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항쟁 비타 악티바 : 개념사 13
김원 지음 / 책세상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상의 인물들의 -대학생출신 노동자, 대학생, 노동자- 시선으로 바라본 그리고 기억된 87년 6월항쟁을 서술하는 방식으로

읽기에는 쉽지만 낯설다. 87년 6월 항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이미지는 그동안 학생 운동을 외면하고 있던 화이트 칼라들의 연대와 노동자 시민의 연대. 그러니까 모든 시민 계급의 연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화이트 칼라들이 농성에 대규모로 참여한것은 서울지역 뿐이였고, 지방쪽은 대부분 노동자나 하층민이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호헌 철폐나 직선제 쟁취 같은 당대의 문제 뿐만 아니라 시민들 전반의 삶의 질과 격을 높일수 있는 개헌에 관해서 까지 더 넓게 크게 커질수 있었던 시민 운동이

보수 여당과 무력한 재야 운동지도부로 인해 오직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것인가 라는 문제로만 정치적 상상력을 제한시켰다.

 

 

*7월30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소 노동자 1,800여 명이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농성에 돌입했다.

하지만 야당은 헌법 개정안 시안 마련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점차 국민운동본부에서 멀어지고 있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주도한 제8차 헌법 개정은 직선제와 권력 형태 문제 이외 문제를 모두 뒷전으로 미뤄버렸다. 자유와 평등, 재산관 행사와 공익, 갈등의 분쟁과 조정 같은 문제는 논의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오직 누가 대통령을 할 것이냐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같다. 6월에 거리에서 외친 민주주의는 이것이 아니었는데....

*7월31일

한 달이 지나도 국민운동본부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도 6월 승리의 감격에 젖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야당에모든 정치적 역할을 다 맡기려는 심산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p130

 

*8월25일

결국 여야 8인 정치 협상이 타결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의제는 권력 구조, 선거 규칙에 국한된 것이었다. 검열 폐지 등이 이야기되긴 했으나, 개헌의 근본 정신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개헌도 보수 야당의 협상에 의해 물 건너가는 것인지....어쩌면 6월 항쟁 과정에서 가장 유능했던 그룹은 야당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참으로 역사는 역설적이다. p13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