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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베스트셀러 작가 "데니스 루헤인(Dennis Lehane)"이 2015년에 발표한 "무너진 세상에서(World Gone By)"입니다. 이 작품은 "운명의 날(The Given Day)",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Live By Night)"에 이은 '커글린 가(家)'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현역 마피아에서 물러나 사업을 하고 있는 "조 커글린"은 여전히 템파 지역의 마피아 조직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운영하고 있는 사업들을 잘 관리해서 조직의 배를 불려주고, 자선활동으로 지역의 존경을 받던 "조"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합니다. 한동안 적을 만들지 않고 조용하게 살았기에 그 정보를 무시하려 했던 "조"는 불안감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사람들이 계속 바뀌면서 그 전의 멍청이들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을 한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과거에서 배우는 것도 없고 발전하는 것도 없었다.
맙소사, 만사가 순조롭게 풀리던 시절이 그립군. 그때는 누구나 즐겁게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다음 날 일어나 다시 그 짓을 했다. 조 커글린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오래전에 깨달았지만 그때가 황금기였다.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자신의 눈앞에서 잃고 나서, 7년 동안 "조 커글린"은 조직의 사업을 계속 성장시키며 자신의 진가를 증명합니다. 비록 보스 자리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디온"에게 물려주고 그의 그림자 안으로 숨어 들어갔지만 조직원과 주민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으며 템파 지역의 거물로 성장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자신이 청부 살인의 타깃이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아무도 자기를 죽일 이유가 없기에 잘못된 정보라 생각하고 넘기려고 하지만 마피아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라도, 어떤 이유로든, 언제나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직시하고 자신의 죽음을 원하는 사람을 찾기 시작합니다. 점점 더 잠을 못 자고, 환각이 보이는 현상도 더 심해지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두려움보다 자신의 아들 "토머스"를 고아로 만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에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립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자신을 죽이려하는지 짐작도 못한 채, "조"는 다시 한 번 전쟁의 소용돌이 중심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먼저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평화가 계속될 거라는 안이한 생각들이 칼날이 되어 "조"를 향해 날아오게 됩니다.
3년이 지나자, 거의 아무도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서반구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 연합을 초월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길 밸런타인의 죽음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메시지가 더욱 분명해졌다. 아주 단순한 메시지. 누구든 살해당할 수 있다. 언제든, 무슨 이유로든.
보스턴 경찰 서장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불량청소년으로 살다, 감옥에 들어가서 마피아와 엮이고 결국 보스의 자리까지 올라서서 밤을 지배했던 남자 "조 커글린"의 마지막 이야기 "무너진 세상에서"가 출간되었습니다. 전작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서 세상이 끝난 정도의 비극을 겪었지만 "조"는 여전히 어둠의 규율과 법으로 밤을 지배하며 살아갑니다. 나치가 유럽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일본이 진주만에서 무모한 헛짓거리를 벌이자 "조"의 사업은 덜컹 거리지만 여전히 마약, 매춘, 수송 등에서 다른 조직들 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쭉 이어질 것 같던 평화는 누군가 "조"를 암살하려고 하면서 흔들립니다. 그리고 성공한 사업가로서의 삶을 살던 "조"는 아직도 자신이 마피아의 인간이라는 걸, 그리고 여전히 밤을 지배하는 규율과 율법은 낮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에서 독자적인 규칙으로 돌아가는 마피아의 세계에서 정점을 향해 날아오르는 "조 커글린"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 "무너진 세상에서"에서는 그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린 자신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 두 형들 때문에 사이가 나빴던 부모 밑에서 고아처럼 자랐던 "조"에게는 패밀리 조직원들이 가족과 형제들입니다. 같이 마약을 밀매하고, 밀주를 만들고, 사람을 죽이며 끈끈한 관계를 맺어가지만, 그들은 대부분 왕자의 자리에 오르면 왕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을 지닌 남자들이기에 우정은 순식간에 금이 가기 일수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형제라고 부르던 사람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 넣고, 바다에 던지고, 목을 베어버립니다. 결국 아무도 영원한 왕이 되지 못한 채 서로를 죽이는 비극을 되풀이 합니다.
"아들을 사랑하나?"
"세상에서 제일."
"그럼 당신 생각은 때려치우고 엄마를 선물하게."
먼투스는 옷장에서 갈색바지를 꺼내 입었다.
"아들은 언젠가 떠나. 늘 그래. 평생 같은 방에 앉아 있다 해도 아버지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니까."
먼투스는 바지 고리에 혁대를 꿰어 넣었다.
"나도 아버지한테 그랬소. 당신은?"
조가 럼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먼투스는 가죽으로 된 총 지갑을 어깨에 찼다.
"비슷해. 그렇게 어른이 되잖아? 아이들은 매달리고 사나이는 떠나고."
이 작품 "무너진 세상에서"가 출간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 "스티븐 킹"은 자신의 트위터에 이 작품을 "마리오 푸조"의 "대부"이후 최고의 갱스터 소설이라고 극찬했습니다. 그만큼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비정하고 잔인한 마피아의 세계를 훌륭하게 재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결코 마피아를 미화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멋진 농담들을 던지는 낭만적인 남자들처럼 보이지만 죽음에 대한 불안을 떼어놓지 못하고 잠을 설치고 비열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이기적인 남자들입니다. 자신들의 나약함과 불안감을 폭력으로 감추고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가진 남자들.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규율을 지키는 자신들에게 자부심을 느끼지만 정작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를 빼앗아 버린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멍청한 족속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도 그런 처지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런 모습들이 도덕심과 동정심 그리고 배려 등을 제거하면 드러나는 남자라는 동물들의 본모습일 지도 모릅니다.
"아버지."
토머스가 불렀다.
"응?"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에요?"
조는 토머스의 셔츠에서 구토 자국을 보았다.
"아니다, 아들. 특별히 좋은 사람이 아닐 뿐이야."
작가 "데니스 루헤인"은 이제 미국을 대표하는 범죄소설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의 글은 거칠지만 문학적이고, 날 것의 냄새가 남아있지만 아주 정교합니다. 생생한 대사들과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이야기들은 그의 작품들이 왜 최고의 범죄소설로 추앙받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냉정한 세상 속의 범죄와 인간들의 운명을 제대로 표현합니다. 그가 이룬 업적들은 결코 아무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데니스 루헤인"은 이 '커글린 가(家)' 삼부작으로 야심차게 새로운 도전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미국의 역사 속에 스며든 범죄와 사람들의 드라마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성공들 중에는 생애 첫 '에드거' 상 수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계엔,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진솔함이 존재했다. 이곳에 들어와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지은 죄의 죄수이자, 망가진 삶의 볼모였다. 영혼이 무구하고 삶이 자유로워서, 조 커글린이나 디온 바르톨로, 엔리코 디자코모가 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이 세계의 일원이 된 까닭은 죄와 슬픔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삶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배우겸 감독인 "벤 애플렉"이 이 작품 "무너진 세상에서"의 전작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를 촬영 중에 있습니다. 이미 감독 데뷔작을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으로 찍었는데, 두 번째 만남도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범죄소설이라기 보다 역사소설에 가까웠던 첫 번째 작품 "운명의 날"과 갱스터 소설인 후속작 두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기묘한 삼부작의 훌륭한 마무리로 이 작품 "무너진 세상에서"는 완벽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렇게 될 줄 예상했음에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슬픔과 허무함 때문에 계속 입맛이 씁쓸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데니스 루헤인"은 항상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끝냈는데도 책을 읽는 동안 조금은 슬프지 않은 마무리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들이 매력적인 이유가 어설프고 작위적인 해피엔딩 따위는 결코 없기때문인데도 말입니다.
다들 잘 지내구려. 모쪼록 편안하기를. 그가 죽은 자들에게 말했다.
그래도 사과는 하지 않으리다.
될 수 있으면 삼부작을 순서대로 읽으시길 추천드리지만 여의치 않으시면 두 번째 작품부터 읽으셔도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이 작품 단독으로도 훌륭하지만 더 깊은 여운을 느끼시려면 전작의 감정들을 이어가시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데니스 루헤인"은 언제나 그렇듯 멋진 작품들을 써내는 끝내주는 작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시게 될 거라고 장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