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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거나 먹거나 - 실학자 이덕무의 비밀 친구 이야기
김주현 지음, 문종훈 그림 / 학고재 / 2014년 12월
평점 :
〔책, 읽거나 먹거나〕실학자 이덕무의 비밀 친구
이야기

밥 먹는 일에도, 돈 버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오로지 책 읽기만 좋아했던 실학자 이덕무의 책사랑 이야기.
또, 책을 통해 친구가 된 책벌레와의 우정을 그린
<책, 읽거나 먹거나>.
학고재 출판사에서 만든 이 책은
하드커버와 속지까지 모두 재생용지 느낌의 종이로 제작되었네요.

성균관 선비들의 와글와글 책 읽는 소리가 개구리 같다고
해서
책만 보는 자를 성균관 개구리,
반와라 불렀는데,
그것이 맘에 들어 자신의 호를 삼은 반와 선생은 사실 상상속
캐릭터에요.
책 속에 살면서 글자를 먹는 책벌레죠.

오로지 책 보는 것만이 즐거운 또 하나의 인물,
이덕무.
그는 책만 보는 바보라 하여
간서치라고 불리우는데,
이덕무가 어느 날 흰 좀벌레가 자기 책을 갉아 먹은 것을 보고
너무 화가 나서
잡아 죽이려 했다는 짧은 글에서 작가는 흰 좀벌레를 의인화시켜
반와선생이란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진짜 책벌레와 사람 책벌레의 지란지교를 그리고 있어요.

사실 책벌레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작은 미물일텐데
반와선생으로 의인화시킨 흰 좀벌레는 저렇게 크게 묘사가
되었네요.
날은 추우나 밤이 깊도록 책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간서치와
반와선생.

책은 앞표지부터 전권에 걸쳐 옛날 느낌이 물씬 납니다.
목차만으로도 이덕무와 반와선생의 우정을 느낄 수 있지요?


반와 선생이 자식들에게 글자 먹는 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책 앞에서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거나 기지개를 켜서는 안 된다.
책에 침이
튀어도 안 되니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는 고개를 돌려 책에 튀지 않도록 한다.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발라 가며 넘기지 말 것이다.
책을 베고
누워도 안 되고,
책으로
그릇을 덮어도 안 된다.

책을 읽지 않고 먹는 반와선생네 가족들.
절대 서두르지 말고 글자 하나하나를 음미하여 먹으라 가르친
반와선생.
이렇게 밥상머리 교육을 하고서 정작 본인은 단숨에 삼키듯 글자를
넘겨버리자,
식탐 많은 막내가 반와 선생에게
"그런데 아버님은 어찌 그리 급히 드십니까?" 라고
묻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언행일치가 안 될 때, 부모는 참 부끄럽지요.
저도 애들 앞에서 점잖게 훈계해 놓고 제 스스로 지키지 못 할 때가
떠올라
이 대목을 읽을 때 민망해지네요.

글자 먹는 반와선생의 글자의 맛에 대한 찬미는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떤 글자는 쫀득쫀득 인절미처럼 차지고,
어떤 글자는 겨울밤에 먹는 메밀국수 한 그릇처럼 구수하다."
날마다 이리 맛난 글자들을 먹을 수 있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반와
선생을 보며
이렇게 책 읽는 즐거움에 눈 뜨는 새해가 되길 바래봅니다.

그런데, 야단났습니다.
밥은 굶어도 책이 없으면 살지 못 하는 간서치 이덕무가,
어느 날 책을 보다가 갉아 먹힌 책을 발견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갉아 먹은 글자가 향기로운 글자들인 것을
보자
글자를 먹어 버린 책벌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일할 아이를 구해 대대적으로 수색 작전을 벌입니다.

식탐 많던 반와 선생의 막내가 이덕무의 손에 잡힐 뻔
했으나,
흐르는 물처럼 순식간에 달아나 버렸죠.

사실, 이덕무의 호기심을 자극한 목란과 추국 글자를 먹어치운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반와선생이었어요.
벌벌 떨고 있는 자식들 앞에서 반와선생은 이덕무 앞으로 자진출두를
합니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두 책벌레는 이내 마음이 통하게
되고,
달빛 아래서 책을 이야기하고 있네요.

책은 읽거나 먹는 걸로만 알았던 이덕무와 반와선생.
추울 땐 이렇게 이불로 쓰라고 권하니 친구의 권유대로 책을 덮고
따뜻하게 잠을 자는 이덕무.
이덕무와 친구가 된 반와선생은 더 이상 책을 양껏 먹을 수가
없었어요.
책을 사랑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더 이상 책을 갉아먹는 것이
죄스럽고,
그렇다고 자식들마저 책을 못 먹게 하자니 아비로서 할 도리가
아니고...
결국 반와선생 가족은 이덕무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지요.
어디로...?
책은 많으나 책을 사랑하지 않고 허영으로 소장하고 있는 건넛마을 최
도령네 집으로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간다고,
그렇게 반와선생은 이덕무의 집을 떠나갔지만 서로가 그리운 두
책벌레들.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매화가 가득한 봄날, 다시 만난 이덕무와 반와선생이
달빛 아래 마주 앉아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다워
보이네요.

사람과 벌레가 책이라는 매개를 두고 우정을 키워가는 스토리가 참
신선했어요.
좋다는 건 알지만 독서가 생활이 되지 못 하는 삶을 뒤돌아 보게
하고,
책을 읽는 아이들에게 책 읽는 맛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책이 많지 않은 우리 집 서가에도 혹 반와선생이 살고 있지는 않은
지,
샅샅이 뒤져봐야겠어요. ㅎㅎ
*책자람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