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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랜드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37
벨린다 바우어 지음, 강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요즘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 중 한명인 "벨린다 바우어(Belinda Bauer)"가 2010년에 발표한 데뷔작 "블랙랜드(Blacklands)"입니다.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독자들과 평론가들에게 수많은 호평을 얻으며 훌륭한 작품성을 인정받아서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CWA(영국 추리소설가 협회)가 주관하는 2010 'CWA 대거 어워드'에서 최우수작품상에 해당하는 '골드대거'를 수상했습니다.
영국의 작은 마을의 한 황무지에서 매일같이 삽으로 땅을 파는 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이 땅을 파는 이유는 오래전에 죽은 삼촌의 시체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소년의 삼촌은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한 걸로 추정되지만 여전히 시체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쇄살인범이 다른 아이들을 묻은 이 광활한 황무지에 삼촌 역시 묻혀있다고 확신하는 소년은 매일 학교를 마치고 이곳에서 땅을 팝니다.
침대 위쪽 벽에는 하늘색과 흰색이 섞인 맨체스터 시티 스카프가 핀으로 고정된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스티븐은 빌리를 향한 연민과 분노가 뒤섞인 익숙한 고통을 느꼈다. 그는 죽어서도 여전히 머저리였다.
스티븐은 빌리가 시간의 벽을 훌쩍 뛰어넘어 어느새 자신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이 조카의 귀에 대고 비밀과 해결책을 속삭여주기라도 할 것처럼 가끔 이곳으로 몰래 기어들었다.
잉글랜드 서머싯의 엑스무어에서 열두 살 소년 "스티븐 램"은 연쇄살인범의 희생자였던 자신의 삼촌 "빌리"의 시체를 찾기 위해 매일같이 삽으로 땅을 파고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을 납치해서 살해한 소아성애자의 희생자들 중 한명인 삼촌의 시체는 범인의 범행부인으로 찾지 못했지만 "스티븐"은 다른 죽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삼촌 역시 엑스무어에 묻혀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매일 황무지에서 헛수고만 하다 지쳐갈 무렵 "스티븐"은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그것은 바로 20년 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서 형을 살고 있는 연쇄살인범이자 소아성애자인 "아널드 에이버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겁니다. 인내심으로 출소할 날만을 기다리던 "아널드"는 자신이 죽인 아이에 관한 편지를 받고 흥분과 기쁨을 느낍니다. 편지 한 통으로 지금까지 감옥생활을 견디기 위해 잊고있었던 달콤한 기억을 다시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 "아널드"는 편지를 보낸 사람과 게임을 하기로 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내용으로 편지를 주고받던 와중에 "아널드"는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상대가 어린 소년인 것을 알게 되고, 더 이상 자신의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출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임에도 탈옥이라는 위험한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소년으로 자신의 달콤한 욕망을 다시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스티븐에게는 스티커 책 '사커 스타'에 실린 스티븐 제라드보다 삶 자체가 중요했다. 새로운 스티븐은 매일 오후 이곳에 나와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땀을 흘리며 곰팡이가 슨 샌드위치를 먹고 녹슨 삽으로 힘없이 땅을 찔러대면서 죽음을 찾았다.
삼 년 동안 이것이 그의 삶이었다. 삼 년! 그는 방금 형을 선고받은 듯 느껴졌다. 그의 뒤에 펼쳐진 삼 년이라는 허송세월을 생각하니 마치 앞으로 또 그만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들은 것처럼 충격적이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그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삽을 들고 거대한 황무지에서 땅을 파는 소년 "스티븐"은 가난한 집의 외톨이 소년입니다. 그는 인터넷이니 휴대폰같은 것도 없고, 동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유일한 친구와의 사이에서도 불이익을 당하는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하지만 "스티븐"에게는 이런 일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 벌어진 불행의 여파에 비하면. 매일같이 창문을 보며 18년 전에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기다리는 할머니는 자신과 다른 가족들에게 항상 괴팍하게 굴고, 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아들 "스티븐"에게 투영시키는 어머니는 그에게 매정하게 굴며 다섯 살 동생 "데이비"만을 아낍니다. 우연히 불행의 시작인 삼촌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스티븐"은 자신이 삼촌의 시체를 찾아서 집으로 데리고 온다면 불행이 사라지고 여느 가정처럼 자신의 가정도 평온하고 행복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멍청하게 죽어버린 "빌리" 삼촌이 짜증나기도 하지만 불쌍하기도 한 "스티븐"은 삼촌을 찾기 위해 결국은 감옥에 있는 살인범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그저 삼촌이 묻힌 자리를 물어보는 편지였지만 변태 살인범 "아널드"에게는 인내심을 얻기 위해 스스로 거세해야만 했던 욕망에 불을 지피게 되는 불씨가 됩니다. 그저 지긋지긋한 불행을 벗어나고 싶었던 "스티븐"은 나중에야 자신이 아직은 힘이 약한 어린 소년이라는 걸 깨닫게 되지만 너무 늦은 뒤입니다.
처음에 그는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다. 어머니가 와서 아들을 찾아내 하얗고 보송보송한 수건으로 감싸주며 집으로 데려가 스튜와 초콜릿 푸딩을 먹여주었으면. 그런 일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영영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흐느낀 직후의 여운이 싹 가셨다. 그보다 더 시린 마음속 상처는, 그런 기억이 있길 바라지만 실제로는 일어난 적이 아마 절대 없었을 거라고 말했다.
얼굴도 본적이 없는 삼촌의 죽음이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소년과 약한 존재를 가지고 놀다 죽이는 기쁨이 삶의 목표인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랜드"는 정말, 정말로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소년과 살인범의 시점을 교차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클라이맥스에서 그 모든 것을 한순간에 터트려 버리는 단순한 구성이지만, 그 구성을 따라가다 보면 순수함과 슬픔, 상실감, 애처로움, 긴장감, 두려움, 불안감을 거쳐서 크나 큰 감동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이 무심코 하는 행동과 말에 쉽게 상처받는 어린 소년의 연약하고 순수한 마음에 종종 미소를 짓기도 하며 아파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더 이상 자신이 소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울음을 터트리는 주인공의 모습에 저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애처로움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습니다. 이런 감정들과 감동은 "존 하트"의 "라스트 차일드" 이후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두고두고 생각하게 될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스티븐은 신경쓰지 않았다. 초콜릿 바는 아이들이나 먹는 것이었고, 오늘 그는 그보다 훨씬 의젓해질 터였다. 그는 섹스나 관계의 이치는 모를 수도 있었지만 해질 무렵엔 가족이 온전한 하나가 되어 있길 바랐다. 지금처럼 그를 불안과 슬픔에 빠뜨리는, 여기 저기 잘라져 부서져내리는 반쪽이 아니라.
작가 "벨린다 바우어"는 시나리오 작가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이 걸출한 작품 "블랙랜드"로 이제 영국에서 잘나가는 범죄소설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 작품 이후에 발표한 작품들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으며_네 번째 작품인 "Rubbernecker"는 또 다시 '골드대거' 후보에 올랐습니다_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블랙랜드"을 읽고서 작가의 내공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껴서인지 이런 그녀의 성공이 당연해 보입니다. 플롯의 훌륭함이나 문장의 빼어남과 아름다움은(소설의 반 정도가 어디에다 베껴 써놓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입니다.) 둘째 치고, 마치 실제로 십대 초반의 소년이 쓴 듯 한 이야기 부분과 교도소 안의 소름끼치고 역겨운 변태 살인범의 생각과 행동을 순식간에 오가는 작가의 필력을 보면서,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것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나는 순간, 순수함과 악이 조우하는 순간에 폭발하는 에너지는 엄청난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독자들을 휘어감아 버립니다. 그때문에 그 후에 몰려오는 감동은 주체할 수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는 할머니의 불행을 끝내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랐었지만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을 뿐이다. 아널드 에이버리는 그를 죽일 터였고 그러면 할머니는 아들과 손자를 영원히 기다릴 터였다. 그리고 어머니 역시 할머니처럼 창가에 붙박여 하염없이 기다릴 터였다. 할머니가 죽은 뒤에도 계속.
데이비는? 데이비는 어떻게 될까? 데이비는 무시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그 애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테니까. 그 애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영원히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그렇지 않다 해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기본적으로 재미없는 작품에 대한 글은 쓰지 않고 좋게 읽은 작품에 대한 글만 쓰는데, 이정도로 좋고 훌륭한 작품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저의 부족한 글 솜씨를 한탄을 하게 됩니다. 이 작품 "블랙랜드"는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입니다. 제 부족한 글 솜씨로는 그저 훌륭하고 좋은 소설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올해가 가기 전에 생각나시면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감정과 생각들 사이에서 즐겁고 감동적인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거라고 장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