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립 잭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스코틀랜드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이언 랜킨(Ian Rankin)"이 1992년에 발표한 "존 리버스" 시리즈 네 번째 작품 "스트립 잭(Strip Jack)"입니다.

 

매음굴을 급습하는 작전을 실시한 경찰들은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을 찾아냅니다. "그레고르 잭". 인기있는 전도유망한 하원의원. 어느 순간 매음굴 앞에는 기자들이 몰려와 있고 "그레고르 잭" 의원이 매춘 단속에 걸렸다는 뉴스는 전국적으로 퍼져갑니다. "존 리버스" 경위는 누군가 이 젊은 하원의원을 함정에 빠트렸다는 생각에 측은함을 느낍니다.

 

순간 그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답. 나도 모르겠어. 문 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자극을 받은 그는 아무 대책도 없이 하원의원의 집에 불쑥 들어와버렸다. 그는 자갈 깔린 진입로를 따라 대형 세단과 큰 집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그레고르 잭을 만나기 위해.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경위님?

아뇨, 의원님. 그냥 참견하길 좋아할 뿐입니다.

첫마디로 좀 부적절한 걸 같은데.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매음굴 불시단속에 젊은 하원의원인 "그레고르 잭"이 적발됩니다. 그 순간 매음굴 앞에는 기자들이 깔리고 "리버스" 경위는 "잭"이 누군가의 덫에 걸렸다는 의심을 합니다. 다음날부터 뉴스와 신문은 매춘 단속에 걸린 하원의원에 대한 소식들을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고, 의원의 집 앞에도 기자들이 상주하기 시작합니다. 단순 호기심에 의원을 찾아간 "리버스"는 의원의 아내인 "리지"가 집을 나간 뒤로 연락두절인 상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잣집 딸이자 방탕한 사생활로 유명한 "리지"는 자주 친구들과 별장에서 파티를 벌였고, "잭"은 아내가 그곳에 있으며 자신의 뉴스를 보고 화가 난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별장에도 그녀는 없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강에서 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되고 시체의 신원이 하원의원의 아내 "리지"로 밝혀지면서 인기있는 젊은 정치인인 "잭"의 정치적 생명은 끝난 상황이 되고 맙니다. 매춘 단속에 걸린 정치인, 그의 유명인 친구들 그리고 정치인의 죽은 아내 사이에서 "리버스" 경위는 몇몇 연관성을 찾아내며 수사를 진행합니다.

 

리버스는 여전히 그를 믿고 있었다. 그는 장로교회파답지 않게 비관주의자였다. 하지만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리지 못하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믿음과 희망. 그에게 부족한 것은 관용뿐이었다.

 

"존 리버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스트립 잭"은 함정에 빠진 정치인, 살해당한 그의 아내 그리고 정치인의 친구들이 얽힌 사건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시작됩니다. 젊은 정치인이 함정에 빠져 이미지가 실추되고, 그의 아내의 연락두절도 남편 때문에 화가 나서 단순히 연락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쇼 윈도우 부부였던 이 둘은 언론이 다루기 즐겨하는 유명인이었고, 여자가 살해됨으로서 사건은 더욱 사람들의 흥미를 끕니다. 자신이 해결해야할 고서 도난 사건이 있음에도 단순한 호기심에 이 사건에 발을 담근 "존 리버스"는 이 사건에 꽤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있고 심지어 자신이 맡은 고서 도난 사건도 작은 일부분임을 알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복잡한 인간관계와 감정에 집중하고 있고, 이야기 자체도 작가의 말처럼 그간 썼던 전작들 보다 덜 흉포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일취월장한 글 솜씨 덕분에 그간 읽었던 시리즈 중 가장 읽는 맛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아재개그처럼 스코틀랜드식 영어로 하는 말장난에 피식 웃음이 나고, 주인공 "리버스"는 더 투덜거리며 찌질한 면모를 드러내 측은한 유머를 선사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생각하고 발로 뛰는 성실한 수사관이라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시작이었다. 이번 사건에는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TV 배우, 하원의원, 섹스 스캔들, 죽음. 기자들은 어떤 순서로 표제를 써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섹스 스캔들 하원의원의 부인, TV 스타의 집에서 익사? TV 스타, 하원의원의 부인인 친구의 자살에 괴로워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소유형의 남발......

 

"이언 랜킨"은 이 작품 "스트립 잭"으로 자신과 "존 리버스"의 견습 기간이 끝났다고 몇 번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범죄소설가가 될 생각이 없이 일단 팔리는 책을 쓰려고 이런 저런 장르의 소설을 쓰던 작가 자신도 범죄소설가로서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고, 캐릭터 "존 리버스"도 다음 작품부터 실제 경찰서에서 일하고 실제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등 현실성을 더 갖추게 됩니다. 그 결과 "존 리버스" 시리즈는 매년 영국에서 팔리는 범죄소설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인기 시리즈가 됐고, "이언 랜킨"은 많은 상들을 수상하며 스코틀랜드의 국민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캐릭터 "존 리버스"도 영국에서 "셜록 홈즈", "모스" 경감 등과 함께 언급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레고르 잭은 갖은 고생을 겪으면서 지금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그런 대중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 건 몇 배 더 어려운 일이다. 무성의한 미소와 적당한 힘이 들어간 형식적인 악수. 그는 그렇게 주민들 틈에서 선거구를 관리해왔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심각할 만큼 지저분했다. 그리고 잭이 은폐하려들수록 점점 더 지저분해질 뿐이었다. 옷장에 해골을 숨겨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화장장을 갖춰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많은 이들이 영국의 "마이클 코넬리""이언 랜킨"이라던가, 미국의 "이언 랜킨""마이클 코넬리"라며 비교를 합니다. 이 두 작가의 데뷔작부터 읽어 본 결과 "마이클 코넬리"가 처음부터 수준 높은 어떤 경지에 다다른 작품으로 데뷔해서 그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면 "이언 랜킨"은 조금 모자란 데뷔작으로 시작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진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됩니다.

아무튼 범죄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존 리버스" 시리즈는 꼭 읽어봐야 할 시리즈이니 첫 작품 "매듭과 십자가"부터 "스트립 잭"까지 작가 "이언 랜킨"의 진화하는 모습을 직접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내년 초에는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The Black Book"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출판계가 더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 이렇게 꾸준하고 빠르게 시리즈를 내주는 출판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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