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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평점 :

'아이리시 느와르의 시인'으로 불리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범죄소설 작가 "켄 브루언(Ken Bruen)"이 2001년에 발표한 "잭 테일러(Jack Taylor)"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밤의 파수꾼(The Guards)"입니다. 이 작품은 출간되고 나서 작가의 예상과는 다르게(?) 평단의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에드거', '마카비티', '셰이머스' 상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르고 그중 '셰이머스' 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많은 평론가들이 21세기를 대표하는 범죄소설 중 한 권으로 자주 언급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아일랜드 공화국 경찰, '가르다(Garda/Guards)'에서 나온 "잭 테일러"는 아일랜드에서는 보기 힘든 직업인 사립탐정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맡은 사건들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며 나름 명성이 쌓아가던 어느 날, 자신의 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혀달라는 여인의 방문을 받은 "잭 테일러"는 내키지는 않지만 사건을 수락합니다. 일단은 돈을 벌어야 좋아하는 술을 사마실 수 있으니까.
가르다에서 잘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정말 잘리고 싶다면 제대로 노력해야 한다. 공개적으로 대망신을 당하지만 않으면 그들은 거의 모든 잘못을 눈감아 준다. 내게도 일이 많았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주의
경고
마지막 기회
유예
그럼에도 나는 달라진 게 없었다.
물론 술도 끊지 못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가르다와 술은 아주 오랜 동안 애정 넘치는 관계를 유지해왔으니까. 절대 금주를 선언한 가르다는 오히려 불필요한 의심을 받게 된다. 가르다 안팎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과속차량 단속 중 정부 고위관료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 안정적인 직장, 가르다에서 쫓겨난 "잭 테일러"는 탐정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르다 출신이라는 이점과 저렴한 수수료, 특유의 끈질김 덕분에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가는 "잭 테일러"에게 미모의 여성 "앤 헨더슨"이 찾아옵니다. 그녀는 자살로 종결된 자신의 열여섯 살 딸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의뢰를 하고, "잭 테일러"는 얼떨결에 수락합니다. 사건 수사에 있어서 인내와 고집을 특기로 내세우는 "잭 테일러"지만, 그에겐 큰 약점이 있습니다. 바로 알코올을 향한 복종입니다. 때문에 사건 수사는 반복되는 음주와 숙취로 인한 의욕저하 때문에 더디게 진행됩니다. 그러다 친구겸 조사원인 "캐시"의 도움 덕분에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아낸 순간 "잭 테일러"는 집 앞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고, 두들겨 맞으면서 본 괴한들의 신발로 그들이 가르다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가즈엔 왜 들어갔죠?"
"아버지를 자극하려고요."
"아, 아버지를 증오하는 모양이군요."
"아뇨, 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테스트였습니다. 아버지가 날 말리실지 궁금했어요."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혹은 가즈) 출신의 사립탐정 "잭 테일러"의 첫 번째 이야기인 "밤의 파수꾼"은 범죄소설이고, 하드보일드 소설일 수도 있고 느와르로 분류할 수도 있고, 탐정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이렇게 나누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만은) 어쨌든 큰 틀로 보자면 범죄소설입니다. 일반적인 탐정이 주인공인 미스터리 스릴러를 생각하시고 읽으시면 당황하실 테지만 이 작품은 분명 탐정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소설 속에 분명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이 있지만 이 작품은 사건이 중심이 아니고 탐정 "잭 테일러"가 중심인 소설입니다. 책 타이틀을 그냥 "밤의 파수꾼"이 아닌 "잭 테일러"로 해도 될 만큼.
소설은 자신의 딸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의 의뢰로 시작됩니다. 소녀의 자살사건은 다른 소녀들의 죽음과 이어지게 되고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기회를 "잭 테일러"가 어이없는 실수로_실수라기 보다는 큰 죄로 날려버리면서, 소설은 해결해야 할 사건에서 사건을 수사하는 탐정 "잭 테일러"와 그의 주변인들("잭 테일러"가 아버지처럼 의지하는 단골 술집의 사장 "숀", 가르다 초짜 시절부터 유일한 친구였던 화가 "서튼", 주정벵이 노숙자 "패드릭" 등) 사이에 벌어지는 균열과 그 틈의 어두운 곳으로 이동됩니다.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죽음과 그 죽음이 불러온 어이없는 죽음들 속에서 죄책감과 무력감에 고뇌하던 "잭 테일러"는 스스로 이 문제의 원인인 인물을 니모 부두 앞바다에 수장시킵니다. 자신의 죄와 술병도 함께.
속을 비워낸 흔적도 남아 있었다. 아침 기도의 흔적. 변기 앞에서 꿇어앉아 행하는 오래된 의식.
튀포드!
확실히 튀포드 변기들이 내구성이 좋다.
산발적으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내장이 흉강으로 솟구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흉강. 뭔가 있어보이는 단어다. 의학적으로 해박하다는 인상도 주고.
들어가면 웬만해서 잘리지 않고 정년까지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가르다에서 어떻게 하면 쫓겨날 수 있는지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신 우리의 "잭 테일러"씨는 탐정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 "밤의 파수꾼"의 주인공입니다. 아일랜드에는 탐정이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없으니 면허도 없고 사무실도 없는 "잭 테일러"는 단골 바에 죽치고 앉아 술을 마시며 의뢰인을 기다리다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걸로 근근이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목표는 있습니다. 자신의 남겨놓은 흔적들이 널려있는 아일랜드 골웨이를 떠나 런던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이건 어디까지나 목표이자 계획일 뿐이고 지금은 그저 소소한 의뢰를 맡아서 해결하기 급급합니다.
그는 고독하고, 비도덕적이고, 주책없고, 찌질하기도 하며 폭력적이고 삐뚤어진 유머감각을 지닌 알코올중독자입니다. 유일한 장점은 책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것.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에서 무시의 단계로 넘어간 어머니에 대한 감정들까지 그를 점점 더 술과 책에 몰두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사건은 해결하는 수사관입니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 습격-병원행, 음주, 실신, 기억상실-정신병원행 등 여러 일들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중 대부분은 우울한 생각이었다. 내게 친절을 베풀었지만 내가 심하게 학대한 사람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무시해버린 남들의 기분. 그렇다, 내게는 엄청난 죄의식이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후회와 넘치는 자기 연민을 더하면 전형적인 알코올의존자가 탄생한다.
작가 "켄 브루언"은 이 작품 전까지는 영국을 배경으로 소설들을 썼었습니다. 그러다 자신의 나라인 아일랜드가 미국물을 먹고 충분히 타락했다고 느꼈을 때 탐정 "잭 테일러"를 탄생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의 대표작답게 "켄 브루언"은 자신의 모든 장점을 이 작품과 이 시리즈에 쏟아 부었습니다. 어디로 방향이 튈지 모르는 인생사를 반영한 독특한 이야기 속에 재치 있지만 기이하게 쓴맛이 느껴지는 유머, 무감각한 폭력들, 도덕적으로 모호한 캐릭터들, 싸구려 같으면서도 스타일이 살아있는 작품의 완성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켄 브루언"하면 바로 글의 독창성입니다. 짧지만 강렬한 그의 문체는 읽어보면 누구나 그가 왜 범죄소설계의 시인으로 불리는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의미와 내용을 압축시킨 그의 문장과 단어들은 정말 최고급입니다. 때문에 "켄 브루언"의 작품들이나 글들을 읽으면 단어, 문장, 문단, 챕터, 작품으로 나누어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작품 "밤의 파수꾼"을 출간하고선 성공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 못한 "켄 브루언"은 이 작품이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고 수많은 상에 노미네이트 된 사실에 가장 놀란 사람 중에 한명이라고 합니다. 편집자들의 반대와 수많은 독자들의 항의와 협박 편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켄 브루언"는 "잭 테일러" 시리즈로 매춘부 재활시설, 집시문제, 아일랜드 교회와 사제들 등 아일랜드의 금기들을 건드리며 아일랜드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로 우뚝 서있습니다. 폭력성과 비도덕적인 문제로 호불호가 갈릴지는 몰라도 아일랜드 최고의 범죄소설 작가라는 사실에 지금껏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자의 셔츠를 움켜잡았다.
일으켜 세운 후,
하나
둘
끝.
그가 중심을 잃고 난간 너머 운하로 떨어져버렸다.
내 집의 문을 여는 순간 운하 쪽에서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그 사람 수영 못 할 거예요."
"그러거나 말거나."
"밤의 파수꾼"은 탐정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입니다.
하지만 작가 의 말에 따르면, "잭 테일러"가 있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잭 테일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해결되는 작품입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인지 감이 오지 않으신다면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15년 전 작품이지만 최고로 우아하고 스타일이 살아있는 범죄소설을 만나보게 되실 겁니다. 그동안 작가의 작품들 중 "런던대로", "Blitz"가 영화화 되었는데 "잭 테일러" 시리즈도 아일랜드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상당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이아인 글렌(Iain Glen)"이 "잭 테일러"역으로 나와 시즌 6까지 만들어졌는데, 개인적으로 상상했던 "잭 테일러"랑 이미지가 너무 흡사해서 좀 놀라기도 했습니다.
"켄 브루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가 술에 한껏 취한 채 대마초를 피우며 손이 가는 대로 글을 쓰고, 다음 날 맨 정신으로 자신의 글을 읽어보고는 '어? 괜찮은데!'라며 바로 출간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만큼 독특하고 제멋대로이며 골 때리지만 환상적입니다. 이 작품 "밤의 파수꾼"이 "잭 테일러" 시리즈의 마지막 국내 출간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그냥 사라지기엔 너무나 끝내주는 작가의 대표 시리즈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Jack Taylor : The Guards" 트레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