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할 것은, 과거의 애착관계를 다시금 돌아보고 통합하려 할 때, 

수치심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 자의식 정서가 개입할 여지를 두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당신이 사랑 받지 못할 존재여서가 아니고, 

당신이 어딘가 결함이 있는 존재여서도 아니고, 

당신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인 것도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좀 좋지 않았습니다. p 92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던 말들.

"너를 임신하지 않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 너희들만 아니었으면 이혼했을 텐데'. "네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를 낳고 기른 사람에게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들었던 말이다.

지금이야 그 사람도 그때는 어렸고 힘들었으니 그랬겠지 라고 말은 할 수 있지만,

아마도 내 우울의 시작점이 된 저 말들이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바꿀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한 엄청난 죄책감과 수치심 심어 놓았다.


나는 이제 반백살의 어른이 되었는데 이렇게 엉망진창의 어른이 되어버렸는데

이제와 무엇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 셔츠들을 입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정말로 이렇게 웃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나도 따라서 웃는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하고. 그럴려고 입은 거니까.

우울하지만 귀엽고 싶고 우울하지만 행복하고 싶고 우울하지만 건강하고 싶으니까.

나는 대부분 우울하지만, 늘 우울한 사람은 아니라고 그 정도의 틈은 두고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그저 좀 운이 나쁜 거니까.....

내가 지금 바꿀 수 있는 건 이 정도 까지다.


이제부터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그리고 바꿀 필요가 있는 것과 바꿀 필요가 없는 것을 이성적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이십대 후반이 넘어서 까지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한 원가족에게 분노를 토로하고 있을 가치가 없습니다. 뒤도 돌아오지 마세요.. 성인인 당신이, 당신의 보호자입니다. p 137


자존감의 문제와 별개로, 어떤 상황에도 자꾸만 겸손을 떠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애가 굉장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은 겸손할 수준도 안 되는 사람의 겸손은 건방이라 하셨지요, "내가 이렇게 큰일을 했는데 왜 사람들이 존경을 표하지 않지?" 하는 식의 과도한 자기애와 욕망을 드러내면 이는 너무 위험하니, 이를 정반대로 표현하는 반동 형성이라는 방어기제에서 비롯된 것이 겸손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겸손을 표해도 될 만큼 무언가를 정말로 해내고 나서 그때 겸손해지면 됩니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사소한 성취에 대한 사소한 칭찬은 그냥 받아들입시다. - P25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며, 느닷없는 불행과 거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매일 조금씩의 허무를 이기고 그럭저럭 잘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100퍼센트 완벽해 질 필요도 없고 뭔가를 성취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성과들이 나의 존엄성과 가치에 큰 의미가 있긴 할까요?
살아온 그 수십만의 시간 동안 우리는 언제나 완벽하게 살아있었습니다. 0도 0.5도 아닌, 1로서 존재해 왔습니다.
괜찮아요. 충분해요.
이렇게까지 애쓰지 맙시다. - P116

이미 일어난 문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신을 행동에 온전히 책임을 지고 기꺼이 외로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때조차,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타인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마저 기만합니다. - P132

옆에서 단 한 명이라도 ‘지금은 억울해 하기 보다는 너를 들여다봐야 할 때‘라면 담담하게 잡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타인의 탓이라면 지금은 일단 힘을 키울 일이고, 누구의 탓도 아니라면 이제 그 꼬인 생각들은 들여다보아야 하며, 나의 탓이라면 그때부터 내 성장의 발전을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당신의 과거는 당신의 미래가 아닙니다. - P137

내가 그 일을 해내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에 들면 좋겠지만, 아니면 마는 것입니다.

이번의 시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마는 것입니다. 어쩌다 나의 노력 덕분에 일이 잘 된다면, 나는 작은 자기 효능감 하나를 챙기고 다음 일을 도모하면 됩니다.

만약 안된다면? 그러면, 그냥 마는 겁니다. - P115

우울이 우리의 어깨를 붙잡고 아래로 내리 누르기 시작하면, 단순하거나 중립적인 사건들에도 회의감은 고개를 쳐들고, 우리는 자꾸만 "왜?"를 고민하게 됩니다.
"왜 나를 싫어하지?" "내가 왜 살아야 하지?" "왜 죽으면 안 되지?"
그러는 사리에 우울한 삽화들은 자꾸만 가용한 뇌의 하드웨어를 잠식하고.하드웨어의 기능한 실제로 자꾸 떨어지며, 오류는 더욱 빈번해 집니다. - P171

왜?"가 어디 있어요. 그냥 하는 겁니다.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은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 같은 것입니다.
삶에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의미이고,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다 한겁니다. 살아있는 부모, 살아있는 친구, 살아있는 자식, 살아있는 나. 그거면 됐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내가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들이 잦아지고 그 이후에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겠지요. - P172

그러니 기억해야 합니다. 분명히 우울은 외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흔적은 언젠가는 어떻게든 옅어집니다.
굳이 흔적을 의식하면서 나의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행동이나 일 또는 어떤 대상이 내 삶의 의미여선 안 됩니다.
‘어떻게‘에만 집중하세요.
어떻게 일할지, 어떻게 놀지, 어떻게 사랑할지.
우리는 의미 없는 삶을 살아도 괜찮습니다.
뭐 어때요. 하루가 재미있으면 좋고, 아니면 또 마는 겁니다.
돈도 좀 써보고요.

우리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닙니다. - P174

당신은 기대해도 됩니다. 기대했다 실망하게 되는 반복적인 경험들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어떤 경우에도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면 최선이겠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기대가 무너질 떄 필연적으로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스러운 실망과 달리, 남에게 전시하기 위한 피상적인 실망이나 최선을 다하지 못한 상황을 감추기 위한 기만적인 실망은 당신의 성격구조를 차츰 왜곡시킵니다, 그냥 혼자서 멋쩍게 웃으며 지나갈 일에도 나의 실패와 부족했던 점을 변명하거나, 혹시 성공하면 누릴 수 있었던 것들을 자꾸 알리려 합니다.
무엇보다 당신은 실망을 하면 할수록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하니까요. - P190

높은 지능이 우울과 불안을 불러온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 주듯이, 창의성이 높을수록 우울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 주듯이 그리고 누군가의 취약성이나 결함이 드러날 때 그에 대한 호감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말해 주듯이, 당신을 절망하게 했고 당신이 저주했던 어떤 요인은 당신이 간과한 당신 행운의 일부였습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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