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머싯 몸의 <면도날>을 다 읽었다. 얼마전 회사 사람중에 한명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묻길래 서머싯 몸이라고 대답했더니 엥 그게 누구? 이런 반응이였다. 그럼 한국작가는 누구냐는 질문에 이승우 라고 대답했을때도 역시나 같은 반응. 자기도 스마트 폰이 나오기 전까지는 책 많이 읽었다고, 그런데 이젠 아예 안읽게 됐다고 말하면서 나한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봤었는데, 나도 누구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 봤어야 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글을 쓰면서 들었다. 서운했을려나 그 사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르지, 하지만 굉장히 재미있어.<오딧세이아>를 원문으로 읽는다는게 얼마나 가슴뛰는 일인지 몰라. 뭐랄까. 발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면도날 P116
발끝으로 서서 손을 한껏 뻗으면 별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란 어떤 기분일까. 나도 종종 원문으로 읽을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나의 지적 호기심은 나의 더 강력한 게으름에 늘 밀린다.
이 세상에선 도저히 믿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저도 믿고 싶었는데, 평범한 사람들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는 하느님을 믿을 수가 없더군요.(....)수사들이 암송하는 주기도문을 듣고 있으면 저들은 어떻게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꾸준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죠. 아이들이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한테 양식을 달라고 간청하는 것 보셨습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당연히 먹여 줄 거라고 믿잖아요. 아버지가 음식을 준다고 해서 고마워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죠, 오히려 낳아 놓고 제대로 못 먹이거나 안 먹이면 우린 그런 사람을 비난 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물질적으로든 영적으로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준비가 안 됐다면 그들을 창조하지 말았어야죠. -면도날 P421
나는 줄곧 믿고 싶어했던거 같다. 믿고 의지할 신을 찾아 헤메고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람들이 복종하고 믿는 저 단죄와 욕망의 신은 믿을수 없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
먼 훗날 사람들이 좀 더 커다란 통찰력을 얻게 되면, 결국 자신의 영혼에서 위안과 용기를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어떤 대상을 숭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잔인한 신들에 대한 기억의 잔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잔인한 신들의 비위를 맞춰 줘야 한다는 기억의 잔재라는 것이죠. 신은 제 안에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다고 저는 믿거든요. 그렇다면 저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해야 하는 걸까요? 저 자신일까요? 사람들의 정신적인 발달 수준은 저마다 다르죠(...)그러니까 인도의 그 수많은 신들은 개개의 자아가 궁극의 자아와 하나라는 사실을 꺠우쳐 주는 수단에 불과한 셈이죠. (....) 사실 저는 인식을 통해 실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이후 인도의 현인들도 인간의 결점을 꺠닫고 사랑을 통해 혹은 의로운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도 있다고 시인하긴 했지만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구원의 수단은 단영 인식이라는 점은 결코 부인하지 않았죠. 인식이라는 수단은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 즉 이성이니까요. -면도날 P446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이성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번 대선은 내게 말그대로 멘붕이였다.
정말 우리 인간의 가장 귀한 능력이 이성이 맞는 걸까 싶었으니까
지금은 <리영희 평전>을 읽고 있다. 구매한지는 꽤 되었는데 책장에 꽂아만 두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노이에자이트님의 글에 진보를 대표하는 000이 누구일까? 우리는 왜 그런 사람이 없나? 라는 글을 읽고 책장에 꽂혀 있던 리영희 평전을 읽기 시작했다.
4.19 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 요인들이 5.16쿠데타 정권에 가담하고, 4.19혁명 주동자들이 군사정권과 유신권력에 협조하고 참여한 대가로 일신의 영달을 누렸다. 쟁쟁한 반독재 지식인,언론인이 신군부정권에 봉사하고,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386세대 가운데 다수가 양지를 좇아 수구세력에 가담하였다. 이처럼 변화 무쌍하고 난장판인 격변기에 진실의 편에 서서 양심을 지키는 일은 구도의 길만큼이나 험난하고 고단하였다. -리영희 평전 P.30
리영희 선생님이 그렇게나 타도하려던 그 우상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국민 대통합과 국민 행복을 내세워서 말이다.
나는 박근혜 당선인이 말하는 그 대통합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우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는 쪽에서 어떤 의미의 대통합을 이야기 하는지.... 더욱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대통합이 아니라 더욱더 자율성과 개별성이 인정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한꺼번에 싸잡아 넣는 대통합을 외치는 대통령말고.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 한두번 실패해도 다시 일어 설수 있고, 노력하면 달라질꺼라고 희망을 가질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수 있는 길을 함께 걸어줄 대통령이 필요했다.
물론 대통령 한사람이 이 모든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이 필요했던거다.
하지만 그녀가 이야기 하는 대통합은 아마도
가진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대통합인듯 싶다.
대선 후유증인지 무슨 책을 읽어도 결국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 버린다.
그나저나
나의 이성은 치킨도 이기지 못하면서 남들의 이성을 탓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