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책상 서랍
눈 나라에는 꿈꾸기 좋은 구석방이 있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는 조그만 책상 서랍이 있고, 서랍 속에는 노란 은행잎과 서양 나라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카드가 있고, 북 치는 소년이 어서 와! 나를 부르고 있고...(163쪽)
빈집 마당은 빈집 마당으로, 오고 가는 아침은 오고 가는 아침으로 저렇듯 초연하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한평생은 구름의 한평생을 걱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빨간 자동차가 빈집 초연을 낯설어 한다. 시동을 끄지 않았기 때문이리라.(57쪽)
고요라는 말의 뜨락에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벗어놓은 아침햇살이 있고, 적막이라는 말의 우산 속에는 저 혼자 비 내리는 늦은 밤 정거장이 있다. 고요는 가볍고 적막은 무겁다. 문명과 제도와 욕망의 우울을 먹고사는 적막과 흰 구름, 산들바람,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소리의 혈육인 고요는 비슷한 말이지만 이렇게 다르다. 그대 영혼은 가벼운가 무거운가. 무릇 인간의 문화적 노력이란 적막에서 고요로 옮겨 앉기 위한 안간힘이 아닐까.<오래된 약속/ 강현국>
변방
아무래도 변방이란, 아랫목에 누워서도 손 시린 땅, 어느새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한숨의 영토이다.(121쪽)
구석의 메아리
절벽과 부딪쳐 깨어지는 구석의 맨주먹 그래, 나는 구석의 메아리였지.
구석진 내 몸엔 잔소리처럼 비가 새고 흐린 등불은 자주 꺼졌지.(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