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자라서 더 나은 어른이 된다."
술에 취해 사느라 나이를 헛 먹었다. 신체는 진작부터 노화가 진행중인데도 마음은 애써 모른 척
아 몰라....그냥,.... 마시면 그만이지 뭐.....이러고 수십년을 헛살고 있으면서, 타인에게는 왜 그렇게 박하게 구는지....제 정신에 제 앞가림이나 할 것이지....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미 나이는 꽤 먹어버렸는데, 이미 어른이어야 하는데, 이제 성숙 해야 할 어른인데 아직 제대로 성장조차 하지 못한 나는 이제서야 장래 희망이 생겼다.
"우선은 어른이 되자, 그리고 그다음에는 좀 더 자라서 더 나은 어른이 되자.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주변에 친절하고, 배우고 행동하는 어른이 되자."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입니다. 어른은 어린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어른은 어린이를 존중 해야 합니다. 어린이와 함께 미래의 위기와 새로운 기회에 대응해야 합니다. 이때 어린이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동료 시민입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곧 어린이가 살아갈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잊지 마세요, 여러분, 세상에는 언제나 어린이가 있습니다.
어린이를 환영해 주세요.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 주세요, 처음 보는 어린이와 대화해야 한다면 존댓말을 써주세요. 그럴 때 여러분에게는 "나도 이제 다 컷다!" 하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 어린이와 보호자에게 순서를 양보해주세요. 어린이 일행은 언제나 시간이 더 걸립니다. 뒤에서 천천히 해도 된다고 하고 시간을 벌어 주세요. 제 말을 믿으세요, 여러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집니다. 유아차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보호자가 보이면 도와주세요, 어린이를 가르치고 돌보는 선생님들께 감사하고, 그분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도록 목소리를 모아주세요. 생각보다 빨리 우리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린이는 빨리 자라니까요. 131
그런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사랑 받는 게 무언지 배웠다. 선생님들이 나만 꼭 집어 사랑하지 않더라도, 사랑 받는 아이 중 하나라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했다. 사랑은 자격을 갖추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학교에 있는 동안 만큼은 가정의 그늘을, 폭력을, 냉담함을, 긴장과 불안을 잊을 수 있던 아이들이. 169
나는 학교가 정말 좋았다. 무섭고 어려운 아버지, 늘 슬프고 신경질적인 엄마가 없는 공간인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그 공간 자체가 너무나 좋아서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동안 거의 매일 전교에서 일등으로 등교를 했다. 방학이 괴로웠을 정도니까. 물론 성적이 좋아서 학교가 좋았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학교라는 곳에서 나는 편안하고 위로 받았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도 그럴까? 그럴 수 있을까? 마냥 친구가 좋고 존경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선생님이 있고 학교에 가는 날만 손 꼽아 기다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행복지수 꼴등인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그러니까.....나 하나쯤은 인생을 좀 대충 살아도 되지 않을까? 부분 부분 망치는 건 정말 티도 안 날 것이다 무력감이 거의 권태가 될 때 변하지 않는 세상이 걱정스러울 때 , 흔적 없이 사라진 거대한 동상과 사람들을 떠올린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되는 대로 살아보자, 인생은 소중하지만, 딱히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 모르겠으니까.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고, 혹시 내 삶에 의미라는 게 있다면, 수많은 사람의 하나로 살아가는 것 자체에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일단은 존재하는 게 내 의무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225
네 그래서 일단은 존재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장래 희망도 생겼거든요.
그러니 '노 키즈 존'이 없는 세상은 그저 이상일 뿐일까?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 키즈 존'은 사라져야 한다. '어린이'라는 사실은 명백히 어린이의 정체성이다. 정체성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것은 , 실질적으로 어쩔 수 없다 해도, 논리적으로 어떨 수없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사회적으로 허용된다면 '노 휠체어 존'이, '노 시니어 존'이. 또 '노 무슨 무슨 존'이 생길 것이다. 사실 문제 상황을 가정한다면 차별과 배제는 제일 쉬운 해결책이다. 나는 이 어려운 문제를 어렵게 풀고 싶다. 평등을 찾아가는 길은 원래 어려운 법이니까. 264
2024년 신생아 출생률이 0.75명이다. 이대로라면 노 키즈 존을 할 수조차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어른들이 미래를 더 이상 꿈꾸지 않으니 미래가,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혹시 나는 '나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 뒤로 숨었던 게 아닐까? 나 자신도 어른이면서 아닌 척하느라고, 겸손한 외양을 하고 존경하는 어른의 이름을 읊어온 것 아닐까? 그분들을 마음으로부터 공경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좋은 어른'이 되는 건 먼 훗날의 일로 미룬 것 같다. 어른이 된 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 말은 '훌륭한 어른'한테 여러 책임을 떠넘겼다는 뜻도 된다. 내 생각이 지나친 걸까?
나는 존경하는 어른들이 있으면서도 툭하면 '이 시대는 진정한 어른이 부족하다''본받을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아쉬움을 부풀렸다. 내가 어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게 참조할 세대가 없기 때문이라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거리를 미리 만들어둔 것 같다. 303
한편으로 나는 내가 존경하는 어른들 처럼 좋은 어른이. 지금 당장 되고 싶다. 김장하, 박막례,채현국, 김영만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제부터 안간힘을 써보려고 한다. 내가 마치 그런 어른인 척하고 사는 것이다. 따뜻하게, 힘 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부조리를 잊지 않은 그 '젊은 어른'처럼,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아니, 꼭 되고야 말겠다. 306
날마다 보는 험악한 뉴스만큼, 험악한 뉴스에 무감해지는 나 자신에게 겁이 난다. 그럴 때 친절해지기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진다. 누군가에게 친절을 주려면 상황 파악도 잘 해야 되고, 용기도 내야 한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낼 수 있는 용기는 여기까지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기려고 한다.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는 게 '친절함'이라면 나는 그에 걸맞은 판단력도, 용기도 갖고 있을 테니까. 언제까지나 다정하고 용감한 어른이 도고 싶다. 그게 나의 장래 희망 이다. 327

<현재 내 책상 위 작은 책장에 현시점 내 인생 책들>
우울하고 불안하지만,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술을 마시지 말고, 이미 지나온 50년 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자.
공복 슬로우 조깅, 근력 운동, 식단을 지금처럼 꾸준히. 몸이 먼저다. 여유와 친절은 건강한 몸이 기반이다.
마음에 경고등이 켜지면 반드시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작가님 비밀인데요, 저 제 직장에서 작가님을 아는 사람인척 했어요. 읽는 세계 안에서 알고 지내는 거지만요.
되게 되게 자랑스러웠거든요.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 정치가 책을 미워하고 사회가 책을 소외 시키고 경제가 책을 의심해도, 독자는 계속 생겨난다. 브레히트는 " 암울한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 것인가? 그래도 노래 부를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라고 했다. 우리는 계속 읽을 것이다, 우리 세계에 대한 책을.151
세상의 어떤 부분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을 때, 변화를 위해 싸울수록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만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미래에서 누군가가 와서 지금 잘하고 있는 거라고, 미래에는 나아진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미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어린이다.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어린이가 ‘나답게‘ 살 수 있게 격려하고 보호해야 한다,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의견을 가질 수 있게 가르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시민으로서 존중하면서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어린이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미래가 바로 그러하듯이. - P123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린이한테는 ‘무심히‘하면 안 된다고, ‘별 뜻 없이‘하면 안 된다고. 어린이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특별 대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어린이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상대가 어린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비건인 친구와 외식을 하려면 비건 식당에 가야 한다. 당연하다. 다리가 불편한 노인과 식당에 가려면 앉기 편한 식당을 찾아야 한다.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이 라면 주문에 시간이 걸려고 그러려니 하게 된다. 어느 자리에 어린이가 있다면 그를 ‘무심히!‘새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나한테야 "빨리 가세요" 할 수 있어도(사실은 안 되지만), 어린이한테는 그러면 안된다. 보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호자도 없는 어린이한테는. - P252
나는 어린이가 미워지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어른스럽게 대처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운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고 그런 걸 마주하면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니까 그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생겨난 미움을 잘 처리하고 새 얼굴로 어린이를 보고 한 번 더 어린이를 다독이는 것이 어른의 몫이다. 그런 어른이 될 수 만 있다면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다. 이론서에서 읽은 적은 없지만, 그것만은 분명히 안다. - 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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