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텐더
윌리엄 래시너 지음, 김연우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검사 출신의 범죄소설 작가 "윌리엄 래시너(William Lashner)"가 2014년에 발표한 작품 "바텐더(The Barkeep)"입니다. 출간 직후 현재까지 미국 아마존에 2600여개의 리뷰가 달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이 작품 "바텐더"는 '에드거' 상 최우수 페이퍼백 부분 최종 후보까지 오르며 평단의 인정도 받았습니다.


한 늙은 주정뱅이가 바로 들어가 스툴에 앉아 바텐더에게 모히토를 주문합니다. 주문받은 모히토를 만드는 바텐더에게 늙은이는 쓸데없는 말들을 주절거립니다. 바텐더는 바의 다른 손님들에게 하던대로_노련한 바텐더의 기본인_적당한 대응을 하지만 왠지 모를 불쾌감을 느낍니다. 바텐더의 형식적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하던 늙은이는 바텐더의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 그의 주의를 끕니다. 그리고 바텐더에게 자신이 바텐더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전합니다.


저스틴은 한순간 이 늙은이의 더러운 입을 한 대 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너무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 그 감정에 그는 이가 갈릴 만큼 쓰디쓴 쾌락을 느낄 지경이었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이제 그는 거의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았기에 몸을 휘감고 배 깊숙이 내려가는 지금의 쓰디쓴 분노는 거의 참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망스러운 패배감이었고, 따라서 그는 입술을 깨물고 충동을 억눌렀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대부분의 충동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 왔다. 살해된 어머니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던 아들이라면 누구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또는 고객 만족을 실천해야 하는 바텐더들에게도.


한때 촉망받는 로스쿨의 졸업생이었던 "저스틴 체이스"는 6년 전, 어머니가 살해당한 현장을 발견한 후 바텐더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며 바텐더 생활을 하다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저스틴"에게 6년 전에 그의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주정뱅이 노인 "버디 그래클"이 찾아옵니다. 그는 "저스틴"에게 자신은 목사라는 사람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죽이는 킬러였고 자신에게 만 달러를 주면 사주한 사람을 찾아서 죽여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저스틴"은 "버디"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범인은 이미 잡혀서 감옥에서 죗값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저스틴"의 아버지인 "매켄지 체이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스틴"은 그동안 자신이 절제하며 다스렸던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낍니다. 혹시 아버지가 진범이 아니라면 누가 어머니를 죽이라고 사주했을까? 어머니를 시기했던 이모? 아버지 집에 살며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은 형? 형수? 아니면 아버지의 정부였던 여인 "애나"? 일단 다시 한 번 어머니의 사건을 되돌아보려고 마음먹은 "저스틴"은 6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만나러 교도소로 향합니다.

 

"내가 진실이라고 아는 것을 아버지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 수 있죠?"

"네가 부럽구나."

"왜요?"

"이 세상에는 가을 태풍에 떨어진 이파리들처럼 불의와 의혹과 불확실한 게 널렸는데 넌 네가 진실이라고 확신하는 것만 남아 있는 것 같구나. 그렇게 확신을 갖고 산다니 좋겠단 말이다."

 

자신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악몽인 어머니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아들의 이야기인 스릴러 소설 "바텐더"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제목처럼 바텐더입니다. 독특해 보인다는 표면적인 이유로  주인공의 직업을 바텐더로 설정만 한 것이 아니라 소설 속 이야기의 반 이상이 바에서의 대화로 이루어 집니다. 거기다 아픔과 충격, 죄책감으로 고통받다가 '선(禪/Zen)' 사상으로 자신의 욕망과 집착 등을 거세함으로서 평온을 찾은 남자에게 무관심과 친절 사이에서 적당히 줄을 타야하는 노련한 바텐더 만큼 어울리는 직업도 없을 겁니다.

괜찮은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서 야망을 품고, 괜찮은 미래를 꿈꾸던 주인공 "저스틴"은 피를 흘리며 죽어있는 어머니를 발견한 순간 인생의 중심축이 무너지게 됩니다. 정신병원의 다른 환자에게 건네받은 책 '티벳사자의 서'를 통해 선 사상을 접하면서 고통의 암흑에서 빠져나오게 된 "저스틴"은 변호사가 아닌 바텐더로서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모든 욕망과 소유, 집착, 야망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찾은 "저스틴"에게 스스로 청부살인업자라는 노인 "버디"의 방문은 잔잔한 연못의 수면 위에 떨어진 돌처럼 그의 마음 속에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저스틴"은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 어머니를 둘러싼 다른 이야기들을 알게 되고, 어쩌면 아버지가 범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저스틴"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평범한 아버지를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자신의 결정적인 증언에 대한 죄책감을 씻을 수 있겠다는 희망들을 품게 합니다.


사람들이 밀려들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 정적이 흐르는 이 시간을 저스틴은 가장 좋아했다. 바로 이 공기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퇴근 시간을 향해 분침이 움직이면 수천 개의 작은 사무실의 직장인들이 갈증에 조건반사적으로 침을 흘리며 수백 개의 바를 덮칠 참이다. 막 섞인 칵테일, 기분 좋게 게슴츠레해진 눈, 미친 듯이 마시기로 작정한 그날의 우울한 타협, 그 시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을 뿐 해피 아워라는 완전히 잘못된 이름을 달고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은 조용했다.


오래전 비극의 감춰진 진실을 다시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는 요즘 스릴러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대가들이라면 "할런 코벤"이나 "린우드 바클레이" 등이 떠오르는데,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이 작품 "바텐더"는 문학적 깊이가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할런 코벤"이 쓴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흔한 설정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 전개하느냐? 어떤 요소들을 녹여내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질이 확 올라가거나 그저 그런 이야기로 남는데 이 작품 바텐더"에는 흥미로운 요소들로 가득 차있습니다. 미국 중산층 가정의 엇나간 관계들, 또 다른 형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바텐더와 손님간의 흥미로운 대화들과 술 이야기, 반전 그리고 인상 깊은 엔딩. 사실 이 작품도 어느 시점부터는 예상대로 흘러가다 예상에 어긋나지 않는 클라이막스를 지납니다. 이대로 끝난다면 평범한 스릴러 소설로 그치겠구나 하는 순간 마지막 세 챕터를 통해 작가는 독특하지만 훌륭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엔딩까지 다 읽고 나서야 작가가 왜 주인공을 바텐더로 설정했는지 완전히 이해해버리게 됩니다.


바에서 하게 되는 거짓말은 대개 세 가지로 요약된다. '나 안 취했어.'와 '당신 지갑을 슬쩍하려던 게 아니에요.'와 '의미 없고 뒤끝 없는 섹스를 찾는 건 아니오.' 중 하나다.


작가 "윌리엄 래시너"는 필라델피아 검사 "Victor Carl" 시리즈로 인기를 끈 작가입니다. 작가의 작품들은 일본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지만 국내에는 이 작품 "바텐더"가 첫 출간작입니다. 사실 바텐더"가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 해외출간은 독일 다음으로 가장 빠르게 국내에 출간 되었습니다. '에드거' 상을 수상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좋은 작품이 출간되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술병에는 경고 딱지가 붙어 있어야 했다.

경고 : 내용물을 마신 뒤에는 삶이 당신이 견딜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한심하게 보일 수 있음.


그동안 읽어 본 소설들 중 이토록 술을 땡기게 만든 작품은 처음이었습니다. 더구나 매 챕터가 칵테일, 양주, 맥주 이름이라(간혹 차(茶) 이름) 더욱 갈증나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책 읽을 때는 가급적 술을 자제하는 제가 가장 많은 음주와 함께 보낸 소설로 등극해버렸습니다. 매 챕터가 짧아 진행이 빠른 현대식 미국 스릴러이지만 상당히 깊이가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멋진 엔딩은 몇 번이고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입니다. 이 작품 "바텐더"를 낸 출판사인 "피니스 아프리카에"가 내는 작품들은 항상 일정 수준을 유지하니 믿고 읽으셔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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