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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짓는 생활 - 농사를 짓고 글도 짓습니다
남설희 지음 / 아무책방 / 2022년 12월
평점 :
겨울의 한 복판에서 초록색이 가득한 남설희 작가님의 에세이를 만났다. 낭만으로 가득한 귀농일기가 아닌 땀 냄새 시큼한 본격 농촌 생활 일기.
한 손에 그득히 들어오는 책 한 권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오롯하다. 마치 올해 뜨거웠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미정이네 고추밭을 책 속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구 씨가 등장하지 않아 매우 아쉽기는 했다.)
고추꼭지가 얼마나 고집 센지는 고추를 따본 사람만이 알 수 있듯 잉여로움에서 밭으로 내몰린 작가의 근육통에 나도 같이 움찔한다. 한때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지고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있기 싫어 나는 아빠를 따라 오미자 밭으로 갔다. 동그랗고 새빨간 열매가 보기엔 예쁘다지만 따는 건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다. 힘 조절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영글대로 영근 알갱이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곧장 건너편 고랑의 아빠의 잔소리가 뒤따른다.
고추고랑 사이사이에, 아버지의 오래된 지게 양 끝에, 고춧대 위에 농사꾼이자 작가인 그의 고민과 괴로움이 위태로이 놓여있다.
복토, 흙살, 북삽, 메주콩. 그가 짓고 있는 농사는 진짜다. 거짓 없이 정직하다. 손에 흙이 묻는 만큼, 허리가 굽혀지는 만큼 창고를 채울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꺼내놓는 이야기는 작위적이지 않고 솔직하다.
‘나는 바라는 것에 익숙하다.’
‘나는 구직 단념자다.’
‘나에겐 발전이라는 게 없었다.’
는 푸념을 한 꺼풀 벗겨보면 ‘가능’이라는 알맹이가 있다.
그래서 따뜻하고 위로가 된다.
작가는 10년째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대단한 근성이다.
한편 한 편의 글들이 이렇게 모여 번듯한 책이 되었으니 그 또한 감사하다.
작가님은 고추를 키우고 나는 아이를 키운다. 누가 더 고될까? 한 여름의 태양이 아무리 따가운 들 내 귀 옆에다 대고 빽빽 거리는 아이의 울음만큼 따가울까?
또다시 1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둘째 아이 육아휴직 연장원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가 복잡한 생각들로 무겁다.
나도 오늘의 일기 끝에 ‘가능’이라고 적을 수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