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요 네스뵈(Jo Nesbø)"가 2014년에 발표한 "아들(Sønnen/The Son)"입니다. "해리 홀레"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언론으로는 2008년에 출간된 "헤드헌터" 이후로 두 번째 작품인 "아들"은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배우"채닝 테이텀"이 소설의 영화 판권을 사기위해 직접 "요 네스뵈"를 만나러 노르웨이로 간 사실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큰 이변이 없다면 아마 "채닝 테이텀"이 이 작품 "아들"의 주인공 "소니 로프투스"를 연기할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스타텐 교도소의 죄수들은 신비롭고 이상한 죄수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교도소 내에서 적이나 친구도 없이 조용히 홀로 지내며 다른 죄수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그 죄수의 이름은 "소니 로프투스". 그는 한때 촉망받는 레스링 선수였고, 두 사람을 살해한 범죄자이자 자살한 부패경찰의 아들입니다. 언제부터, 누가 시작한 것인지 모르고 "소니"의 축복이 정말로 영적인 어떤 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 받던 축복을 받아서 나쁠 것이 없기에 스타텐의 죄수들은 관례처럼 그에게 고해성사 비슷한 고백을 하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죄수가 "소니"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고백합니다.


요하네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곧 있으면 감방 문이 잠길 것이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제 말할 차례였다. 말하기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하고 싶은 말. 가슴에 너무 오래 담아둬서 뿌리를 내리지나 않았을까 두려운 말.

"네 아버지는 자살한 게 아니다, 소니."

나왔다. 마침내 말했다.


15살 때 까지 노르웨이 국가대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레스링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의 부정부패를 고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헤로인 중독이 되어 두 명을 죽인 죄로 스타텐 교도소에서 12년 동안 복역 중인 "소니 로프투스""소니"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죄도 대신 자백을 하고 그 대가로 헤로인을 공급받을 정도로 이미 인생을 포기한 헤로인 중독자이기도 합니다. 서른처럼 보이지 않는 소년 같은 외모, 신비한 눈동자, 조용히 잘 들어주는 그의 태도 등 어떤 이유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죄수들은 "소니"를 찾습니다. 그리고 죄수들은 그에게 다른 누구에게도 말 못한 진실들을 고백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한 죄수가 "소니"에게 고백을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부패경찰이 아니라 살해당한 뒤 자살로 꾸며졌다고. 얼마 뒤 "소니"는 스타텐 교도소를 유유히 탈옥을 하고, 오슬로를 뒤흔드는 핏빛 응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소니"의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자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몬 케파스"경정이 "소니"의 뒤를 쫓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뛰어내려야 해요. 왜냐하면 아들은 늘 자신을 아버지와 비교하고, 딸은 어머니와 비교하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요?"

"모든 아들은 언젠가 자기가 아버지처럼 될 거라고 믿죠. 안 그래요? 그래서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봤을 때 그렇게 실망하는 거예요. 자신의 결함, 미래의 패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가끔은 그 충격이 너무도 커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해버리죠. 당신은 어땠나요?"


작가 "요 네스뵈"의 두 번째 스탠드언론인 "아들"은 아버지의 불명예스러운 자살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남자가 아버지의 죽음이 그동안 알고 있었던 사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복수를 하는 단순한 내용의 소설입니다. 그러나 잔인한 핏빛 복수 이외에도 희생, 속죄, 구원, 희망 등 많은 것들이 담겨있는 소설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레스링을 배우고 아버지 같은 경찰이 되고 싶었던 소년 "소니 로프투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아버지의 자살로 무너집니다. 알코올 중독과 약물 중독이 된 어머니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신 역시 헤로인 중독자가 되어버린 "소니"는 미성년자인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헤로인을 공짜로 얻는 대신 다른 사람들의 죄들를 자백합니다. 그러다 18살이 되던 해에 두 건의 살인사건까지 대신 인정하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12년을 보냅니다. 서른이 되어도 소년같은 신비한 외모의 "소니"는 교도소 안에서 신성하고 상징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한 죄수의 고백으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탈옥을 하는 "소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에게 응징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몬 케파스" 경감이 "소니"를 쫓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소니"의 아버지 "아브 로프투스"와 친구였던 그는 도박중독으로 나락에 떨어졌다가 지금의 부인 "엘세"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시몬"에게 죽은 절친한 친구의 아들 "소니"의 탈옥과 일련의 의심스러운 살인사건에 얽혀지지만 이 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 전 꼬여버린 실타래가 이미 연결시켜 놓은 필연입니다.

탈옥한 "소니"의 복수는 아버지의 죽음에 연관된 사람들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대신 누명을 써서 제대로 죗값을 치루지 않은 사람들도 복수의 대상이 됩니다. 마치 그들을 죽여야만 자신의 죄가 온전히 사라진다는 듯이. "소니"의 응징은 묘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복수를 다루는 스릴러에서는 남자 주인공인 경우 불 같이 뜨거운 느낌을,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 얼음 처럼 차갑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들"의 주인공 "소니"의 복수는 뜨거움과 서늘함의 경계에 걸쳐있습니다. 이건 어쩌면 작가 "요 네스뵈"의 의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의 "소니"는 언제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묘사됩니다. 직접적인 "소니"의 심리 묘사나 생각, 행동은 될 수 있으면 배재한 채 제 3자의 시선과 느낌으로만 보여줍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쉽사리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하고 다음 행동 조차 예측하기 힘듭니다. 물론 나중에서야 결국 "소니"를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것은 "소니" 때문이라기 보다 죽어 마땅한 악랄한 악당들에 대한 혐오의 힘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가끔 소년으로 지칭될 정도로 서른 처럼 보이지 않는 앳된 외모와 예의 바르며 상냥한 태도, 신비한 아우라를 내뿜는 "소니"의 외모와 행동 때문에 그는 복수의 화신 이라기 보다 천국에서 떨어진 천사 같은 모습으로 우리들의 뇌리에 남습니다. "요 네스뵈"가 그리는 타락천사. 정확히 제가 느낀 주인공 "소니"의 모습입니다. 온화한 표정으로 망설임 없이 악인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천사.


그러니까 소년은 뭘 복수하고 싶은 걸까? 뭘 이루고 싶은 걸까? 구원받고 싶어 하지 않는 세상을 구원하는 것? 사실은 우리가 필요로 하지만 결코 그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세상의 모든 악을 말살시키는 것? 하지만 범죄 없는 세상, 바보들의 멍청한 반란도 없고 새로운 움직임과 변화를 야기하는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더 나은 혹은 더 나쁜 세상에 대한 기대 없이는. 이런 지독한 불안감, 산소 결핍으로 죽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상어처럼.

 

지금까지 작가 "요 네스뵈"는 단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는 자신의 인기 캐릭터 "해리 홀레"가 없이도 여전히 멋진 범죄소설을 쓸 수 있다고 스스로 증명합니다. 오히려 "헤드헌터"나 "아들"처럼 "해리 홀레"시리즈가 아닐 때 더 거칠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복수극처럼 느껴 질 수 있지만 이 작품엔 정말 많은 것이 담겨져 있습니다. 작품 곳곳에 뿌려져 있는 수많은 은유들과 비유들은 복수 이외에 원죄와 속죄, 응징과 구원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냐? 절대로 아닙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런 표현을 자제하고 싶지만 속된말로 쩝니다. 독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것만 딱 보여주며 조금씩 긴장감을 끌어 올려 한순간에 폭발 시키는 "요 네스뵈"의 특기는 여전하고 쓸데없어 보이던 사족들이 점점 한 곳에 모이며 완벽한 그림을 완성시키는 결말 또한 완벽에 가깝습니다. 조금 잔인하고 우연에 의한 작위적 부분 한두군데를 제외하고는 단점이 딱히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작품 "아들"도 일류 작가가 쓴 일류 스릴러라고 확신합니다.


"가끔씩 우리는 부모님의 실체를 안다고 착각하죠. 어쩌면 그분들은 우리 생각만큼 약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말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런 오해를 받는 걸 수도 있죠. 사실 그분들은 강한 사람들일지도 몰라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기꺼이 오명을 뒤집어쓰고, 불명예를 감수하고, 남의 죄를 뒤집어쓴 걸 수도 있죠.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강하다면 아마 우리도 그럴 거예요."


세상의 아들들의 대부분은 아버지를 너무 존경해서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까지 닮고 싶을 정도로 아버지처럼 되고싶어 하거나 반대로 너무나 증오하고 경멸해서 절대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버지란 존재는 아들들에게 있어서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마주해야할 커다란 장벽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기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남자가 아버지의 자살 이후로 스스로 성장을 멈춘 채 소년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뛰쳐나와 뒤늦게 어른이 될 준비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소니"는 12년 만에 다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늦었지만 자신의 나이에 맞게 어른이 되기 위해 사랑을 시작하고 언젠가 누구의 아들이 아닌 누구의 아버지가 될 겁니다. 그리고 '아들의 역할이란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라는 소설 속의 한 문장처럼 자신의 자식들이 자신을 뛰어넘어 더 높이 날기를 바라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사악하다는 이유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잘못된 선택, 집단에 해가 되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도덕성이란 하늘에서 정해줬거나 영원한 개념이 아니다. 그저 집단에 이로운 규율일 뿐이다. 그리고 그 규율과 용인된 행동 패턴을 따르지 못하는 자들은 끝까지 순응하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자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는 환상이다. 우리가 그렇듯 범법자들도 자기들이 할 일을 할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번식하여 부정적인 행동 유전자로 집단에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작가 "요 네스뵈"는 정말 타고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사람을 빨아들여 쉴새없이 긴장감을 안겨주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전속력으로 달립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무리 소설이라도 법을 무시하는 이런 개인의 복수극에 거부감을 느끼실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다 씁쓸함이 묻어나는 감동을 마주하게 되실 겁니다. 약간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극과 극의 선과 악 캐릭터들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주변캐릭터들로 중화되고, 잔인함 역시도 마지막 감동으로 어느 정도 희석됩니다. 정말 멋진 범죄소설입니다. 만일 "채닝 테이텀"처럼 제가 능력만 있다면 가장 먼저 영화 판권을 사고 싶을 정도로. 영화판이라는게 우리나라나 허리우드나 마찬가지라 판권이 팔렸다고 전부 영화화 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꼭 스크린으로 만나보고 싶습니다. 평균 이상의 연출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면 그동안 보아오던 흔하디 흔한 복수극으로 만들어 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원작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아들" 북 트레일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