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브루그만의 복음의 공공선
월터 브루그만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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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 위험한 믿음의 여행 중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출애굽 사건과 예레미야의 계시 그리고 이사야서의 텍스트들을 통해 믿음의 여행안내 책자를 제시하고자 의도를 담고 있다. 책이 갖는 장점은 역사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그 시대를 초월한 지금 이루의 삶에도 적용하려고 했던 점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주요주제는 공공선이다. 다시 말해 복음의 말씀을 통해 이 시대에 공공선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권위 있는 말씀을 통해 재해석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마주하게 된 우리의 일상에서의 위기와 불안을 어떻게 대체해야 할 것인가?하는 점과 코로나 이후 ‘나만을 위한 신앙’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위한 신앙’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교회도 일상도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도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인종차별은 더 심화되었고, 코로나19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원망도 원성도 자자했다. 초기 교회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발상되어 집단감염이 되면 가까운 지역교회에서도 있었던 일이지만 그 교회는 문은 닫고 해체되는 현상까지 발생되었다. 한국교회는 미움의 표적이 되었고, 옆에 앉아 예배하는 사람도 의심해야 했다. 기침소리는 커녕 숨소리에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의 교훈을 잊고 이웃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소리에 마음의 슬픔이 가득 내려앉는다.

「복음의 공공선」챕터1에서는 출애굽 내러티브에서는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불평이 많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현재 바이러스의 한복판에 놓여있는 우리의 상황과 비슷하다고(15)’ 구약의 사이클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시작되고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진다. 심판을 받고나서야 하나님께 회개하며 하나님은 다시 구원을 이뤄주신다. 2년여의 코로나 위기를 경험하며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사람들과의 접촉이 줄고 일상 생활공간이 제한되어 있고, 마치 광야에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광야에 놓여있다. 광야의 혼돈을 끊어내신 하나님의 방법 광야의 빵을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과 십계명을 통해 공동체의 공공선을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풍성하심으로 부족함과 불안의 악목을 끊어 내신다.

“공급하심의 목적은 부족함에 대한 불안으로 시작되어 분노, 두려움, 공격, 그리고 결국 약탈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었다(55-6).”

“그들은 풍성함의 기적을 통해 부족함의 악몽에서 벗어나……공공선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63).” 챕터2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거룩함과 고통에 연합에 대한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의 모든 설명을 거부하는 고통과 연합한다는 것이다(119).” 저자인 월터 브루그만은 무념의 신학을 부정하고 성경전체에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고통에 반응하시는 분이심을 밝히고 있다. 출애굽기 3장 7-9절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고통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이런 연합은 고통을, 세상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세상의 고통에 심히 괴로워하는 분으로 완전히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며 거룩함과 고통의 연합은 믿을 만한 진리를 낳는다(119).”

마지막 챕터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도시문화에 관한 진단과 길잡이로서 해석한다. 상실파악, 슬픔표현, 새로움과 부르심의 소망, 확신의 소망, 대결의 소망, 떠남의 소망으로 말씀을 구분하여 해석하고 이 순서를 옛 예루살렘만큼이나 명백하게 실패한 도시 경제 속에서 복음주의 신앙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165).

복음의 공공선을 이루기 위한 결론을 요한일서 4:20-21절의 말씀을 들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곧 이웃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요일 4:20-1)176).”이며 상실, 소망, 슬픔을 지나 행동으로 이어질 것을 말한다.

너무나도 생소하고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오늘을 살고 있노라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다가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현실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절망이 오고간다. 어쩌면 독자는 아침에 해와 함께 소망을 갖고 시작했다고 저녁에 해가 지면 절망하고 있는지 모른다. 나를 위해 외치던 소리는 줄었지만, 시선은 냉정해 졌다. 매일 쏟아지는 불안한 상황에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꿈꾸는 것조차 경직되어 있던 나에게 이 책은 하나님의 눈이 되어 이전보다 밀접하게 우리의 시선에 고정된 이웃에게 하나님의 선함을 베풀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복을 실천하라 말하고 있는 듯하다. 머리로 알고 몸은 다르게 움직이고 이지만 마음이 부동의 자세로 굳어져 새 희망의 불씨를 잃어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도전이 될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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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걷기 - 한민족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
임경근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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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에도 한국교회사 수업을 들으며 이렇게 가슴 벅차고 마음이 뭉글뭉글하고, 분노와 통탄함을 경험했던가? 본인이 재학 중에 교수들의 강의노트가 더욱 우세하였다. 일반 서적들은 과제물이나 보충교재로서 사용되고 강의노트가 준비된 교수들을 강의를 더 열심히 준비했다고 해서 그랬는지 잘 요약되고 짜인 강의노트들로 학습된 교회사 수업 그리고 당시 한국교회사 책을 자료로 참고하려고 했다 치면, 한 손가락 내여서 도서관에 있는 책을 보지 못하고 다 구입해서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여러 권의 책들이 검색이 되지만 말이다. 그때 수업이후로 한국교회사 관련한 책을 볼 기회가 없었다. 신학에 입문한지 20년차를 보내며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생각과 후회와 도전이 내게 있었던 올해, “역사를 알면 미래를 알 수 있다”라는 말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은 생각하며 이 책을 보게 되었다.

“필자는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지혜를 얻고, 미래에 있으면 소망을 얻는다.’ 역사를 알면 현재를 직시할 수 있고 더 밝고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다. 한국교회사의 연구방법이 어렴풋한 기억에, 하나님, 역사(연대기적), 성경, 선교 등 다양한 관점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서의 특징은 첫째, 성도를 위한 책이며, 둘째, 학술서가 아니라 교회라는 현장에서 발화된 것, 셋째, 목회적 결과물, 넷째 종교개혁 역사관으로 기술, 다섯째,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출생 사망 연도가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과 여섯째, 독창적, 학문적 연구서가 아닌점을 들고 있다. 성도를 위한 책이란 말에 약간의 긴장감을 빼고 이 책을 처음 접한 성도 입장에서, 반대로 이 책을 토대로 성도에게 한국교회사에 대한 가르침을 주는 자의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책을 손에 들고, 감회가 새롭다고나 할까? 신학생으로서 한국교회사를 접했지만, 그 후 사역자로서 교회 안에서 혹은 믿음의 공동체, 동역자들과 한국교회사를 놓고 함께 묵상하는 시간을 갖거나 토론하는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는 나로서 이 책이 주는 의의 굉장히 파급효과가 컸다.

책의 특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필자의 목회 현장에서의 쓰임을 바탕으로 본서가 저술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연도의 연한을 떠나 한국교회의 뿌리 깊고 숭고한 희생으로 일궈진 역사와 선교적 입장에서 복음전파 사역의 끊임없는 열정을 배우고 학습하며 실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기본적으로 연대기적 입장으로 나열되어 있고, 각장의 주제들이 굉장히 따뜻하고 친숙하게 느껴지며, 주제에 맞는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기술되어 있다. 한국교회사의 중요한 엑기스를 보기 쉽게 시각화와 필체로 기록되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여운이 남는다. 필자가 직접 목회현장에서 쓰였던 것만큼 신학적, 학술적, 학문적(셋다 같은 말인 거 같은 데) 성격이 강하지 않은 만큼 초중반부까지는 읽는 독자인 나로 하여금 한국교회에 대한 자긍심과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고찰을 통한 각성을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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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사참배의 부분에서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이 땅에 교회를 통한 애국과 교회 보존이라는 말을 앞세워 성경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발에 흙먼지만도 못하게 여겨왔던 사람들,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가며 총과 칼에 위협과 모진 고문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숭고한 뜻을 지켰던 열에 하나, 백의 하나의 사람들로 이 땅의 교회는 지켜졌다. 그 시절 내가 있었더라면 나는 어느 위치에 서있었을까?를 생각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역사는 밀알과 같은 한 사람을 통해서, 그루터기를 통해서도 넘지 못할 것 같은 큰 산 앞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며, 문제 앞에 연약해지고 사람의 말에 참 작고 어리석고 부끄러운 나를 만난다. 그 날에 위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국교회의 위기와는 분명 달랐음에도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열심히 위기를 말하고 여러 비판을 내놓으면서 정작 본인들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분열은 너무나 아픈 것임을 토해내면서도 또 다른 경계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은 안하는 걸까? 한국교회의 위기라는 말은 20년전 신학부에 들어갔을 때부터 들었던 거 같다. 코로나로 인한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공감할 실질적인 대안은 내놓지 않고 비판에 열심인 듯 보인다.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참 열심히도 토론하며 비판하고 비평적 시각을 가지라는 교수님의 말에 한동안은 싸움닭처럼 열심히도 비판거리를 찾기위한 학습에 매진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원 과정을 보내면서 관점이 틀린 것이 잘못된 것도 아닌데,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지냈고 대학원 상위 과정에서는 비판할 거리가 안보여서 내 속으로 탈이나 몸까지 아프게 된 경우도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비평적 장점은 한국교회 이단의 뿌리와 잘못된 점을 잘 기술하고 있는 점, 성도들이 그 부분을 읽고 간략하게 기술되어있지만 분별할 만한 내용이 잘 첨가 된 점을 들 수 있다. 이하 책의 중반부 이후에는 필자의 해석에 비판적인 부분이 많고, 중립적인 입장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독자인 나의 기대와 달리, 특정교단이 이뤄놓은 역사적인 유익을 배제하고 비판적인 내용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거나 독자의 신학적 뿌리가 담기 신학교와 교단의 내용만이 담겨 있는 점은 적지 않은 아쉬움이 남는다. 감히 교회와 교단의 어른들로부터 교회의 연합, 초교파적 화합을 기다리는 나에게, part7에 독자의 내용들이 한 부분 이해는 되면서 그 때의 시도들이 한국교회 부흥과 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데 기여한 부분은 비판적 시각으로 그림점 등은 그 어느 때보다 비판보다 분별있는 수용, 다툼보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 양보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독자로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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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조 목사 평전 - 복음만 남긴 성령의 사람
김성영 지음 / 두란노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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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로 대혼란의 시기를 경험하며 언제부터 인지 하용조 목사님으로부터 듣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그 음성이 몹시도 그리웠다. 지금 우리 곁에 계셨더라면 "하나님은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어떤 말씀을 전하셨을까?"라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요즘, 하용조 목사님의 소천 10주기를 기억하며 다시 새롭게 하용조 목사님의 비전과 리더십을 되돌아보고 본받기 원하는 마음과 이 평전을 통해 세계 교회가 하용조 목사님의 귀한 영적 리더십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본받게 되기를 소망하며 김성영 전 성결대학교 총장님의 집필을 통해 「하용조 목사 평전」이 출간되어 본서를 통해 그립고 그리운 하용조 목사님을 만나게 하셨다. "코로나19와의 긴긴 싸움을 하고 있는 요즘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않을 셨을까?"란 생각에 잠겨본다.


   "하용조 목사는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은 부르짖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라면서 '우리 모두가 진실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무릎 끓어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자신의 몸을 드리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243)."


   그리움이 마음에 닿아 책을 통해서라도 귀한 시간을 허락하시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손에 들었다. 손에 들고 표지를 넘기기까지 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표지만 보고 있는데 주체 없이 눈물이 흘렀고, 책을 받은 날 건강에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듣고 온갖 걱정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복통과 츨혈로 검사를 받았는데, 난소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상급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암의 대부분이 가족력이라는 데 가족력도 없고, 어머니는 류마티스관절염으로 오랜 아픈 생활을 하셔서 어머니를 대신해 해야 할 일이 많이 나는 정말 아프면 안된다는 근심걱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베게머리 옆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보니 내가 들은 건 아무것도 아니고 별개 아니라는 생각을 내 몸을 사로잡았다. 하용조 목사님께서 겪으신 고통에 비하면 내가 당한 일은 명함도 못 내밀 일이 었다.


   "한번은 빡빡한 선교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하용조 목사가 투석 시간을 놓치게 되었다고 한다. 투석 환자가 그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는데 전도에 열중한 나머지 그만 투석 시간을 놓쳐 버린 것이다. 동행한 온누리교회 성도들은 담임 목사의 건강이 염려되어 비상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하용조 목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양 의연히 남은 집회를 강행하며 오히려 더 힘 있게 복음을 선포했다고 한다(309)."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은 담대해졌다. 내 육체의 건강도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에 있음이라는 강한 메시지를 책을 통해 전달 받았다. 그리고 다른 검사가 진행되었고 결과적으로 난소암은 아니라는 판정도 받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이런 기적을 경험을 하게 하시고 목사님은 어디에선가 생존해 계실 것만 같고 어디에선가 모습을 드러내셔서 당장이라도 말씀을 선포해 주실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책을 페이지수가 많기도 했지만, 저자가 눈물로 이 책을 기록했는지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아 이 책을 읽어 나가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12장의 챕터로 구성된 본서는 1~10장은 하용조 목사님의 복음(말씀), 성령관, 교회관, 목회관, 예배관, 설교관, 선교관, 양육 그리고 구제(긍휼사역), 문화로 기록되어 있고, 11~12장의 목사님의 영성과 생애와 목회사상을 기록하고 있다. 챕터 분간없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의 사람이라고 외쳤던 사람으로서, 설교자로서, 사역자로서, 자식으로서 부모고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온 몸이 입만 무성한 나무 같았고, 겨울 걸치고 있었던 게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이었는데 본서를 읽다 보니 그 마저도 벌겨 벗겨졌고 부끄러움이 아니라 내가 걸치고 있던 누더기 옷을 벗어 던졌을 때, 그제야 비로소 따스한 주님의 숨결에 에덴에서 나뭇가지로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었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혀주시는 경험을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다. 본서를 통해 하용조 목사님의 신앙과 신학적으로 재 발견하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균형을 잡고 한국교회의 균형을 이루고 세계 교회의 본보기를 나타내신 것 같다. ACT29사역의 비전을 표현하면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코로나19 세계로 확산되듯 ACT29도 바이러스와 같아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전파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데 어느 때에 온누리교회를 출입할 때 "고린도교회로 돌아가자!"라는 현수막을 봤었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를 영상으로 다시 들으면 채찍으로 내려 찢는 듯 마음이 뜯겨져 나갈 때가 있다. 본서에 기록들에도 그러한 말씀들이 많이 담겨 있는 데 세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성령 받은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밖에 없다.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케리그마, 복음의 핵심이었다(153)".

   "'예배는 교회의 심장'이라는 말과 '설교는 예배의 심장'이라는 말은 기존 예배학에서 말하는 정의보다 더 실감나고, 그야말로 심장이 뛰는 표현이다(213)."

    "설교의 시작도 예수님이요 끝도 예수님이다. 설교 시간은 나의 위대한 웅변이나 노리나 지성을 보여 주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시간이 아니다(226)."


   그리스도인의 기본?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그러하겠지만, 설교자라면 당연히 그러했겠지만, 가장 기본이되고 당연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이 든다. 목사님의 말씀이 채찍을 내려 찢는 듯하지만 듣고 나며 몸과 영혼을 찢어 뜯은 것이 아니라 내 속에 더러운 것들이 떼어져 나오는 듯한 시원함과 가벼움을 느낀다(마스크로 입이 닫힌 시대, 아니 그 전에도 나는 그동안 무엇하고 살았나?).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는 "안 계실 때를 대비해서"라는 말이었다. 온누리 교회 교인도, 생전에 목사님을 예배 실황에서 직접 뵌것도 사실 10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다. 90년대 9살 꼬마는 청년부를 맡고 있었던 아버지와 청년부 큰 언니 오빠들과 함께 두란노 경배와 찬양에 다녔었고, 아버지가 담임목사님이 되신 이후에 10대 청소년 시절에, 신학부 시절에 동기들과 경배와 찬양예배를 통해 열린 예배, 교회연합,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된 삶,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문서와 방송선교 등 각자가 가진 달란트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됨 삶을 온누리 교회에서 진행되는 경배와 찬양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경배와 찬양을 마치고 열차 시간 않놓칠려고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얼마나 뛰었던지, 과제도 미뤄두고 학부 선후배들과 얼마나 드나들었던지 지금처럼 새로운 곡 악보가 쉽게 구해지지 않을 때, 한사람은 가사를 적고 나는 멜로디를 기억해서 찬양예배 올리면서 얼마나 행복했던지, 우리교회에도 드럼과 신디사이저, 기타가 구비될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하용조 목사님 평전을 통해 그 분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라가도보면 한국교회의 역사, 우리교회의 역사, 나의 역사가 함께 깃들여져 있다.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드러내셨던 하나님의 영향력의 힘이 이렇게 크다니, 생전에 느꼈던 것의 몇배로 크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10~20대에는 경배와 찬양 더 큰 주를 이뤘다면 30대 문턱에는 두란노 서원을 사랑하게 되었다. 문서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양질의 서적들이 끊임없이 출판되고, 번역본들로 세계적 비전을 지닌 목사님들과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소천하신 후, 개인적으로 이 두란노서원이 흔들리면 어쩌지 만약 역사 속에 사람지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두란노 서원 출간 도서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큐티로부터, 목회와 신학, 신앙과 신학을 견고히 한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뿌리가 통째로 뒤흔들린 개인적으로 암담했던 시절에 두란노의 서적들로 큰 위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계실 때를 대비해서"라는 기억에 남는 글귀처럼 소천 10주기가 된 지금에도 이전보다 더 풍성한 위로와 도전을 주는 책들이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음에 감사와 감격을 금할 길이 없다. 이 글귀를 묵상하며 때로 내가 아니면 안될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게하고 얼마나 무력하게 하고 감격을 없는 무덤덤한 마치 영적인 나병환자처럼 내 영혼이 통증도 감각도 느끼지 못하는 때를 살아왔는지...


    마지막 12장을 시작하며, 정말이지 하용조 목사님과 이별하는 거 같아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가는 게 쉽지 않았다. 필자 하용조 목사님이 직접 남긴 기록을 중심으로 생에 이야기를 정리했다(502). 정상적으로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리움의 갈증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 더 고픈 느낌이었다. 하용조 목사님을 통해 선포하신 비전과 리더쉽이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 시대에 교회를, 지역을,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그 경계를 넘어 세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되는 영적 리더쉽을 추구하는 일반 성도, 항존직 직분자, 신학생, 교역자, 목회자에게 본서를 추천하고 싶다. 9살 꼬마였던, 10대 청소년이었던 나는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와 경배와 찬양 예배를 참석하면 지구의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된다고 굳게 믿게 된 것처럼 세계가 함께 코로나19의 어려움을 극복한 뒤에는 문화의 경계가 더 희미해져 그리스도로 완전히 하나될 것을 소망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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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로 하나 될 때까지
프랜시스 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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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이 무겁거나 처음 들어 본 말을 아니었다. 책의 두께도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지만, 이 책은 한 문장, 한 페이지를 곱씹어 보는 듯 여러 번 읽고 오래 시선이 머물고 있어 읽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의 목적은 "나는 교회로서 우리가 정신을 차려서 이 모든 분열과 다툼이 하나님의 뜻에 반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239)."고 말한다. 내 인생의 전 생애에 걸쳐 공동체의 분열이 그렇게도 싫어했다. 그래서 분열을 일으키는 대상(사람)을 많이도 미워했고, 그 사람을 품는 법을 몰라 거친 방법으로 분열의 원인을 제거 하려고 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뭘 해야할지는 아는 데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던 했던 잘못된 행동과 말들이 떠올라 마음 깊은 회개와 용서와 이해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서에서 시선이 고정된 곳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의 태도를 그려내는 문장들이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 성경 말씀 하나하나에 떨기를 바란다.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만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 됨을 얼마나 원하시는지 진정 이해할 수 있다(16)."

"하나님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이런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 에스겔이 인침을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라(58)"

"요한일서 말씀들을 읽으면서 불안하고 찜찜했다면 그냥 넘어가지 말라. 성경을 펴고 요한일서를 쭉 읽어보라(70)."

"다음의 짧은 말씀 안에는 기적이 아니면 믿기가 불가능한 진리들이 가득하다. 찬찬히 이 구절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서 이것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104)"

"경외심을 갖고 이 구절들을 바라보자(180)."

몇 문장만 소개한다는 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옮겨놓았다.

 

본서의 주제는 분명 연합과 교만, 오만함 하나님의 긍휼, 사랑 등을 그려내는 것을 아는 데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나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저 문장들도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강력하게 말씀 속에 떨림이 있다면 더 이상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는 말에 의미를 알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것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할 것, 100%의 연합이 아닐지라도 내가 있는 작은 곳에서부터 연합할 것에 대한 교훈들 속에 주는 감동들이 개인적으로 올해 읽었던 책 중에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물처럼 흘러가거나, 진한 감동을 주는 책이 있고 머리와 가슴 속에 펜으로 새겨주는 글이 있는데 이 책이 내게는 그와 같다.

책 표지를 열고 목차를 지나 프롤로그를 읽고 몇 줄 지나지 않아 "책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예배부터 드릴 것(11)"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숨을 주고 계시기 때문에 숨을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데 그것은 "하나님을 송축하라(시 103:1)"이다. 이 문장을 몇 번을 반복하며 읽으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의 90년대와 2000년대 두란노 경배와 찬양과 선교지를 다니며 느꼈던 찬양의 예배로서 하나 됨이 심장을 뚫고 들어와 몸 속 깊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낀다. 왕복 세시간 거리를 왔다갔다하며 열차 놓칠까봐 열심히 뛰기도 했던 날도 있었고, 하스데반 목사님이 인도하실 때 그 날 처음 들었던 찬양의 가사를 그때는 인터넷 검색에도 없었기에 기억해 냈다가 적고 악보도 구할 수 없어서 음감으로 건반을 눌러가며 쳤던 이 찬양이 떠오른다. "사랑합니다 나의 위로 되신 주 고통의 눈물 닦아 주신 자비하신 아버지 찬송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주 내가 약할 때 주 능력이 날 붙들어 주시네 주의 사랑 주의 은혜 내 안에 가득 넘치니 나 부족함 없으리 나의 마음 나의 영혼 거룩한 사랑을 드리며 주의 길을 걸으리" 요즘 문득 교회사와 한국교회사 속에 수많은 핍박과 고통 속에서도 순수한 복음의 신앙과 믿음을 치열하게 지켰던 믿음의 선인들을 떠오른다.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이해가 되고 그때는 나와 다른 것들을 틀렸다고 했었는데 그때 틀리다고 했던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깊이 깨닫는다. 코로나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연합이 힘든 시절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리운 그때가 너무나 많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책을 읽는 데 학부때 함께 기도하며 청년의 시절에 열정을 함께 나눈 선후배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 책을 그 중 한명과 만나 이야기 하는 듯 내게 깊은 묻어둔 영감을 깨우고 또 새로운 영감을 얻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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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필립 얀시의 한밤을 걷는 기도는 창조주이시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고통가운데 우리를 외로이 홀로 두시는 것이 아니라, 시대 속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문제를 보는 통찰력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힌트를 숨겨 두시셨고 지금의 문제는 이전 역사의 그림자처럼 하나님의 일하심을 미리 엿보게 하시는 예고편과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다가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슬픔 생각에 젖어 있었다. 위험이 잡힌 듯 보이지만 또 다른 위협으로 마음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만 일상으로의 복귀를 외치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연약한 믿음에서 끊임없이 찾아오는 불안에 대한 공포를 불면증에 관한 15챕터의 기도문을 통해 다음과 같은 위로를 얻게 한다.

"주님이 제게 허락하신 이 불면증이 불안과 불편의 원천이 아니라

제가 당신의 존전에서 잠들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는 증표가 되게 하소서(155)."

책을 읽는 동안 존 던과 필립 얀시와 셋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코로나19로 인한 혼돈의 시대 속에서, 질병과 고통에 관하여 그리고 삶과 죽음에 관하여 매일 밤, 차를 마시며 가르침과 토론을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자의 권고대로 본서는 30일간 한 편식 보며 묵상해야 한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매일 매일 영혼이 묻은 때가 씻겨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3,4 챕터의 내용을 보면,

"제 영혼은 왜 몸처럼 예민하지 못합니까? 왜 유혹이 다가오면 영혼의 맥박이 빨라지지 않고,

눈물이 나와 영적 질병을 경고하지 않습니까?(34)"

"제 몸의 감각이 이 세상 즐거움에 둔해지게 하심으로써 당신을 인식하는 제 영적 감각이 예리해지게 하셨습니다.

제게서 저를 벗겨 내시고 주님을 입혀 주십니다(47)."

고통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와 통찰력의 깊이에 빠지다 보면 다음 내용의 궁금함을 참지 못해 단숨에 읽기 원하는 유혹이 솟아오른다. 단숨에 읽기 시작하며 글의 매우 매력적이기에 2시간내외로 읽어 갈 수 있는 분량이다. 솔직히 궁금증에 유혹을 견디지 못해 책을 속독한 후 매일 한 챕터씩 보려고 노력했었다. 매일 경건과 거룩한 시간을 갖듯이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본서의 내용은

"우리가 불행을 마신다면 행복은 겨우 맛만 볼 뿐이다. 불행을 수확한다면 행복은 줍는 수준이다.

불행이 긴 여행이라면 행복은 가벼운 산책이다. 불행은 부정할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반면, 행복은 잡히지 않고 파악하기 어렵다. 불행은 누구나 불행으로 느끼는 반면, 행복은 사람마다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140)."

불행 앞에서 적극적이고 행복 앞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나의 모습 드러나는 문장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 속에 저 문장의 불행과 행복을 바꿔보며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감사와 행복은 느낄만한 것들이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날의 예배를 그리워 하게 될 날이 나의 생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당연하게 드려졌던 시간들 당연하게 맞이했던 날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지금이다. 그 날이지 못한 답답함을 넘어 슬픔과 고통이 찾아와 주저앉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씀을 대하고 전할 때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던 내가 코로나19 앞에 내면에 비집고 들어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어떤 말도 할수 없고 함구 하며 슬픔에 젖어 있는 내게 본서를 읽으며 400년전 존 던과 필립 얀시로 시대를 이 길 새로운 힘을 수혈 받는 느낌이다. 생각의 전환, 태도의 전환을 경험한 본서는 질병의 문제를 넘어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함을 느끼며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과 본서를 나누고 싶다.

#한밤을걷는기도 #필립얀시 #두란노 #두피플 #두피플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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