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매드 픽션 클럽
도널드 레이 폴록 지음, 최필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미국 오하이오 출신의 작가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Pollock)"이 2011년에 발표한 첫 장편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입니다. 30여년을 오하이오의 한 공장에서 일을 하다 57세라는 늦은 나이로 작가가 된 "도널드 레이 폴록"은 이 작품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로 독일과 프랑스에서 추리 문학상을 수상하고 2012년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Top 10에 선정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유럽에서 히트를 하며 여러 추리 문학상을 수상했지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추리소설을 생각하시고 읽으신다면 상당히 실망하실 겁니다. 이 책에 항상 딸려오는 수식어인 '핏빛 고딕 누아르'처럼 인간의 악행을 지독할 정도로 냉정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써낸 르포 같은 소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고국으로 돌아온 "윌러드 러셀"은 여전히 일본군이 산 채로 가죽을 벗기고 십자가에 매달아 놓아 파리에 뒤덮혀 있던 미군 병사를 발견한 장면을 잊지 못하고 괴로워합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에마"는 자신이 거두어 드린 가엾은 "헬렌"을 자신의 아들과 결혼 시키겠다고 하느님과 약속했지만 "윌러드"는 고향에 오늘 길에 들렀던 오하이오 미드의 작은 식당 종업원 "샬럿"과 결혼하고 고향을 떠나 미드에 자리를 잡고 가정을 꾸립니다. 아들 "아빈"이 열 살이 되던 해에 "샬럿"이 암에 걸리고 "윌러드"는 아들 "아빈"과 함께 아내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만의 기도용 통나무에서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샬럿"은 점점 암에 의해 죽어가고 "윌러드"는 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주어와 통나무 주위에 피를 뿌리거나 십자가에 거는 방식으로 제물을 바칩니다. 제물에 점점 집착하는 "윌러드"는 길거리의 개를 죽이거나 살아있는 양을 사서 제물로 바치다가 결국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제물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게 바로 죽음이야." 어느 날 저녁, 윌러드가 음울하게 말했다. 그와 아빈은 피에 절고 악취 풍기는 통나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네 엄마가 이렇게 되길 바라니?"

"아뇨." 소년이 말했다.

윌러드가 주먹으로 통나무를 탁 내리쳤다. "젠장 그럼 기도를 하란 말이야!"


전쟁이 끝난 후, 웨스트 버지니아로 돌아온 "윌러드"는 한눈에 반한 "샬럿"과 결혼해서 오하이오 미드로 떠나 "아빈"을 낳고 생활합니다. "에마"는 아들 "윌러드"와 자신이 돌보던 "헬렌"을 결혼시키겠다고 한 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지만 아들은 웨이트리스와 결혼해서 미드로 떠나고, "헬렌"마저도 떠돌이 전도사와 결혼을 합니다. 어느 날, 전도사 "로이"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생명을 죽음에서 부활시킬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증명하려 아내 "헬렌"를 죽여버리고, 딸 "레노라"를 "에마"에게 맡긴 채 사촌과 도망을 갑니다. "샬럿"을 살리기 위해 제물을 바치며 기도에 집착하던 "윌러드"도 그녀가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혼자 남은 "아빈"은 할머니 "에마"가 있는 웨스트 버지니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냅니다. 한편, 오하이오 미드에선 보안관의 여동생 "샌디"와 그녀의 남편 "칼"이 여름휴가 기간에 히치하이킹을 하는 남자들을 골라 살해하며 차를 타고 떠돌아 다닙니다.

이 작품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힘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적인 캐릭터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아빈"이 중심 캐릭터에 가깝기는 합니다.)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남자, 신과 소통한다고 믿으며 아내를 죽이는 전도사와 그의 사촌, 뇌물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는 보안관, 어린 소녀들을 꼬셔내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죄는 기도로 용서 받을 수 있다고 믿는 목사. 식당에서 일하며 짬짬이 몸도 팔아 남편을 먹여 살리는 아내와 아내가 번 돈으로 생활하는 남편. 이 부부는 함께 도로에서 모델이라고 부르는 희생자들을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마입니다. 소설 속의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가 괴물이고 그들이 사는 세상은 지옥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슬리는 건 신시아가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과의 동침을 지옥에 떨어질 엄청난 죄악으로 여길 줄 아는 여자들을 원했다. 선과 악, 순수와 욕정의 숙명적인 싸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그를 흥분시키지 못했다. 어린 여자를 꼬셔내 범할 때마다 프레스턴은 강한 죄의식을 느꼈다. 단 몇 분 동안이나마 양심의 가책에 빠져 허우적거릴 줄 알았다. 그런 감정은 그에게 아직 천국에 오를 기회가 남아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아무리 타락하고 잔혹했어도 숨을 거두기 전에만 그의 끔찍한 오입질을 회개하면 주님께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그는 확신했다. 중요한건 타이밍이었다. 그런 생각이 그를 더욱 흥분시켰다.


1940년대부터 60년대의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 미드와 웨스트 버지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폭력적이고 역겨우며 인간에 대한 연민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게 만드는 지독한 소설입니다.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괴물들입니다. 욕망과 집착, 맹신 그리고 무지(無知)로 인해서 탄생된 괴물들입니다. 권선징악 따위는 이 작품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고 모두가 점점 더 타락하며 스스로를 파멸시킬 뿐입니다. 아름답거나 일상적인 풍경 묘사가 있어야할 자리에는 죽은 동물들의 시체와 공장 굴뚝이 뿜어내는 연기가 대신 차지하고 있으며 감탄할 만한 화려한 수사를 배제하고 일말의 감정조차 드러나지 않는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는 소설의 분위기를 더욱 불쾌하게 만듭니다. 그렇지만 문학적으로 아주 훌륭한 작품입니다. 이렇게 역겨운 뒷맛에 괴로워하며 감탄한 작품이 얼마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런 작품이 탄생한 배경엔 작가 "도널드 레이 폴록"의 인생이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32년간 오하이오의 제지공장에서 노동자로, 트럭 운전수로 살았던 그는 약물중독과 알코올중독으로 재활치료를 여러 번 받은 후, 57세라는 늦은 나이에 작가로 데뷔합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영문학 학위를 받고 발표한 단편집 "Knockemstiff"로 호평을 받은 뒤 3년 만에 발표한 이 장편소설로 '진정한 미국 고딕 문학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올해 최고의 책 Top 10에 선정됩니다. 특히나 유럽에서 극찬을 받았는데 프랑스와 독일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프랑스판 '롤링 스톤즈'와 프랑스 잡지 'LIRE', 네델란드 신문 'Het Parool'가 뽑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잠깐. 맙소사, 설마 전도사를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응?"

"넌 전도사가 아니야. 인간쓰레기지."

티가딘이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했다. 반바지 차림으로 싸돌아다니던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보인 눈물이었다. "먼저 기도부터 할 수 있게 해줘." 그가 흐느끼며 두 손을 모았다.

"기도는 내가 대신 해줬어." 아빈이 말했다. "네놈을 지옥으로 떨어뜨려달라고 빌었지."


쉽사리 추천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불쾌하지만 영상이 아닌 활자이기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읽으셔야할 작품입니다. 작가는 악마적인 캐릭터들에게도 나름대로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긴 합니다만 단지 그뿐입니다. 특히나 작가는 소설 속에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습니다. 소설 속 목사나 전도사들은 맹목적인 신앙심을 담보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며 이용하면서도 당당합니다. 이용당하는 신도들 역시 무지(無知)도 죄라는 듯이 미련하게 묘사하며 독자가 동정심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작품 속에 어떤 등장인물에게도 감정이입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작가 "도널드 레이 폴록"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세상에는 멍청하거나 악한 인간들만 있을 뿐 신 따위는 존재 하지 않는다가 아닐까 싶습니다.


"말하는 걸 보니 훌륭한 기독교인 같네요." 남자가 말했다.

샌디가 피식 웃었지만 칼은 못 들은 척했다. "뭐 그런 셈이죠. 하지만 예전처럼 독실하진 않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하게 사는 건 쉽지 않죠." 그가 말했다. "악마가 늘 곁에 있으니까."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 대해 쓰면서 계속 잔인하다. 폭력적이다. 불쾌하다. 역겹다. 이런 말들만 너무 많이 한 것 같은데, 종전 이후 미국의 외진 마을의 현실과 지금보다는 더 본능에 충실하게 살던 시대의 인간들의 광기를 생생하게 묘사한 훌륭한 작품입니다. 정말로 인간이란 동물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 본 '아메리카 고딕 누아르'의 걸작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사실 도덕이니 양심이니 이런 것만 믿고 살기에는 선하게 산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이니, 인간은 아직도 그다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라는 악마가 늘 곁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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