다. 공간적 운동은 축을 진동하며 구르는 바퀴를 발명함으로써 가능했고, 정신의 운동은 글자의 발명 덕에 그러했다.

 

시대를 초월해 불멸하고 불변하는 것인 동시에 가장 보잘것없고 변하기 쉬운 틀에 담긴 고도로 압축된 힘인 책은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술 또한 책으로부터 배워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삶에서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나 책은 모든 지식과 학문의 시작을 이루는 알파와 오메가다. 그리고 책과 친밀히 지낼수록 그 사람은 삶의 총체성을 깊이있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자는 스스로의 눈만이 아니라 셀 수 없는 이들의 영혼의 눈으로, 그들의 놀라운 도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헤쳐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야 제대로 알았지만, 동화란 원래 삶에서 두 번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어린 시절에는 활기찬 사건으로 가득한 형형색색의 세계가 진실일 것이라는 단순하고도 순진한 믿음으로,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후에는 그것이 허구임을 정확히 알면서도 기꺼이 속임을 당하겠다는 마음으로.

 

 

독서의 동기는 늘 자기 세계의 경계를 넘으려는, 낯선 것 안에서 길을 잃으려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책 속의 비유에서 자신을 되찾으려는 충동일 뿐이다.

 

이야기는 시간을 관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끝없이 이어진 단어의 사슬이 되고, 들려주는 이로부터 귀 기울여 듣는 이에게로 거든 전달되고, 누군가는 사슬 한 칸을 보태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고리 하나를 빼기도 하면서,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흙과 토지처럼, 한 민족 전체의 정신적 자산처럼, 십자가의 상징처럼, 소소한 미신처럼, 언어 자체와 독일어 낱말 하나하나처럼 전승되러 온 것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지상의 모든 거리를 걷고 모든 벽을 두드렸으며, 태고의 것이면서도 지금 막 피어난 듯 어리다. 동화가 꾸며 내는 그 어떤 기적도 영원을 향해 확장하는 동화 자체의 실존보다 더 놀라울 수는 없을 것이다.

 

동화는 인생 경험이 업는 이들의 모험을 향한 갈망이며, 실망한 이들을 위한 위로이며, 가난한 이들의 아편이며, 바로 그런 이유로 갈망으로 무섭게 타오르고 자신을 외톨이라 여기는 아이들의 기쁨이다.

 

그(프로이트)는 근본적으로 심리학자인 자신의 과제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는 듯하다.

 

오로지 예술 작품만이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을 뿐, 사상은 건물의 기초와 같아서 스스로 상부 구조가 될 수 없다. 예술은 기념물로 남아 홀로 영원의 지평선 앞에 우뚝 서거나 혹은 망각의 땅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세 판본은 일단 대략 비슷한 너비의 걸음을 뗀 것으로 보이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프로필레엔 판본의 환상적인 장정, 매력적인 제본, 훌륭한 인쇄, 읽기 편한 판형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어떤 시인의 시집이 독일에서 1년 만에 7만 부가 팔렸다면, 그것은 저에게 그 시인을 감시해야 한다는 경고로 들립니다. 희석되어 묽어진 것만이 넓게 퍼져 흐르는 법 아닌가요.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관한 메모

{사용 설명서} 이 어마어마한 소설을 읽는 동안 책을 손에서 한번도 놓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든든히 기댈 자리를 찾는 게 좋겠다. 이 책은 거의 1,500쪽에 달하고, 납덩이 같은 무게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먼저 검지와 중지로 책에 끼어 있던, "금세기 가장 위대한 산문 작품", " 우리 시대의 호메로스"라고 쓰인 광고지를 세심하게 집어 들어, 너무 허황된 기대나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곧바로 이 소란스럽고 과장이 심한 광고지를 한쪽 끄트머리에서 다른 쪽 끄트머리까지 쭉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라. 그러고는 안락의자에 앉아(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인내심과 정의감을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려(화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하면 된다.

 

{근원} 그 뿌리에는 무언가 사악한 것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내면 어딘가에는 유년 시절의 증오와 영혼의 상처에서 비롯된 근원적인 정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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