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스패로우 1 버티고 시리즈
제이슨 매튜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CIA의 첩보요원 출신의 작가 "제이슨 매튜스(Jason Matthews)"가 2013년에 발표한 작품 "레드 스패로우(Red Sparrow)"입니다. 이 작품 "레드 스패로우"는 작가의 데뷔작품으로, 출간 다음해인 2014년도에 '국제 스릴러 작가 협회'에서 주관하는 ITW 스릴러 상 최우수 데뷔작품상과 '에드거' 상 최우수 데뷔작품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은 스파이, 첩보 소설입니다.


러시아에서 미국 외교부 직원으로 위장한 CIA의 젊은 요원 "네이트 내쉬"는 러시아 정부의 요직에 있는 중요한 스파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마블"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리는 자신의 담당 스파이와 접선을 하던 "네이트"는 무작위 수색을 벌이던 러시아 SVR 감시팀에 우연히 발각되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깁니다. CIA는 가장 중요한 러시아 스파이를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할 수가 없기에 "네이트"를 핀란드 지부로 전출시킵니다. 러시아 정보부는 스파이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네이트"라는 결론을 내리고 자신들의 요원 "도미니카 예고로바"를 핀란드로 보냅니다.


현재 크렘린 궁의 주인은 정장과 넥타이를 차려 입고, 언론 담당 비서들을 두고, 정상회담에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사실 이곳에 잠시라도 머물렀던 사람들은 모두 스탈린 이후로 변한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정? 충성? 후원? 작전에서든 외교 석상에서든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대통령을 난처하게 만드는 무엄한 짓을 하면 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고 그 폭풍을 피할 곳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없다.


CIA의 젊은 첩보요원 "네이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러시아 스파이 "마블"의 핸들러입니다. 이 늙은 러시아 스파이를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의 임무인 "네이트"는 접선 도중에 그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핀란드의 헬싱키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우연히 얻어 걸린 "네이트"와 스파이의 접선 현장을 스파이의 정체를 밝혀낼 유일한 기회로 생각한 러시아 SVR 본부 제1국 부국장 "반야"는 자신의 조카이자 첩보요원 "도미니카"에게 핀란드로 가서 "네이트"를 포섭하라는 임무를 내립니다. 러시아 정보부의 첩보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도미니카"는 자신만의 계획과 원칙으로 "네이트"에게 서서히 접근 하지만 꽉 막히고 융통성 없는 상관들은 그녀에게 빨리 미인계를 써서 "네이트"를 침대로 끌어들일 것을 모욕적으로 독촉합니다. 그럴수록 자의식이 강하고 반항적인 성격의 "도미니카"는 스파이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느끼는 동시에 "네이트"에게 이성적으로 호감을 느낍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동료마저 러시아 당국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식탁보를 잡아당겨서 그릇들을 다 박살내는 아이가 러시아다. 그들은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접시를 깰 거야. 시리아에 화학무기를 팔고, 이란에 핵 연료봉을 주고, 인도네시아인들에게 원심분리기를 설계하는 법을 가르치고, 미얀마에 경수로를 짓지. 그래, 이들이 저지르는 짓은 한계가 없어."


스파이 소설로서 "I Am Pilgrim"과 함께 2013년 미국을 뜨겁게 달궜던 "레드 스패로우"는 미국의 CIA와 러시아의 SVR 첩보요원들이 얽혀서 서로 치열하게 속고 속여가며 벌이는 첩보전쟁을 그린 일급 스파이 소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이미 종식된 냉전의 낡은 흔적들 뒤편에서 여전히 미국과 러시아 스파이들은 소리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언제나 포섭대상에 적합한 인물을 발견하면 치밀하게 접근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포섭을 하고 정보원이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 때 조금씩 상대국의 기밀을 얻어 냅니다. 때로는 정보원 스스로가 자신이 포섭당한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기밀을 유출시키기도 합니다. 반대로 혹시나 상대국에 포섭된 자신들 안의 스파이의 존재에 촉각을 세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소설의 초반, 서로를 포섭하기 위해 접근한 "네이트"와 "도미니카"는 조금씩 서로에게 이성적으로 빠져듭니다. 하지만 정보요원들 사이에 사적인 감정은 금기사항입니다. 각자 서로를 탐색하며 포섭작전을 진행하는 동안 소설의 이야기는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요직에 있는 거물급 스파이들을 찾기 위한 더 큰 첩보전으로 확대됩니다. 양국 정보국은 자신들을 위한 스파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한편 자신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있는 자국 스파이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총알세례나 피 튀기는 싸움대신 탐색과 미행, 접선, 감시, 도청, 포섭 등을 하며 전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중심에는 스파이의 세계가 의례 그러하듯 음모와 배신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도미니카는 스스로에게 이건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 학교, 꼭대기에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박아놓은 담벼락으로 격리된 이 저택은 사랑을 제도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국가의 엔진이다. 이것이 육체적 섹스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은 발레 아카데미처럼 교육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고 깜빡거리는 불빛이 비치는 도서관에서 도미니카는 이걸 해내겠다고, 이 개자식들을 괴롭히기 위해서라도 해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주인공인 "네이트"와 "도미니카"를 포함해서 많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다 매력적이지만 이 작품 "레드 스패로우"속의 최고의 캐릭터는 바로 작품 제목인 "레드 스패로우"인 "도미니카 예고로바"입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와 음악가였던 어머니 밑에서 부족함 없이 살며 발레 아카데미 최고의 학생이었던 "도미니카"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부상이라는 불행에 좌절합니다. 그때 러시아 정보국 SVR의 부국장인 삼촌 "반야"의 은밀한 제안으로 한 사업가의 암살 작전에 동원되고, 현 러시아 체제에 부정적 시각을 지닌 부모와는 다르게 애국심이 투철했던 "도미니카"는 첩보학교의 유일한 여학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사람의 감정이나 소리를 색채로 느낄 수 있는 공감각자인 "도미니카"는 우수한 성적으로 첩보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반강제적으로 '창녀학교'라고 불리는 '스패로우 학교'로 보내지는 치욕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교육을 이수한 이후에도 창녀학교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그녀에게 따라 붙습니다. 정보국 상관들은 그녀의 제대로 된 첩보임무 수행 능력보다는 육체적 매력을 이용할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할 뿐입나다. 미국 CIA 정보요원 "네이트"를 포섭하는 임무를 맡게 되어 그와 만나면서 이성적으로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지만 여전히 육체적 포섭을 요구하는 상관들의 압박은 더욱 강도가 세지고, 결국 "도미니카"는 자발적으로 미국 스파이가 되기로 합니다.

얼핏 사랑에 눈이 먼 여자 스파이가 사랑과 조국에 대한 환멸 때문에 조국을 배반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도미니카"가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독립적이고 도전적인 그녀의 성격 때문입니다. 스파이가 된 상태에도 그녀는 러시아를 사랑하고 때때로 그것 때문에 갈등도 하지만 그녀는 첩보원으로써 스스로의 작전을 펼치길 원했고, 러시아를 좀 먹는 구시대적이고 탐욕스러운 고위관리들을 엿 먹이기 위해 스스로 적국의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너의 감시 탐지 루트는 너를 미행하는 자가 누군지 노출시키기 위해 고안된 경로로, 여기서 중요한 건 미행자로 하여금 자신이 들켰다는 걸 모르게 해야 한다는 거야. 감시자를 잡아 끌어내서 혼내주자고 만들어낸 루트가 아니란 말이야. 모든 미행에는 끝내야할 한계가 존재해."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칠판에 그린 가로선 위에 세로선을 하나 더 그어 교차시켰다. "바로 이 교차점에서 놈들은 너에게 들킬 것이냐, 아니면 널 놓칠 것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


작가 "제이슨 매튜스"는 CIA의 국가공작부(현 NCS)에서 33년간 활동한 베테랑 요원이었습니다.(그의 아내 역시 CIA 요원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스파이 기술들과 첩보 세계에 관한 묘사는 너무도 세세하고 사실적이어서 가끔 내가 스파이 기술의 교본을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렇다고 작가의 문학적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그 주변국 사이의 정세와 미묘한 관계의 사실적인 묘사, 탄탄하게 짜여진 플롯과 긴장감을 조성하는 구성 그리고 그 사이사이 등장하는 적절한 유머 등은 칭찬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간만에 만난 오락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담은 훌륭한 첩보, 스파이 소설이 아닐까 합니다.

 

"러시아는 분명 냉전에서 지지 않았습니다. 냉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첩보 소설을 좋아하지만 "존 르 카레"의 작품들을 어렵고, 요즘에는 다른 좋은 첩보소설을 못 찾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 작품 "레드 스패로우"를 추천 드립니다. 정말 멋진 첩보 소설입니다.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스파이 세계에서 사랑과 믿음, 신뢰를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도 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물론 작가가 CIA 출신이라 미국 편향적 시각은 감안하셔야 할 겁니다. 특히나 "푸틴"을 실명으로 엄청나게 까댑니다. 아, 곧 영화로도 만날 수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 "도미니카"역에"루니 마라"가 유력했는데 현재는 "제니퍼 로렌스"로 선회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꼭 읽어보셨으면 하는 훌륭한 첩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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