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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올해 1월 출간되어 아직까지도 미국과 영국 베스트셀러 차트를 점령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작가 "폴라 호킨스(Paula Hawkins)"의 "걸 온 더 트레인(The Girl on the Train)"입니다. 마치 2012년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기세가 생각나게 할 정도로 흥행을 하고 있는 "걸 온 더 트레인"은 영국에서 베스트셀러 차트 20주 1위를 기록하였고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차트에서는 19주 1위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차트 하드커버 부분 2위에 올라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전미대륙에서 6초마다 팔린 책', '영국에서 18초마다 팔린 책' 등의 홍보문구가 납득이 가는 돌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말을 제외한 매일 아침 애시버리에서 기차를 타는 "레이첼"은 기찻길 옆의 주택들을 바라보며 심리적 안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런던까지 갑니다. 그중 거의 매일 기차가 멈추는 구간에서 보이는 한 주택의 부부에게 더 애착을 느끼는 "레이첼"은 그들에게 이름까지 지어주며 그들의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상상합니다. 어느 날, "레이첼"은 그 집에서 부인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키스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레이첼"은 자신이 그 여자의 불륜을 목격한 다음 날 그 여자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기차가 정지 신호에 묶여 있는 사이 나는 그들을 찾아본다. 제스는 아침에, 특히 여름이면 자주 집 밖으로 나와 커피를 마신다. 그런 그녀를 보면 가끔은 그녀에게도 내가 보이는 것 같은, 그녀도 나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손을 흔들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는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다. 제이슨은 일 때문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지, 그리 자주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 나는 그들이 뭘 하고 있을지 상상한다.
바람난 남편과 이혼 후 친구 집에 얹혀사는 "레이첼"은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까지 당한 상태입니다. 집주인인 친구에게 실직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매일 출근 시간에 맞추어 애시버리에서 런던까지 가는 기차를 타는 "레이첼"은 자신과 전 남편 "톰"이 살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택에 살고 있는 완벽해 보이는 한 부부를 보며 큰 애착을 느낍니다. 실제로 만나 본 적도 없고 그들에 관한 사소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하지만 "제스"와 "제이슨"이라는 이름까지 붙여주며 그들의 일상생활, 직업 등을 상상합니다. 과거에 자신이 누렸고 지금도 누리고 있어야 마땅한 부부생활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레이첼"이 그리는"제스"와 "제이슨"은 세련된 삶을 살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부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레이첼"은 "제스"가 남편 "제이슨"이 아닌 다른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서는 우습게도 배신감을 느끼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 돌아오는 기차에서 그 집을 보다가 충동적으로 내릴 결심한 "레이첼"은 다음날 아무 기억도 못한 채 엉망인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서 깨어납니다. 도대체 자신이 그곳에서 내려 어떤 행동을 했는지, 왜 자신이 다쳐서 피를 흘렸는지 기억나지 않아 불안해하던 "레이첼"은"메건"이라는 여인이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메건"은 "레이첼"이 "제스"라고 이름 붙여준 바로 그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제이슨"이라고 부르던 "메건"의 남편 "스콧"이 실종된 "메건"을 얼마나 그리워하며 괴로워하는지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레이첼"은 경찰에게 자신이 본 불륜 현장을 증언하지만 무시당하고, 점점 더 사건에 집착하는 "레이첼"은 거짓말까지 하면서 직접 "스콧"을 찾아갑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속이 쓰리다. 어제, 맑은 머리로 이성적이고 올바른 생각을 하던 나는 이 일에서 내 역할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내 안의 착한 천사들이 이번에도 술에게, 그리고 술에 취하면 나타나는 인격에게 지고 말았다. 주정뱅이 레이첼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과도하게 마음이 넓어지고 태평해지거나 아니면 미움에 빠져버린다. 그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순전히 그 순간만 존재한다. 주정뱅이 레이첼은 이 사건에 끼어들고 싶어서, 스콧의 답장을 어떻게든 받아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
기차에서 잠깐씩이지만 매일 바라본 집에 사는 여자가 실종되고 어쩌면 그 여자가 사라진 원인의 실마리를 목격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 여자의 집착으로 시작되는 "걸 온 더 트레인"은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 "레이첼"과 실종된 여인 "메건", 그리고"레이첼"의 남편 "톰"과 불륜을 저지른 후 재혼한 "애나", 이 세 명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물론 소설의 대부분은 주인공 "레이첼"의 시점으로 진행되지만 다른 두 여인의 시점도 상당히 중요한 중심축으로 작용합니다. 작가 "폴라 호킨스"는 이 세 여인의 상황과 심리를 집요하고 세세하게 묘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교차시킴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모든 주요 등장인물을 의심하게 만들며, 자칫 단조로워 질 수 있는 이야기에 풍부함과 반전을 극대화 시킵니다. 거기에 "레이첼"의 전 남편이자 이제는 "애나"의 남편인 "톰", 실종된 "메건"의 남편 "스콧", "메건"의 심리 상담의였던 "카말"과의 관계까지도 얽혀지며 이야기는 더욱 흥미롭게 진행됩니다.
미련때문에 실패한 과거를 떠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기차를 타고 과거의 주변을 맴도는 여자,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안정된 삶에 정착하지만 집 주위를 지나는 기차를 바라보며 자신만 한곳에 정체한 채 멈춰있다고 느끼는 여자, 자신이 모든 걸 빼앗은 여자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것을 다시 되찾으려 한다는 불안감에 가득 찬 여자. 작중 화자인 이 세 명의 여인은 이야기 속에서 계속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유지하고, 집착과 욕망, 의심 등에 휘둘리며 거짓말과 위태로운 행동들을 합니다. 신기하게도 이 세 여인 모두의 불안한 심리와 집착의 원인은 '가족', 특히나 '아이'입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가정을 원했지만 그 간단해 보이는 것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만드는 이 비극들은 어쩌면 보편적인 중산층 사회에 대한 현대인들의 의식을 반영한게 아닌가 합니다.
아름다운 햇빛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함께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할 일도 전혀 없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이렇게 사는 건 여름에 더 힘들다. 햇빛이 넘쳐나 어둑한 곳은 찾기 어렵고, 모두가 밖에 나와 눈꼴사나울 만큼 정력적으로 행복한 기운을 내뿜으며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진 빠지는 일이다. 그들 틈에 끼지 못한다는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주말이 내 앞에 펼쳐져 있다. 채워야 할 텅 빈 48시간이. 나는 다시 진토닉 캔에 입을 갖다대지만,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다.
기차 안에서 창 밖으로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는 관음증이라는 소재 때문에 이 소설 "걸 온 더 트레인"을 "알프레드 히치콕"감독의 "이창"과 많이 비교를 합니다. 관음증이라는 소재가 아니더라도 이 작품에는 "히치콕" 스타일의 서스펜스를 쉽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양상의 엄청난 흥행과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이 중심인 심리 스릴러라는 부분에서 "나를 찾아줘"와 자주 비교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적 요소나 반전은 "나를 찾아줘"가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대신에 날카롭고 세밀한 심리 묘사와 단순한 듯 하지만 탄탄한 플롯은 "걸 온 더 트레인"의 승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작가 "폴라 호킨스"는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온힘을 바친 듯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고 나면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비호감으로 느껴지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나?라고 자문하게 됩니다. 사실 이런 의문은 몇 번 찾아온 내 일기장을 누가 훔쳐본 것 같은 섬뜩함도 한 몫 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습니다.
공허감. 그게 어떤 건지 나는 잘 안다. 그걸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상담 치료를 받으면서 하게 된 생각이다. 인생에 난 구멍들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다. 콘크리트를 돌아 뻗어나가는 나무뿌리처럼, 우리는 그 구멍들을 피하면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구멍들 사이의 틈에 자신을 맞춰가면서. 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이미 발 빠른 허리우드에서는 "걸 온 더 트레인"의 판권을 사서 주인공 "레이첼"역에 "에밀리 블런트"를 캐스팅하고, 영화 "헬프"의 "테이트 테일러" 감독에게 연출을 맡겼습니다. 개개인에 따라 현재 영국과 미국에서 이 책이 기록하고 있는 엄청난 흥행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야기의 스케일도 크지 않고 무언가 특별하고 엄청난 한방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잘 써진 훌륭한 심리 스릴러임에는 확신합니다. 중산층을 이루는 위태로운 현대인들의 심리를 이렇게 잘 묘사한 작품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개인적으로 뜨끔한 부분도 몇 군데 있을 정도로 날카롭습니다. 몇몇 분들이 지적하는 결말 부분도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주요 등장인물이 몇 명 되지 않아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추리를 대입하기 쉬운 이런 작품들은 어떤 뛰어난 반전이 튀어나와도 반전에 대한 놀람이 반감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좋은 작품입니다. 집요하리 만큼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스타일의 스릴러를 싫어하시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만족할 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