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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토커 - 달짝지근함과는 거리가 먼 영화 같은 인생이여
최광희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 지금처럼 멀티플렉스가 창궐하기 전, 대부분의 개봉관은 표를 사고 입장하면 1층에서 바로 상영관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상영관 주변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영화 시작 시각을 기다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극장 문을 나서며 바라보는 하늘의 느낌, 그 사이 달라진 공기의 냄새 같은 것이 영화만큼이나 소중한 또 다른 문화적 행위의 일환으로 느껴졌다.
-이제 영화는 여운과 추억, 삶에 대한 성찰을 선사하는 문화적 매개체가 아닌, 오로지 효용 가치로만 평가받는 상품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 작년엔 인사동 낙원상가에 있는 헐리우드 극장에도 몇 번 가봤고 , 내가 좋아하는 극장은 광화문에 있는 씨네큐브다. 편리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멀티플렉스를 찾겠지만
정말 이 부분을 읽다보니 영화란 딱 그 2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선 접속을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고 바로 옆 커피숍 2층에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묘미를 예찬했는데 정말 지금은 영화가 쇼핑몰 상품 중 일부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씁쓸해진다.
러시아는 화재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극장이 꼭 1층에 위치해있다는데, 우리는 꼭대기층까지 쇼핑몰 안을 휘감고 돌아야만 영화를 보고 , 돌아올 수 있게 됐다.
그 무뎌진 감각 속에서 우린 영화의 어떤 면을 보고 또 마음 속에 담고오는 걸까. 그 여운이 식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누가 천박한 것인가? -네티즌들은 영화와 관련해서는 기사와 홍보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영화 관련 기사를 홍보 마케팅과 동일시한다는 말이다. -인터넷 언론은 무작정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것으로 생존을 도모해왔다. 그것을 보아온 관객은 기사를 '적정한 거리 두기' 를 전제로 한 공정성과 객관성의 산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 책에선 예시로 영화 <박쥐> 의 송강호 성기노출을 다뤘다.
영화에 대한 깊이있는 평을 보고 싶은 대중들은 늘 자극적인 기사들만 볼 수밖에 없었다.
여배우가 어느 수위까지 벗었느니, 그걸 놓고 파격적 자극적 충격.. 뭐 갖가지 요란한 수식어를 붙여서...
나는 이런 식으로 영화 홍보를 하는 게 영 꼴뵈기 싫어서 잘 보지도 않고, 자꾸 이런 기사가 나오면 아예 영화가 노출 얘기 말곤 별 볼일이 없나 싶어 관심을 끄곤 했다.
그 중 하나가 <은교> 였다. 김고은이 얼마나 벗었는지에 대한 얘기만이 쏟아져나와 내심 불쾌했지만, 사실 영화와 크게 상관없는 얘기였던 것 같다.
일 때문에 영화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기자들이 배우나 감독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 여러 차례 본 일이 있다. 처음엔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듣고, 나중에 기자 질문 시간이 있는데 별로 질문 없이 흐지부지 끝날 때도 있고, 기껏 하는 질문들의 수준도 그리 높지는 않았다. 뻔한 질문과 뻔한 답들...
오히려 손수 찾아보는 일부 네티즌들의 소감이 더 참고가 되는 판이니.. 기자분들, 너무 자극적으로 제목 뽑아서 조회수 올리려는 생각보다는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을 위한 기사를 써주셨으면 한다
# 이 시대의 대중 관객들은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영화가 낯설다는 이유로 그 고유의 가치와 상관없이 영화를 쓰레기 취급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 영화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이미 본 관객들의 별점이 어느 정도나 영향을 주는가? 난 사람들이 난해하다며 점수를 짜게 준 영화를 재밌게 본 경험이 몇 번 있어서 크게 휘둘리는 편은 아니지만 확실히 별점이라는 건 영화에 대한 '첫인상' 같다. 별점이 낮으면 일단 재미없는 영화인가 싶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건지, 또는 무식하게 단순한건지 새삼 느끼게 됐다.
이명세의 <M> 을 예로 드셨는데 나도 그 영화가 너무 난해해서 보다 그만 뒀는데 - 이명세 감독이 추구하고 시도했던 것들을 '재미없다, 어렵다, 난해하다' 라는 이유로 얼마나 깔아뭉개버렸는지.. 너무 죄송하고 미안하고 나의 단순한 생각에 깊이 반성하게 됐다.
물론 우리가 돈 주고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즐거움을 받아가는게 당연하지만 작품마다의 고유한 스타일과 예술적 시도, 생각들이 내 기호에 맞지 않다고 해서 나쁜 영화! 라고 평하는 게 얼마나 예의없는 짓인지... 앞으로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은 더 겸손해질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 영화에 대한 사랑은 다양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영화를 사랑해달라고 읍소하는 영화인들은 미국에서 온 저 영화와 일본에서 온 이 영화, 태국에서 온 그 영화도 한꺼번에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좋은 영화를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 영화가 침체에 빠진 것만큼이나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 개선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고개를 백만번 끄덕이며 읽은 대목이다. 조금만 박스오피스 순위에 한국영화가 없으면 침체기라고 호들갑을 떨다가 또 흥행하면 부흥기니 부활의 신호탄이니 난리법석...
한국영화가 사랑받는 건 좋은데- 모든 한국영화가 다 사랑받고 주목받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다른나라 작품이 한국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찬밥 신세가 될 수도 없다.
정말 우리나라는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걸 느끼기가 힘든 것 같다. 서울 사는 나도 이럴진데 지방은 어떨것이며 ... 변변하게 개봉도 못해보고 다운로드를 통해서나 볼 수 있는 영화들도 너무 많다.
조금만 게으름 피우면 극장에서 볼 수 없는 좋은 영화들 ... 안타깝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런 점은 잘 개선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 cgv 를 점령하고 있는 도둑들, 광해, .. 뭐 이런 영화들이 오랫동안 걸려 있는 걸 나도 꽤 씁쓸하게 쳐다봤었다. 물론 이 칼럼을 통해서 개선되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영화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마 <피에타> 도 외국에서 수상하지 않았다면 조용히 묻혔을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어 이 참에 보자! 하고 <좋지 아니한家> 를 봤는데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가 흥행성이 뒤처진다는 이유로 많이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안타까웠다.
잡지 읽듯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시간이 조금 걸렸던 건 중간중간 내가 못 본 영화들을 다시 챙겨보면서 봤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가 느껴졌고 그래서 그가 언급한 영화들은 왠지 꼭 봐야 할 것 만 같았다. 혹은 봐놓고서도 알쏭달쏭했던 영화에 대해 가이드도 되어주는 것 같았다.
때론 가볍게- 또 때론 묵직하게... 영화 전반에 대한 시각이 처음 기대만큼이나 조금 넓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이 책을 읽으니 조만간 날씨 좋은 날 극장에 찾아가 영화를 보고, 그 여운을 간직한 채 집에 와서 느낌을 정리하고 2시간이 아닌 꽤 오랜 시간 영화가 내게 미친 영향 아래에 있어보고 싶은.. 그런 느낌이 든다.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진지한 태도 하나하나가 모인다면 우린 좀 더 손쉽게 좋은 영화를 많이 접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