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하학 존 치버 단편선집 4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끝으로 존 치버의 단편선집 시리즈를 다 읽었다.
좋았던 순으로 꼽아보자면, <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기괴한 라디오>, <돼지가 우물에 빠졌던 날>= <사랑의 기하학>이 되겠다.

장편인 왑샷 가문 연대기와 몰락기, 중편인 <이 얼마나 천국같은가>도 읽었지만

미국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단편소설 작가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옮긴이의 말 중)에 걸맞게 단편이 훨씬 더 좋았다. <팔코너>와 <불릿파크>가 남아있긴 하지만.

 

이 책의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읽으니 두서없이 읽은 존 치버의 단편들이 한 줄기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옮겨적어 본다.

 

... 존 치버의 가장 뛰어난 면은 본질적으로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능력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의 이야기들은 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다른 놀라움을 선사하고 각각의 이야기가 만화경을 돌릴 때마다 모양이 바뀌듯 변화무쌍하게 펼쳐진다.

  존 치버의 이야기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멜랑콜리와 후회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터무니없는 꿈들에 대한 후회, 이런저런 심술궂거나 잔인한 행위들에 대한 후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한 것에 대한 후회. 존 치버는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문체로 등장인물들의 삶에서 내면적인  두려움과 도덕적인 비옇함을 파헤틴다. 표면적으로는 고요하고 평온한 삶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받을 수도 없고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억눌린 생각과 감정들이 들끓고 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의 삶은 공허한 삶이기에 그들은 애타게 무엇인가를, 사랑이든, 섹스든, 그 무엇이든, 그들을 한껏 드높여줄 것을 찾고 있지만 현실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정말로는 벗어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이 이야기들 대부분에사 주안점은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부부, 연인, 친구들 사이의 난처한 관계이고 그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인간의 행동과 선택의 결과에 빛을 던진다.  - p.487

 

 

밑줄긋기

 

지력은 남성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결정권을 남자들이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온 우월성에 취해 남자들이 때때로 그 점을 망각한다고는 해도. 하지만 그의 본능은 어째서 그가 매일 밤마다 자기 품에 안은 여자가 적어도 자신이 많이 배웠다는 사실을 숨겼으면 하는 기대를 하도록 이끄는 것일까? 어째서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무한한 사랑과 양자 이론을 이해하는 그녀의 능력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  p. 28  많이 배운 미국 여성

 

그녀는 그런 부당한 태도로 인해 자기의 심장에 가해지는 부담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다. 마치 자기 심장이 상자 같은 것인데 거기에 슬픔이 너무도 꽉꽉 들어차서 어린 시절의 망가진 보물 상자처럼 한쪽 옆구리가 터져버린 것 같았다. -  p.31  많이 배운 미국 여성

 

배스컴은, 언젠가 장 콕토가 말했던 것처럼, 시를 쓰는 일은 불완전하게 이해된 기억의 근저를 탐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회상 행위처럼 보였다. -p. 265 사과들의 세상

 

왜냐하면 그 집 식구들은  기념품을 끔찍이도 싫어했으니까. 그래서 편지든 사진이든 졸업장이든 과거를 입증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언제나 불 속으로 던져졌다. 나는 그런 행위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잡동사니들에 대한 혐오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곧 죽는 것이어서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았다고. -  p. 336 퍼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