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80 하지만 레이콘은 궤변의 달인이었다. 그는 궤변가로 태어나 궤변으로 호흡을 했으며, 지금은 궤변 속에서 날기도 하고 수영도 한다. 화이트홀의 누구도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p.393 협박당한 자는 두려움 때문에 존엄을 가장한다. 그건 함정을 탈출하려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p.422 다른 한편, 적수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분명하게 인간의 얼굴을 드러냈다. 지금껏 스마일리가 죽어라 추적했던 야수도 광인도 로봇도 아니었다. 그도 분명한 인간이었다. 스마일리가 손을 조금만 내밀어도 절박한 사랑 따위에 무너지고 말 그런 인간.... 그건 스마일리 자신아 실타래처럼 꼬인 삶을 통해 터득한, 누구보다 잘 아는 약점이기도 했다.
p.365 이렇게 밖으로 내몰리면 모든 게 의미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가령 선물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지요.'죽은 자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재미있어 한권을 더 읽어보기로 했다.추리소설은 좋아하지만 첩보,스파이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데이 책은 스파이소설이지만 액션이 없으며 주로 대화와 생각으로 찬찬히 이어진다.5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많은 등장인물과 은어로 갈피를 못잡아 자꾸 앞을 넘겨봐야되지만뒤로 갈수록 하나로 모아지는 관점이 몰입도를 확 끌어올린다.무엇보다 평범하고 기운없게 생긴 스마일리의 매력에 빠져든다.
p.320 그 무렵 나는 아끼는 사람들을 제대로 마주 볼 수 없는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내 머리는 어느새 앞으로 내게 일어날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새 일자리를 가지고 새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마주 볼 수 없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겠지. 지금까지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것이 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 힘든 시간은 끝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았다. 경계가 그다지 또렷하지 않다는 말이다. 힘든 시간은 행복함 시간과 뒤섞여 있고 좀 더 힘든 시간과 얽혀 있다. 그리고 뭔가를 상실할 때마다우리를 감싸는 침묵의 벽돌이 생긴다.
제목도 표지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빌릴만한 책이 없어 그냥 빌렸는데최근 읽은 추리 소설 중 가장 맘에 든다.읽는 이에게 실마리를 공유해줘 같이 추리해나갈 수 있어 좋았고 전개도 질질 끌지 않아 좋았다.70년대 작품이라는데 놀랄만한 반전은 없지만 모처럼 추리소설의 정석을 맛본 기분이다.언젠가부터 일본 추리소설이 강세를 보이는데 일본 특유의 자질구레함과 은밀한 속사정이 지겹고북유럽쪽의 추리소설 비슷한 스릴러장르는 전부 눈폭풍이 몰아치는 날 일이 벌어져 너무 비슷하다.그러다보니 영미권의 오래된 추리소설에 끌리나보다.작가는 여성분으로 고정관념의 답답함을 책의 주인공을 통해 깨버리고 싶었다는 게 느껴진다.다른 작품도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