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선 현재 8시간 주야 맞교대로 되어 있는 작업을 5시간씩 3조 2교대로 한다. 즉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총고용을 유지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형편없이 줄어든다. 상하이차 인수 후 복지가 축소되고 라면까지 끊긴 노동자들의 제안이다.).

 

2.노조가 비정규직 고용안정 기금 12억 원을 만든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살아야 한다(회사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계속 내보내자 이런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한상균 지도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했다. 언제든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하루살이 노동자들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3.C-200 긴급자금, R&D 개발자금 1,000억 원에 대해 쌍용자동차 노조가 담보한다(당시 코란도C 개발이 회사의 경영난으로 지체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제안을 한다. 1,000억 원은 바로 노동자들의 퇴직금을 담보로 정부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제안을 보았을 때 잠시 멍했다. 상하이차는 미국보다 외환보유고가 많은 중국의 대기업이다. 약속한 투자를 한 푼도 안했다. 언제든 꾸어준다는 중국은행의 대출 2,000억 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이때 노조는 몰랐을 것이다. 정말 돈이 없는 줄 알고 이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퇴직이후 그들의 삶을 지켜줄 유일한 방채를 전부 내놓고라도 회사를 지키고 싶다는 것이다.

 

 2,646명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회사 방침에 한상균 노조지도부가 내놓은 방법이다.

다른 부분들 읽으면서도 많이 울었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가슴이 실제로 아팠다.

가슴뼈 안쪽 어딘가 손댈수 없는 곳에 날카로운 것으로 찔리는 통증을 느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사람들을 테러리스트 취급하며 무참하게 제압했던 국가권력뒤에는

역시 또 돈 이였다. 설마했다, 아닐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결국 또 돈이다.

몇몇 작자들 배불리자고 충분히 정상화가 가능한 회사를 남의 나라에 기술유출까지 시켜가면서

팔아먹은 것이다. 그 몇몇 작자들에 각하의 형님의 아들의 회사이름도 역시 또 등장한다.

 

 

 

 

1994년 여름 주유소에서 알바를 했었다. 시급이 정확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1,200~1,400원 정도 였던듯 하다.

찌는 듯한 더위, 어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은 차 옆으론 계속해서 뜨거운 바람이 뿜어져 나오던 그 여름날,

어떤 남자 손님이 주유기 옆에서 주유가 끝나길 기다리는 내게 물었다.

"학생, 시급이 얼마야?"

"1,400원이요."

"그럼 학생은 지금 시간당 1,400원에 학생의 인생을 팔고 있는거야. "

"네?"

 

19살의 나는 시간당 1,400원짜리 노동자였고

지금의 나는 시간당 7,680원의 노동자이다.

 

책상에 앉아서 나를 팔게된 이후 나는 그만 잊고 말았다.

'나도 노동자일뿐이다' 라는 사실을 말이다.

 

3년이란 시간동안 모른체 했다. 내가 달리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지금도 내가 할수 있는 일 따윈 없다.

그저 또 마음뿐이다. 외면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하지만

그래도

적어도

내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다름없는 똑같은 노동자이며,

저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내게도 내 가족 내 친구에게도

언제든지 똑같이 일어날수 있다는 것만은 똑똑히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놓인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동료를 밀쳐야 하고, 의자를 놓친 자는 다시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죽음의 룰'또한 거부할 때가 됐다. 신뢰 게임을 하던 그날, 비로소 나는 의자놀이의 저주를 비켜가는 방법을 배웠다. 그것은 파트너를 내 무릎에 앉히는 것이었다.

                                                                                                       -사IN 편집국장의 편지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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