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걸출한 데뷔작 "차일드 44"로 인해 순식간에 스타 작가가 된 영국 출신의 작가 "톰 롭 스미스(Tom Rob Smith)"가 2014년에 발표한 최신작 "얼음 속의 소녀들(The Farm)"입니다. 그동안 "차일드 44"를 포함해서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을 집필하고 올해 처음으로 스탠드 언론인 이 작품을 출간 했습니다.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과는 다르게 이번"얼음 속의 소녀들"은 작가의 개인적인 요소들이 상당히 많이 담긴 작품입니다. 이 작품도 역시나 출간 즉시 BBC에서 영화 판권을 사들여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몇 년 내에 영화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은퇴하고 스웨덴의 농장으로 노후를 보내러 떠났던 아버지에게서 전화를 받은 "다니엘"은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놀랍니다. 어머니가 제정신이 아니어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다니엘"은 어리둥절 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조금 뒤에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자신은 멀쩡하며 지금 당장 영국으로 가겠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한마디를 더 합니다. 아버지를 절대 믿지 말라고.

"지금 공중전화로 전화하는데 금방 끊길 것 같다. 네 아버지가 분명 너에게 전화했겠지. 그 인간 말은 다 거짓말이야. 난 미치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건 의사가 아니라 경찰이야. 난 곧 런던행 비행기를 탈거다."

런던에서 애인과 함께 살면서 프리랜서로 일하던 "다니엘"은 은퇴 후에 스웨덴의 농장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부모님을 만나러 갈 약속들을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고 있던 와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아버지에게 듣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망상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라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예상치도 못한 소식.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서 스웨덴으로 가려던 "다니엘"은 또 다시 병원에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습니다. 도대체 어찌 돌아가는 상황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다니엘"에게 이번엔 어머니가 연락을 해옵니다. 어머니의 말 역시 "다니엘"을 더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자신은 멀쩡하며 지금 바로 런던으로 갈 거라고. 일단은 공항에서 어머니를 기다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다니엘"은 그간 변한 어머니의 모습에 놀라고 처음부터 계속 불안해 보이는 듯한 행동을 보며 스웨덴에서 무언가가 분명히 잘못 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니엘"로서 도저히 믿기 힘든, 아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머니는 부모님이 새롭게 정착하기로 한 스웨덴 농가가 있는 마을에서 어떤 끔찍한 범죄가 발생되었고 아버지가 그들과 공범이며 자신을 정신병자로 몰아 강제로 입원 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모은 증거들을 "다니엘"에게 차근차근 순서대로 이야기를 해줍니다.

나는 익숙함을 통찰로 오해했고, 같이 보낸 시간을 서로에 대한 이해의 척도와 동일시했다. 그보다 더 나빴던 것, 아무 의문도 품지 않은 채 안락한 생활을 받아들이고, 부모님이 자신의 가정환경과는 아주 다른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바람 이면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는지 한 번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만족해버렸다는 점이다.

주인공 "다니엘"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집니다. 갑자기 아버지는 어머니가 미쳤다고 하는 반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자신이 가담한 범죄를 은닉하기 위해 자신을 정신병자로 몬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건 어릴적 듣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문제로 "다니엘"에게 다가 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언제나 안락하고 평화로우며 어떤 문제도 없어 보였던 자신의 가정, 특히 부모님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걸 깨닫습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은 데로 믿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를 피해 런던으로 온 어머니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순서대로 들으면서 "다니엘"은 더욱 혼란스러워 집니다. '진짜로 엄마가 미친걸까?', '그렇다고 엄마 말을 다 믿기엔 너무 허술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언제나 정확한 사람이었으니 내가 믿어줘야 한다.', '근데 엄마는 또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빠를 나쁜놈이라고 한다.', '난 아빠가 언제나 그랬듯이 아직도 좋은 사람이라고 믿지만 왠지 이번 사건이후의 행동이 미심쩍다.', '거기다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엄마다.' 이런 저런 혼란과 갈등 속에서 "다니엘"은 결국 자신이 스웨덴으로 떠나 숨겨진 무언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 무언가는 비록 누군가가 숨기고 싶어서 깊은 땅속에 묻지만 _그 위로 오랫동안 눈과 비가 내려 얼었다 녹았다를 수없이 반복해도_ 드러나게 될 일은 드러나게 되기 마련이고 "다니엘"은 결국 그 무언가를 알게 됩니다.  

"다니엘, 이건 네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난 그 농장에서 네 아버지와 같이 나이 들어가고 싶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그런 가정을 만들고 싶었어. 우리 가족이 세상 한 귀퉁이에 작게 둥지를 튼 그 농장이 아주 특별한 곳이 돼서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던 네가 다시 우리를 찾아오기를 원했어."

처음에도 살짝 이 작품 "얼음 속의 소녀들"은 작가 "톰 롭 스미스"의 개인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갔다고 언급했었는데 실제로 전작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작가의 꽤 개인적인 상황에서 시작한 작품입니다. 스웨덴에 살던 아버지가 갑자기 전화를 해서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스웨덴에 가려던 중 병원에 있어야할 어머니가 병원을 탈출해 전화를 거는 부분은 작가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계기로 이 소설이 탄생했습니다. 거기다 주인공 "다니엘"은 작가 "톰 롭 스미스"의 작은 분신과도 같습니다. 자신과 똑같이 스웨덴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를 둔 게이로 설정했으니까요. 물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은 완전히 작가가 지어낸 허구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고, 가장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해서 오히려 소홀히 했던 가족 간의 관계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균열을 일으키고, 설사 눈치를 챘더라도 별거 아닌 듯 치부해버려 이상적인 형태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던 가족의 환상이 사라지는 순간을 스릴러라는 장르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아주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중반 넘어서까지도 "다니엘"​과 어머니의 대화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작가는 단지 두 사람의 대화가 대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부분에 엄청난 서스펜스를 불어 넣습니다. "다니엘"은 어머니가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혼란스러워하면 듣습니다. 들으면서도 엄마를 믿어야한다는 의무감과 어머니가 망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사이에서 갈팡질팡 합니다. 독자들 역시 어머니의 주장만을 듣기에 "다니엘"과 같이 무엇이 사실일지 망상일지 헷갈려하며 확신없는 상태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됩니다. 중간 중간 보이는 아버지의 모호한 행동은 더욱 모두를 헷갈리게 만듭니다. 그후 후반부엔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게 진행됩니다. 사실 읽으면서 좀 김이 빠지는 템포가 아닌가 잠시 생각했었지만 오히려 이런 템포로 인해 밝혀진 진실의 무게를 더욱 무겁해 느끼게 해줬습니다. 

그때 느낀 거라곤 내가 발견한 사실들이 불완전하다는 통렬한 인식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 존재하는 틈은 마치 입속에 이가 하나 모자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혀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잇몸의 빈 공간.

"차일드 44"이후로 참 오랜만에 "톰 롭 스미스"의 작품이 나와서 상당히 기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상당히 만족하면서 읽었습니다. "차일드 44"를 읽은 상태에서 "얼음 속의 소녀들"이란 제목을 보면 당연히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이 작품은 상당히 차분하게 가족들의 심리묘사와 각자 다른 주관적 판단으로 인한 오해와 진실의 무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특이한 구성의 소설입니다. 확실히 작가 "톰 롭 스미스"는 글을 잘 씁니다. 특히 큰 사건 없이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는 솜씨는 수준급입니다. 젊은 작가들 중 상위권에 올려 놓아야할 실력입니다. (물론 제 주관적인 판단입니다만.) BBC에선 이 작품 영화 판권도 구입하고, 작가에게 오리지날 드라마 각본도 맡겨서 스파이 드라마인 "London Spy"도 제작 중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게이 스파이 역에는 역시나 게이인 배우 "Ben Whishaw"가 주인공 역을 맡는다고 합니다.

많이들 기다리신 걸로 알고 있는데 내년 상반기 영화 "차일드 44"가 개봉할 때 쯤 "레오 데미도프" 삼부작 중 나머지 두 권 "The Secret Speech"와 "Agent 6"가 나온다고 합니다. 제가 알기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 권 모두 번역이 완료된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도 영화 개봉때 내는게 마케팅 면에서 이득이기에 가장 최신작인 "얼음 속의 소녀"를 먼저 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자극적이지 않고 인물 내면의 묘사가 탁월한 상당히 수준 높은 심리 스릴러 작품이니 작가의 팬이시면 일단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전 이벤트에 당첨되서 미리 읽었고 서점에는 27일쯤 깔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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