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시력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박현주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르웨이 범죄소설의 '여제' 또는 '대모'라고도 불리는 "카린 포숨(Karin Fossum)"이 2011년에 발표한 스탠드언론 "야간시력(Jeg kan se i mørket/I Can See in the Dark)"입니다. 1974년 시집으로 노르웨이 문학계에 처음 등단한 이후 단편집을 거쳐 "콘라드 세예르(Konrad Sejer)"경감 시리즈를 내기 시작하면서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범죄소설 작가가 된 "카린 포숨"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돌아보지마(Se deg ikke tilbake!/Don't Look Back)"로 '글래스 키'를 수상하며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중년의 남성 "릭토르"는 11년간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하며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양원 동료를 짝사랑하며 타인과의 사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릭토르"는 일이 없는 시간엔 공원에 나가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다른 사람들을 관찰 하는게 유일한 소일거리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릭토르"에겐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돌보는 노인환자들 중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거나 죽음의 문턱에 있어 기력이 없는 사람들을 남몰래 학대하는 것입니다.


누구든 장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선 정신이 나갈 정도까지 심술궂게 바뀔 수 있는 썩어빠진 개인. 하지만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다른 사람들을 흉내 낼 수 있다. 예의범절과 다정함, 친절을 흉내 낼 수 있다. 힘든 건 나쁜 충동을 억누르는 것이다. 종종 내가 통제력을 잃으면 일어날 일, 실제로 간간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노인환자들을 돌보는 간호사로 뢰카 요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릭토르"는 일종의 소시오패스입니다. 그는 요양원 환자들을 간호하면서 남들이 안볼 때 몰래 노인들을 학대합니다. 처방약을 변기에 버려버리거나 귀 뒤를 꼬집고 머리를 잡아 땡기며 희열을 느낍니다. 거기다 자주 가는 공원에 앉아서 술주정뱅이, 젊은 연인들, 이민자, 장애아를 데리고 오는 엄마 등을 보며 위험한 생각들을 하며 지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릭토르"의 모습은 예의 바르고 자신의 일에 열심히인 40대 남자입니다. 어느날 "릭토르"는 공원에서 자주 마주치는 노숙자처럼 보이는 술 주정뱅이 "아르핀"에게 호의를 베풀며 친해지지만 그가 자신의 믿음을 깨는 행동을 하자 "릭토르"는 분노를 조절 못하고 "아르핀"을 죽입니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고작 지폐 몇 장 때문에 그를 죽였다. 상처받았기 때문에 죽였다.

나를 속이고 기만했기 때문에. 나는 분노했다. 나를 이런 역경으로 몰아넣은건 아르핀이었다. 이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는 넘을 수 없는 장애로 바뀌었다.


이 작품 "야간시력"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소시오패스인 "릭토르"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의 결여와 특정계층에 대한 경멸로 가득한 그의 심리를 따라가며 그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독자들은 공유합니다. 공원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에 대한 이상한 상상, 요양원 환자를 괴롭히는 행동들은 "릭토르"가 혐오하는 대상이 의존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임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노르웨이의 복지제도의 혜택을 입는 사람들. 매일 일을 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사람들. 그가 요양원 노인들을 괴롭히는 것 역시도 죽음에 대한 흥미로움과 복지혜택 덕분에 억지로 삶을 늘려가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이 깔려 있습니다. 그런 혐오감과 망상이 더해져 "릭토르"의 인생은 추락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역시나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자신을 위한 계획이 진행된다는 망상을 멈추지 않으며 운명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이 어둠속에서도 사물을 확실히 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짜증, 체념, 화가 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것 때문에 경멸하게 되죠. 구걸하고 징징대고 불평하는 것들 때문에.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남을 돌보는 직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이해받고 싶네요."


그동안 나왔던 "카린 포숨"의 작품들 처럼 이 작품 "야간시력"도 자극적인 전개나 묘사 없이도 멋지게 서스펜스를 구축합니다. "릭토르"의 심리를 묘사한 탁월한 문장들이 펼쳐지는 초반부는 사람에 따라 살짝 지루할지 모르나 살인이 시작된 후부터 진행되는 예상치 못한 전개들과 결말을 다 읽고 나면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소시오패스의 심리묘사 뿐 아니라 복지국가인 노르웨이의 제도적 문제점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주 훌륭한 심리 스릴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북유럽 스릴러가 생소하신 분들에겐 끝까지 밋밋한 작품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하찮은 존재였다. 쳐다볼 것도 없고, 대체로 세계에 별 의미도 없고, 쉽사리 잊히는 존재. 이 깨달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몸을 돌려 내가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를 원했고, 나를 기억해 주고 존중을 담아 내 얘기를 하기를 바랐다. 이런 갈망은 점점 커져 내 가슴과 머리를 채웠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꾸어야 한다.


작가 "카린 포숨"의 대표 시리즈인 "콘라드 세예르" 시리즈 "돌아보지마", "누가 사악한 늑대를 두려워하는가"가 나온지 6년 만에 국내에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습니다. 많이 팔리지 않았기에 "카린 포숨"의 작품들을 더 이상 못 보나 싶었는데 다행이도 내년에 "콘라드 세예르" 시리즈인 "Varsleren / The Caller"도 출간된다고 합니다. 북유럽 스릴러가 요즘 상당히 인기가 많은데 국내에서도 "카린 포숨"의 진가를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가입니다. 플롯엔 별로 신경쓰지 않고 인간의 심리묘사와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 글을 쓴다는 작가의 말처럼 인간의 심리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엄청난 작가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