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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것이었던 소녀 ㅣ 스토리콜렉터 41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호주 출신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이클 로보텀(Michael Robotham)"이 2010년에 발표한 파킨슨 병에 걸린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Joseph O'Loughlin)"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내 것이었던 소녀(Bleed For Me)"입니다.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최근작 빼고는 다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서 "조 올로클린 &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영국 서머싯, 한때 잘나가던 임상심리학자였다가 지금은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고 있는 "조 올로클린"의 집에 피범벅이 된 소녀가 찾아옵니다. 그 소녀는 "조"의 큰 딸의 가장 친한 친구로, 소녀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못합니다. 즉시 출동한 경찰은 소녀의 집에서 죽어있는 소녀의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합니다. 경찰은 즉시 소녀를 아버지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벌입니다.
여자의 몸을 가진 아이의 얼굴이다. 입술이 텄고 뺨에 긁힌 자국이 있다. 환자복 가운이 허벅지에서 엉덩이까지 벌어져 있다. 옷자락을 여며서 아이의 체면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의 팔을 물끄러미 보는데 불현듯 팔 안쪽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희고 가느다란 상처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상처를 냈다. 자해다. 자기 학대. 시에나에게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세상으로부터 감춰진 부분이. 어쩌면 그게 시에나가 자신의 표면을 긋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 아래 있는 것을 찾으려고.
별거 중인 아내에게 딸 "찰리"의 친구 "시에나"가 피에 뒤덮인 채 집에 찾아왔다가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조"는 "시에나"를 숲에서 찾아내 병원으로 보냅니다. 자동차 사고 같은걸 예상했던 "조"는 경찰들의 심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곧, "시에나"의 아버지인 전직형사 "레이"가 집에서 목이 그어진 채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수사관들은 아버지의 피로 뒤덮인 "시에나"를 제1의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조"는 소녀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악몽 같았던 2년 전의 사건을 겪은 뒤, 더 이상은 경찰 수사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조"이지만 자주 자신들의 집에서 잘 정도로 딸과 가장 친했던 "시에나"를 가만히 놔둘 수가 없기에 그녀의 심리감정 의뢰를 받아들입니다. 용맹하고 존경받는 형사였던 "레이"의 명예가 실추될 걸 우려하는 서머싯 경찰들과 충돌 속에서 "조"는 사건을 더 깊이 파고들어 "시에나"의 가족에 대한 비밀들에 다가가고, 자신의 친구인 전직 형사 "빈센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조"가 밝혀낸 비밀들과 "빈센트"가 파낸 묻혀있던 이야기들이 엮이며 사건의 행방은 이상한 곳으로 흘러들어갑니다.
로니의 몸이 거부감으로 뻣뻣해진다. 레이 헤거티의 평판을 사수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거다. 살인사건 조사는 가능성들의 서커스다. 스포트라이트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모든 흠집과 결점이 드러난다. 희생자 또한 심판대에 올려진다. 법정에서 두 번 죽는 수도 있다. 당할 만해서 당한 사람이 되고, 칼에 찔리거나 목이 졸리거나 총에 맞는 것 못지않게 상처를 입는다. 로니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히 두고만 보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는 어림없다. 친구에게는 어림없다.
전작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사람의 마음을 부수어 결국에는 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괴물과의 사투 끝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까지 산산이 부서졌었던 "조 올로클린"은 결국 아내의 요구로 별거에 들어가 자신의 새 친구인 파킨스병과 함께 외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위험한 일에 말려들지 않으려던 "조"였지만 열 네 살 큰 딸 "찰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시에나"가 살인용의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위험한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죽은 "시에나"의 아버지가 존경받던 은퇴형사였기에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들은 예민한 상태이고 "조"가 알게 되는 사실들은 이 사건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뜻을 의미하기에 이번에도 친구 "빈센트"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조"가 도착한 곳엔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또 다른 괴물이 있습니다. 그 괴물의 목표는 어른이 되기 직전의 반항적이지만 연약한 소녀들로 그 소녀들을 이해해주고, 위로하고, 말을 들어주다가 갑자기 질책하기를 반복하며 결국 그들을 소유해서 마음대로 이용합니다. "조" 역시 두 딸을 키우는 아버지이기에 이번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격한 분노를 드러내지만 괴물은 너무 영악해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까지 엮이게 되면서 "조"는 또 다른 위험과 마주하게 됩니다.
"간단하든 복잡하든 난 상관 안 해요, 교수. 당신은 인간 행동을 이해하려고, 설명하려고 하죠. 나는 아니에요. 난 우리가 고릴라보다 작고 침팬지보다는 크지만, 그 둘보다 더 나쁘고, 아무리 이성이니 규칙이니 법이니 하는 게 있어도 저 밑바탕의 욕구는 여전히 정글 수준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이 작품 "내 것이었던 소녀"는 실제로 호주에서 있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서 구상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를 여기에 간단하게라도 써버리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서 적지는 않겠습니다만, 사실 책 초반부만 읽어 보셔도 대충의 윤곽이 그려지긴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읽는 임상심리학자가 주인공인 심리스릴러이기에 재미가 반감되거나 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재미는 주인공이 어떻게 사건의 주변부에서 천천히 중심부까지 도달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는 자신을 갉아먹는 파킨슨 병과 투쟁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읽은 조각들을 모아서 숨겨진 조각들을 예측하며 하나 하나 끼워 맞추어 갑니다. 이런 행동은 언제나 사람들 저마다가 숨기고 있는 마음의 가장 어두운 구석까지 들여다 봐야하는 고된 작업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들을 작가는 세심하고 예리한 문장들로 구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구축된 이야기들과 캐릭터들로 정말 매끄럽고 흥미로운 훌륭한 심리 스릴러가 완성됩니다.
질투는 끔찍한 거다. 나는 그 모든 심리적 방아쇠들을 안다. 통제를 잃는다는 두려움, 상실, 버려짐, 무시, 그리고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그렇지만 질투의 가장 파괴적인 점은 그것이 정작 가장 소중한 것을 죽인다는 것이다. 사랑은 질투의 속박을 견뎌내지 못한다. 예외 같은 건 없다. 사랑은 동등하거나, 아니면 비극이다.
어서 빨리 세상으로 뛰쳐나가고 싶어하는 십대 소녀들과 그들을 아직은 보호하고 싶어하는 부모들, 그들 중 부모의 보호막을 빠져나간 몇 명의 소녀들을 노리는 괴물들. 이 작품은 사건 이외에도 위험한 세상에서 십대 소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작가 "마이클 로보텀"역시 세 딸의 아버지여서 인지 크게 마음에 와닿는 책 속의 문장, 구절들이 많습니다. 부모들도 십대였던 시절이 있었지만 십대였던 자신들 역시 지금 알던 것을 그때 몰랐기에 어느 정도 이해를 하려다가도, 이제 알게된 것들 때문에 언제나 자녀들과 작은 전쟁을 치룹니다. 그럴 때면 자녀들은 마치 독재자에 맞서는 투사가 된듯 부모를 한심하게 생각하기도 하고 어서 빨리 어른이 돼서 떠나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자녀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들을 떠나 보내고 나면 이 책속의 한 구절처럼 자녀를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슬픈 일이라고 느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슬픈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들이 밝고 생기 넘치게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은, 매 해가 또 다른 무언가의 마지막을 가져온다는 생각에 약해진다. 마지막으로 딸아이를 그네에 태워준 때. 내가 마지막으로 이빨요정이나 산타클로스 흉내를 냈던 때.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읽어준 때.
딸아이들에게 딱 한 가지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첫 경험을 최대한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첫 키스, 첫 데이트, 첫 사랑, 첫 아이의 첫 웃음...
그런 것들은 오로지 하나뿐이니까.
전작인 "산산이 부서진 남자"보다 스케일이 작아졌지만 "내 것이었던 소녀"는 조금 더 심리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작품입니다. 심리 스릴러라고 하면 당연히 기대하게 되는 요소들이 모두 갖춰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거기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게 되는 작품입니다. 가급적 책 내용에 대해서는 많이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작품은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도 읽지 말고 읽으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재미있고, 생각지도 못한 울림이 있는 작품입니다.
올해 이 시리즈 다음 작품인 "Say You're Sorry"와 이번에 'CWA 골드대거'를 수상하고 '에드거' 상 최종후보에 오른 스탠드언론 "Life or Death"도 출간된다고 합니다. ("Life or Death"는 만일 이번에 '에드거'를 타면 '대거'와 '에드거'를 동시에 수상한 역사상 세 번째 작품이 됩니다.) 글 솜씨에 대한 검증은 이미 끝난 작가이니 다음 작품들을 눈빠지게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듯 합니다. 정말 추천하고 싶은 스릴러입니다.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독일에서 제작된 "조 올로클린 & 빈센트 루이츠" 시리즈 첫 편 "Neben der Spur - Adrenalin(용의자)"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