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p76

 

비극을 갈무리하고 지나갈 길을 찾아낼 수는 있다. 하지만 인생사의 수많은 비극을 완벽하게 극복할 수 있는 해답은 없다. 인생사의 비극적인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그 그늘까지 완벽하게 해소할 수는 없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괴로움을 끝낼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살아 있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찾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쓸 필요가 있다. p116

 

"나는 아직 몊 년을 더 살 생각이지만 다음 주에 당장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 같아. '파스칼의 내기(신의 존재에 부정적이더라도 신을 빋는 게 낫지 않은가?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혹시라도 천국에 가서 신을 만나게 된다면 그나마 신을 믿었던 사람이 득을 보지 않겠는가?)가 그럴 듯한 이론이라는 데에는 나도 동의해. 하지만 나는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해."p185-6

 

퀴글리 신부님과 대화할 때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퀴글리 신부님은 한 가지 문제를 다각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분이었죠. 신부님이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그러더군요. 용서만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약'이라고 하셨죠. '미워하거나 화내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몹쓸 짓을 저지르는 건 그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 여기고 용서해라. 용서만이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p252

 

'용서는 긍정적인 이기주의'p254

 

용서는 먼저 자기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미움과 원망을 버리는 일이다. 용서를 상대에 대한 수동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했으니 자기 자신의 도덕적 우위가 증명된 셈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용서는 존재론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각자가 세상에 홀로 서서 모든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타인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자신의 책임이다. 사는 동안 만나게 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결정해야 할 책임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받았을 때 그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것도 자기 자신의 몫이다. p258

 

 

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 혹은 내 자신이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들을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하는 말, 내 앞에 놓인 삶의 여러 가지 복잡한 질문들,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들, 눈앞에 펼쳐진 길이 어둡고 질척하게 보일 때,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힐들 때, 더더욱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들, 그런 질문들에 두루 대응할 수 있는 말, 이제 나에게 과연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겠는가? 하며 절망감에 빠졌을때, 우리 모두가 관성에 따라 어떻게든 그저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 내 자신을 추스르며 해주어야 하는 말, 그것은 바로 '굳어지지 말 것, 무릎을 굽히고 균형을 잡을 것,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써 볼 것.'이다.p300-1

 

 

 

 

 

 

 

 

 

 

 

 

 

 

 

 정답은 없지만 쫄지마 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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