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트랙 발란데르 시리즈
헨닝 망켈 지음, 김현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작년 10월에 세상을 떠난 스웨덴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 "헨닝 망켈(Henning Mankell)"이 1995년에 발표한 "쿠르트 발란데르"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 "사이드 트랙(Villospår/Sidetracked)" 입니다. 이 작품 "사이드 트랙"은 출간 해인 1995년, 스웨덴 추리작가 아카데미의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고 1999년에 영어로 번역되어 2001년, CWA(영국 추리작가 협회)의 최우수 작품상에 해당하는 '골드대거'를 수상한, 시리즈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입니다.


6월의 어느 날 자신의 유채꽃밭에 어떤 여자가 하루 종일 서있다고 한 노인의 신고를 받은 "쿠르트 발란데르"는 그곳으로 갑니다. 까마잡잡한 피부에 열네살 정도로 보이는 소녀의 불안한 모습을 보고 "발란데르"는 소녀에게 다가가고 그 순간, 소녀는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 자살합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분신자살을 한 소녀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발란데르"는 괴로워하지만 충분히 괴로워할 시간도 없이 전직 법무부장관이 살해당했다는 신고를 받게 됩니다.


그는 어젯밤을 떠올렸다. 이 소녀가 유채밭 한가운데서 자기 몸에 불을 지른 이유를 알아낼 때까지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유를 알아야만 해, 계속 경찰로 지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해.


초여름이 시작된 스웨덴의 스코네에 위치한 한 유채밭에서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소녀가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러 분신자살을 합니다. 소녀가 불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발란데르"는 크나큰 충격에 빠지지만 또 다른 충격적인 살인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희생자는 자신의 집 앞 해변에서 도끼에 의해 살해당하고 머리가죽이 벗겨진 채 발견된 전직 법무부장관 "구스타프 베테르스테트"였습니다. 특이한 살인방법과 희생자가 유명 정치인이었기에 스웨덴의 작은 도시 스코네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명 미술상 "아르네 칼만"이 자신의 별장에서 파티를 하는 도중에 같은 방식으로 죽은 채 발견됩니다."발란데르"를 포함한 스코네 경찰들은 이것이 영화나 외국의 뉴스에서만 보던 연쇄살인이 아니길 바라지만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하고, "발란데르"는 생애 처음으로 연쇄살인범을 상대하게 됩니다.


"베테르스테트가 법무부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미술품 절도와 관련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죠. 되찾지 못한 그림들, 지금은 아마 개인 소장가들의 저택 벽에 걸려 있고, 절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을 겁니다. 경찰이 장물아비를 잡았어요. 중간거래상이겠죠. 물론 잡으려고 해서 잡은 건 아닙니다만, 어쨌든 장물아비가 베테르스테트가 연루된 게 확실하다고 증언을 했거든요. 하지만 증거가 없었고, 그대로 묻혔습니다. 구덩이 안에서 흙을 퍼내는 사람들보다는 위에서 구멍을 메우는 사람들이 늘 더 많았던 거죠."


눈부시게 아름답고 노란 유채꽃들 사이에서 한 소녀의 분신 장면으로 시작하는 "사이드 트랙"은 도끼로 사람을 죽인 후 희생자의 머리가죽을 벗겨가는 연쇄살인범을 뒤쫓는 형사 "쿠르트 발란데르"의 이야기입니다. 스톡홀름같은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 스코네에 등장한 연쇄살인범은 "발란데르"와 동료들을 혼란과 충격에 빠트립니다. 희생자들의 연관성은 묘하게 어긋나고 범행수법은 점점 더 잔혹해지지만 수사는 더디게 진행됩니다. 그와중에 "발란데르"는 유채밭에서 자살한 소녀의 생각을 놓지 못합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는 90년대 중반부터 균형을 잃기 시작하는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낳은 비극임이 밝혀집니다.

청소년 자살율이 올라가고 이민자 작취, 외국 여자들의 인신매매 등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스웨덴이 조금씩 썩어가기 시작하는 사회 문제들을 범죄 해결이라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발란데르"는 점점 지쳐갑니다. 언제까지 경찰로 버틸 수 있을지, 왜 젊은이들이 죽음을 택하는지 등 수사를 진행하며 계속 고뇌합니다. 거기다 아버지의 치매, 딸아이의 진로, 리가에 있는 연인과의 문제 등 여전히 삶에 지친 중년 남자의 고민도 합니다.


나중에 바이바와 이야기하던 중에 발란데르는, 당시 그를 사로잡았던 그 갑작스러운 느낌, 경관답지 않았던 느낌에 대해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그건 그의 안에 있던 어떤 댐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는 이제 스웨덴에서도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라져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대도시의 폭력이 그가 맡고 있는 지역까지 침투했고, 일단 들어온 이상 앞으로 영원히 그럴 것이다. 세상은 수축하면서 동시에 확장되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암투병에 관한 글을 기고했던 작가 "헨닝 망켈". 그가 죽은지 이제 1년이 지났습니다. "발란데르" 시리즈 마지막 작품 "불안한 남자"를 끝으로 더 이상 "발란데르" 시리즈를 읽게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고맙게도 미 출간작이자 시리즈 중 최고 걸작이라는 "사이드 트랙"을 만나게 돼서 상당히 기쁩니다. 여전히 작가는 세계최고의 복지국가이자 살기 좋은 국가 스웨덴이 품고 있는 문제들을 범죄소설이라는 장르 안에서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녹여냅니다. 이번에는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젊은이들에게 행한 악이 순환되어 다시 악이 되는 슬픈 모순들을 훌륭하게 포착해냈습니다.


그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젊은이들이 분신자살을 하고, 또 이런저런 방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하는 세상이었다. 그들은 소위 실패의 시대를 살고 있었다. 스웨덴 국민들이 믿었던, 그리고 그 믿음에 따라 세웠던 무언가가 생각보다 견고하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들이 한 일이라곤 이미 잊혀버린 이상을 기념하는 기념비뿐이었다. 이제 그를 둘러싼 사회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치체계가 전복되는 중이었고, 이제 어떤 건축가가 나타나 새로운 건축물을 세울지, 그건 또 어떤 체계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름날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 끔찍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억하기 보다는, 잊어버렸다.


"사이드 트랙"은 오랜만에 저에게 씁쓸한 여운을 남긴 최고급 범죄소설이었습니다. 감히 이 작품 "사이드 트랙"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는 북유럽 범죄소설의 정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욱이 시리즈 마지막 작품 "불안한 남자"와 묘하게 연결되는 정서와 감정들 때문에 슬프기까지 했습니다. "발란데르"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셔야할 작품입니다. 어쩌면 정말로 이 작품이 국내에 출간될 "발란데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사이드 트랙"의 내용을 담고 있는 영국 BBC판 드라마 "Wallander" (Series 1)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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