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기꾼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5년 5월
평점 :

위대한 범죄 소설 작가 "에반 헌터(Evan Hunter)"가 필명 "에드 맥베인(Ed McBain)"으로 1957년에 발표한 '87분서(87th Precinct)'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사기꾼(The Con Man)"입니다. 이 작품 "사기꾼"은 87분서 시리즈의 팬들이 시리즈 초창기 작품들 중 재미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뽑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쭉 활약하게 될 흑인 형사 "아서 브라운"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따뜻한 4월의 어느 날, 아이솔라의 87분서 형사실에 한 여성이 찾아옵니다. 그녀는 역에서 한 남자에게 사기를 당해서 찾아왔습니다. 87분서의 형사 "아서 브라운"이 이 사기꾼을 잡기위해 수사를 시작합니다. 한편, 크리스마스 시즌에 죽다 살아난 형사 "스티브 카렐라"는 하브 강에서 젊은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제보를 듣고 출동합니다. 제대로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시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의 하트 문신과 그 안의 알파벳 이니셜뿐입니다.
다소 음울하고 냉소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삶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기와도 같다.
주변을 둘러보시라, 여러분. 저 사기꾼들을.
4월의 87분서 형사들은 한 흑인 여성이 신고한 사기꾼과 허브 강변에서 발견된 부패한 젊은 여성의 시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고전적 수법으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에 대해서 그리 심각한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형사들도 있지만 "아서 브라운" 형사는 모든 범죄는 다 심각하다고 생각하며 수사를 시작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스티브 카렐라" 형사는 강에서 발견된 젊은 여성의 시체에 관련해 수사를 시작합니다. 너무 오래 물 속에 있어서 제대로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시체의 손가락 사이엔 하트 문신과 그 안에 MAC라는 알파벳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시체의 신원이 파악 되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여성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 시체에도 같은 부분에 같은 문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문신사가 실수를 했는지 MAC가 아닌 NAC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서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가 테이블로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프리실라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기대며 가장 값진 영어 세 단어를 속삭였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도 간교한 부드러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며 가장 값싼 영어 세 단어를 속삭였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
제목처럼 이 작품 "사기꾼"에서 작가 "에드 맥베인"은 사기꾼들을 잡는 형사들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주장하듯 우리는 너무 많은 사기꾼들에게 둘러 쌓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기꾼들에게 둘러 쌓여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딱히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거짓말이나 허풍을 치는 정치인, 사업가, 광고쟁이들 부터 시작해서 소소하게 금전을 갈취하는 잡범 사기꾼들을, 큰 돈이나 큰 재물을 갈취하는 거물 사기꾼들 까지. 사기는 눈에 보이는 피해가 발생되는 순간부터 범죄가 되고, 의도치 않았던 의도했던 사람이 죽는다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결국 사기꾼들은 다른 이들의 믿음을 이용해 자기 손에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는 질 나쁜 범죄자들입니다. 이런 범죄자들을 잡으려고 87분서 형사들은 뛰어다닙니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의 87분서 형사들은 탐문에 탐문을 거듭하며 수사에 온힘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꾸준한 노력은 결국 빛을 보게 되어 범인들을 찾아냅니다.
사실 제목을 보고 사기꾼 같은 잡범들이 나오니 이번엔 시리즈 중에서 힘을 빼고 쉬어가는 순서의 작품인가?란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가 작가 "에드 맥베인"에게 뒤통수를 크게 한방 맞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느 한 작품이라도 대충 쓰면 자신이 소설 속에서 여지없이 까댔던 사기꾼들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시선 속에 유머를 가미하며 이야기를 서서히 고조시키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정말로 심장이 쫄깃해지는 서스펜스를 안겨줍니다. 그 서스펜스의 주인공은 "스티브 카렐라"형사의 아내 "테디 카렐라"여서 더욱 스릴이 느껴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록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지만 이 시리즈 속의 최고의 여신인 "테디"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캐릭터 중 한명입니다. 심지어 "에드 맥베인"이 "테디"에 대해서 쓸 때는 음흉한 미소를 거두고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쓰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가의 무한한 애정도 느끼게 하는 캐릭터인데 그녀의 활약과 위기가 발생시키는 서스펜스는 정말 대단합니다. 더 이야기 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아무튼 마지막 부분의 서스펜스는 여지껏 읽은 시리즈들 중 최상위권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살인 사건이 드러날 참이었다. 살인 사건이 드러나기에 좋은 날이었다. 소설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기꾼에게라면 이보다 더 좋은 날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라면 딱 이런 식으로 쓸 터였다. 하브 강 전역에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그 너머 하늘은 불길한 회색빛으로 흐려 있다고. 강 위의 예인선이 때때로 신음을 내뱉고, 리버 고속도로 반대편의 운동장은 텅 비었으며, 비가 꾸준히 내려 검은 아스팔트가 번들번들 빛난다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기꾼이라면 카메라를 돌려 조용하고 텅 빈 운동장을 내려다본 다음, 리버 고속도로의 콘크리트 위를 가로질러 강으로 이어지는 둑의 경사면을 내려갈 것이다. 사운드트랙에는 예인선의 울부짖음과 음침한 빗소리, 썩은 나무 기둥을 찰싹이는 강물의 중얼거림을 담을 것이다.
전작 "마약 밀매인"을 읽어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원래 그 작품의 마지막에 "에드 맥베인"은 "스티브 카렐라"를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편집자와 출판사가 엄청나게 반대를 해서 다시 살아난 "카렐라"는 비록 작가가 생각하는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나 영웅이 아니지만, 시리즈 팬들에겐 이 시리즈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 "카렐라"가 그대로 죽었다면 이 시리즈가 50권 가까이 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더 이상 "테디"도 못 보게 되었을테고...
"나는 다른 작가가 쓴 경찰 소설은 읽지 않는다. 겸손하지 못한 말이지만 세계의 어떤 경찰소설 작가한테도 배울 것이 없다. 오히려 그들이 나한테 배워야 할 것이다." - 에드 맥베인
87분서 시리즈 중에서 올해 "마약 밀매인"과 "사기꾼" 두 권이 나왔으니 어쩌면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인 "Killer's Choice"는 내년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년엔 세 권 정도 출간 되었으면 좋겠네요. 초반에 이 작품 "사기꾼"이 87분서 시리즈 팬들이 뽑은 시리즈 초창기 작품들 중 최고로 재미있는 작품이라고 언급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읽었냐구요? 엄청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국내판 표지가 약간의 귀여움과 앙증맞음을 뿜어내고 있지만 소설 막판의 서스펜스가 정말 장난이 아닌 작품입니다. 경찰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제발, 꼭 읽어 보셔야할 작품입니다. 물론 출간된 시기가 50년대이긴 하지만 작품 그 자체로 워낙 훌륭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