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아니 언제부터인가 부쩍 많아졌다. 이런 사람들은 "너 머리가 왜 그렇게 나쁜 거야?" 또는 "그것도 할 줄 몰라?' 라는 식으로 타인에게 상처가 될 말을 반복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이처럼 말과 행동, 태도 등으로 교묘하게 정신적 폭력을 행하는 것을 '모럴 해러스먼트'라고 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이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또렷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로 '왠지 심적으로 지친다'거나 '몸이 안 좋다'와 같은 증상을 느끼며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다가 심한 경우, 사회생활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렇게 '모호하고 부정확한 상태로 지속적으로 충격을 받고 있다는 점'이 정신적 폭력의 최대 특징이자 주의해야 할 점이다. <들어가며 중 발췌>

 

누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될수 있는게 '정신적 폭력'이다.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그 부하는 아내에게 아내는 자식에게 그 아이는 또 다른 아이에게.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권력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이다. 그러하여 남편에게 아내가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것도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부하가 상사에게 그 폭력을 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적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것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이고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 가능하면 피해자와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한다.

 

이책에서 내가 얻은건, 나는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해자 라는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어릴때부터 '내가 없으면 네가 가장이다. 식구들을 돌봐야 한다'라고 아버지는 말했고,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 결혼을 안했을텐데, 너희만 없었어도 내가 이혼했을텐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나는 나때문에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태어난 것이 죄스러웠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가 라는 의문은 스무살 가까이에나 갖게된것 같다. 12살에 부모가 이혼하기 전에도 그 후에도 대체로 가장처럼 행동해야 했다. 아버지의 부재가 잦았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갖고 하고 싶은것 말고 해야할 것들 하기. 그러나 그에따른 권리 같은 것은 없었다. 나는 여자니까. 현재까지도 12세 이후로 나의 보호자였던 적이 없는 아버지의 치닥거리를 한다. 동생이 죽을때까지 모든 뒷처리를 내가 다 했다. 이 책에 보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나같은 이네블러가 꼭 존재한다고 한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다시 술을 마실수 있게 해주는 이네블러.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을때도, 동생이 수차례의 자해를 시도해서 병원에 가야했을때도 엄마가 쓰러졌을때도 나 혼자 간호했다. 아버지는 최근에 폐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됐고, 영양실조로 혼자 거동하는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지난 주 그 집에 가서 청소, 빨래, 음식, 쓰레기 처리 등을 하고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 의자에 앉아서 식사를 했는데,

어제 동사무소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중 전화를 받았는데 혼자 못움직여서 옷에다 실례를 했으니 입을 만한 옷을 사서 택배로 부치라고 했다. 저녁때는 '내가 혼자 움직일수 없으니 니 엄마가 와서 나를 돌보라고 해라' 라며 전화가 왔다. 아직도 아버지라고 하면 분노에 차서 저주를 퍼뭇는 엄마에게 자신의 병간호를 시키라고? 설령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해도 어째서 이혼한지

30년이 지난 전부인에게 자신이 다른 가족을 만드느라 이혼한 남자가(어제 발급받은 서류에는 한번도 본적없는 동생 두명이 있다)  이제와서 어떻게 저렇게 당당하게 나와 엄마의 병간호를 원할수 있을까? 나는 당연히 안된다고 했고 '그러면 나더러 혼자 누워서 죽으라는 말이냐?' 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저 당당한 요구에 왜 나는 당당히 대답하지 못하는 걸까.  그리고 왜 그렇께까지 살고 싶은건가?

 

어릴적부터 마음에 새겨졌던 과도한 책임감과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죄스러움은 자라서도 아니 이젠 늙었지, 늙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작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크게 상처를 준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인간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내가 지금 하는 짓거리가 내 사람에게는 '정신적 폭력'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정신적 폭력 중에 "너를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거나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메세지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자식에게는 엄청난 상처가 되는 말이지만, 이 말의 이면에도 부모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먼저 '상대방에게 죄책감을 주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더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너를 낳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내 인생이 불행한 이유는 '너 때문'이다. 이렇게 부모 자신의 불행을 자식의 존재 탓으로 치환해 공격하는 경우다.

동시에 그 말에는 '그래도 너를 키워젔으니까 나를 버리는 행위는 못된 짓이다'라는 메세지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너는 착한 아이(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 한다'라는 지배 욕구도 담겨 있을 것이다.

즉"너를 낳지 않았으며 좋았을 텐데"라는 말 이면에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기 싫다면 부모가 하는 말을 잘 들어!'라는 협박과 비슷한 지배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자식은 당연히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치가 없고 필요 없는 아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강렬한 공포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심한 소리를 하는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부모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한다.

이런 식으로 서로 떨어지지 못하고 상호 의존하는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부모와 자식도 흔하다. p55-56

 

상호의존의 실상을 단적으로 알기 쉽게 보여주는 예시가 알코올 의존증 환자와 이네블러의 관계다. 이네블러(enabler)란 알코올 중독 등 문제가 있는 가정이나 주위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봉사만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거의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네블러가 있다.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대부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므로, 혼자 살다 보면 경제적으로 궁핍해서 술을 마실 돈이 언젠가 동난다. 그런 사람의 생활을 보살펴주고 경제적 지원까지 해주는 사람이 이네블러다. 남성인 알코올 의존증 환자 옆에는 아내나 어머니, 애인, 동거자인 이네블러가 있다. 이네블러는 알코올 의존증인 남성이 술집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경찰서에 끌려가면 뒷수습을 해주고 생활도 보장해주면서 다시 술을 마실 환경을 만들어준다. p89

 

혹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가?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우울하다.

●자신이 하는 일이 전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이든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p139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정신적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폭력 가해자의 정신분석, 그 마지막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간단히 다뤄보자.

원래 남자와 여자는 '가치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이 말을 바꾸면 콤플렉스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은 대체로 '지식이나 능력'이라는 요소에 가치를 느끼려는 갈망이 강하다. 따라서 지식이나 능력과 연결된 부분이 채워지지 않으면 콤플렉스를 느낀다.(...)한편 여성은 '외모나 물건, 패션 감각, 맵시'등으로 가치를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그런 것을 '여성적 가치'라고 인식힌다. p95-96

파리 제8대학 정신분석학부에서 연구하셨다는 분이 이런 이런....

 

 

이어서 읽을 책. 얇지만 한참 걸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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