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낯선 느낌 가득....

한번에 읽어내리기에는 버거운 단편들도 제법 되고.. 작풍도 다양하다.

읽고 난 후 남는 느낌은 그다지 개운하지 않다...

어떤 선집에서 유도라 웰티의 단편을 읽은 적이 있어 작가 이름이 기억에 남아 있었는데

이렇게 턱 턱 걸리는 글을 쓰는 작가인 줄은 미처 몰랐네..

 

아직 황금사과 부분을 읽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읽는 분량에서는 <호루라기>라는 단편과 <랜딩에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밑줄

 

밤이 찾아왔다. 수많은 겨울 내내 입었지만 늘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들던 추레한 드레스처럼 얇은 어둠이었다. 그러고는 달이 떠올랐다. -120

 

허황된 꿈처럼 새러는 봄과 여름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초록과 빨강의 색깔과, 땅에 햇볕이 내리쬘 때의 냄새와, 나뭇잎과 익어 가는 토마토의 따스한 촉감을 생각했다. -122

 

시간이 갈수록 추위는 더욱 심해졌다. 이곳에는 내리지 않는 눈처럼 하얗고 강렬한 달은 긴긴밤 동안 점점 더 하늘 높이 올라갔고 땅에서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구불구불한 고랑에 심은 토마토 모종이 작은 혹 같은 집을 빙 둘러싼 농장은 자그마한 묵묵한 조개처럼 보였다. 내리누르는 하얀 손처럼 추위가 아래로 뻗어 와 조개껍데기 위에 내려앉았다. -124

 

자신을 건드릴 수 있는 건 없다는 듯 우쭐대며 가만히 서 있는데, 돌연 발 아래서 세상이 동그란 구가 되어 빠르게 우주 공간에서 돌기 시작해 서 있는 사진이 위태롭고 외로워지는 그런 느낌 말이다. -130

 

이 밤에는 아무것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안을 얻든 더 절망하게 되든, 옷을 입은 채 침대에 누운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에는 이 밤은 여타의 밤들과 너무 똑같고 이 마을은 여타의 마을들과 너무 똑같았다. -147

 

잘 보면 늙은이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 것이다. 보호막을 잔뜩 세우고 구부정하게 음모자처럼 걷는 거하며. 길모퉁이에 한참을 서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조급해하는데, 마치 원하는 대로 아무 데든 갈 수 있도록 차량들이 그들을 알아보거나 말을 세우거나 차 브레이크를 밟기를 기대하는 것만 같다.  -181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것은, 그저 자식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자기를 낳았다는 걸 아이 스스로 아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184

 

누가 볼을 한껏 부풀렸다 훅 불기라도 하는 양 하얀 레이스 커튼 사이로 바람이 훅훅 들어왔다. -422

 

만약 절박감이 그저 어떤 나라라면 그것은 우물 바닥에 있을 것이다. - 449

 

하지만 지금 그녀는 처음부터 모든 방이 캄캄한 집과 같았다. 그래서 누군가 천천히 방을 하나씩 돌아다니며, 어둑하게 느릿느릿 하나씩 불을 켜고 그다음 방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463

 

풀이 길게 자라 길에 난 바큇자국 사이에서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미동도 없는 공기, 이제 얇은 막이 덮인 듯한 강의 고요함, 열기에서 나오는 광택과 무성한 여름나무의 잿빛 광택, 그리고 낮과 밤의 적막함이 어디나 닿아 랜딩 전체에 스며들어 흠뻑 적신 듯했다. 작은 마을은 시간과 장소의 효과로 나른함과 어떤 아름다움을 띠었다. - 466-467

 

그녀가 길을 나섰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무궁화의 빨간 눈망울이 닫히고 있었고 도마뱀이 벽 위를 질주했다. 마지막 백합 봉오리가 초록빛으로 반짝거리며 열기 속에서 축 늘어져 대롱거렸다. 배롱나무가 매일매일 마지막 남은 빛까지 다 들이마셔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면서, 매미 울음이 들어찬 저녁 공기에 흰빛과 타오르는 붉은빛을 뿜어냈다. 늙은 미모사가 계곡을 덮고 있었다. 생명만큼이나 오래된 태곳적 이끼와 만지면 오그라드는 나무, 부드러운 그 모습이 기괴한 친밀함과 어둠이, 심지어 흘러가는 구름도 그것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곳을 떠난 제니는 어디서도 그렇게 매혹적인 향내를 뿜어내는 나무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나무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조개껍데기나 진주, 바다에서 건진 보물로 지어진 양, 집이 희미하게 흔들거리는 이파리에서 천천히 방울방울 떨어져 내리는 빛에 물들며 석양을 받아 반짝거렸다. 기다란 이끼가 해초처럼 부드럽게 하느작거렸다.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에 굴뚝이 산호처럼 가지를 뻗고 있었다.

이제 초록 가지들이 하늘을 덮었고, 그다음 발을 디디자 능소화와 머루 덩굴과 커다란 잎이 달린 덩굴들이 나무둥치 주위에서 기둥을 이루며 나무 주변마다 온통 둥글둥글하게 회벽을 만들고 있었다. 어깨 곁에, 발치에 시계꽃들이 흰색 보라색 빛살을 보이며 활짝 피어 있었다. 계속 나아가 울창한 숲의 뜨거운 산그늘 속으로 들어갔고 늘어진 덩굴 사이로 손을 뻗으며 갔다. 난데없이 서늘해지는 곳에서는 뱀이 나올까 두려웠다. 수천 개 은 종들이 울려 대듯이 개구리들이 습지에서 요란스럽게 울었고, 지나가자마자 뒤에서 사라져 버렸다.

한순간에 하늘이 활짝 열렸다. 강에 다다른 것이었다. 절벽 위에서 가만히 모닥불이 타고 있었고, 시선이 닿는 곳까지 차가운 물이 아른거라며 저 멀리까지 밀려 나갔다. 거대한 나선형 그물이 강물 옆에 놓여 있고 수면의 동그라미가 희미하게 하늘에서 반짝 거렸다. 말리느라 줄지어 널어놓은, 미풍에 푸르게 보이는 그물이 조용히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장막처럼 어디에나 늘어져 있어 그곳 전체가 그물로 둘러싸인 식이었다. 강과 하늘과 불과 공기, 그 모두가 같은 색깔로 보였는데, 눈을 감으면 그 뒤로 보이는 색, 전망과 절망이 하나인 그런 날의 색이었다.-467-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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