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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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TV에서 아란 차장님(이제는 부장님(!))의 앞부분 소개를 듣고 흥미가 생겨 빌려 읽게 된 책이다. 여행지의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인 줄 알고 흥미가 생겼는데, 막상 읽어보니 비밀을 파헤친다기보다는 자신도 그 비밀의 일부가 되다가 파국을 맞이하는 섬뜩한 이야기였다. 요새 계속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고 있었는데 자꾸 집어 드는 책들이 예상과 빗나가는 경우가 생겨서 조금 힘들다. 이젠 진짜 재미있는 책을 읽고 말 거다.

요나에겐 서울도 '재난'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정글에서 요나가 맞닥뜨린 '재난'의 크기가 더 컸기 때문에 먼 곳에서 발생한 재난은 그저 상품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그러나 요나가 기차의 잘못된 칸에 들어선 순간, 요나가 겪는 '재난'에 실제 재난이 덧씌워지기 시작한다. 그 순간 요나에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인위적인 재난은 서울에서 지켜본 여느 재난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럭과의 만남을 통해 요나는 점점 자신의 '재난'과 무이의 재난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요나는 결국 서늘한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파울(폴)에게 스러진다. 그러나 파울이 불러일으키고자 한 인위적인 재난은 자연의 재난 앞에 무릎 꿇는다. 자연의 재난은 인위적인 재난과 달리 모든 것을 평등하게 집어삼킨다.

『밤의 여행자들』은 자본주의의 무자비함을 섬뜩하게 그려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너무 가까운 건 무섭거든요. 내가 매일 덮는 이불이나 매일 쓰는 그릇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야 더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나요?"라는 요나의 말을 통해 재난이 휩쓸었던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심리를 꼬집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이러한 '재난 여행'을 비판하는 소설인가 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더 깊숙한 곳까지 꼬집는다. '재난 여행'이라는 상품의 본질을 파고든다. '자본주의' 자체의 섬뜩함을 우리 앞에 끌어다 놓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자들은 시장 질서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수행해버리고 만다. 소설에서는 결국 자연이라는 거대한, 불가항력의 존재가 그들을 쓸어버림으로써 심판한다. 그런데, 이것을 자연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쓰레기 섬의 침공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공산품들로 이루어진 쓰레기 섬이 다시 인간들을 공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의 결과가 자본주의의 수행을 막아선 것이다. 자본주의는 결국 공멸이라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이야기일까? 어느 쪽으로 보나 자본주의에 입각해 금융소득을 우월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거센 지금 상황에 무척이나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쓰레기 섬이 무이를 덮쳤을 때 파울의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단지 조그만 이익 추구를 위해 그 흐름에 탑승했던 악어들까지도 모두 휩쓸려 버렸다. 우리에게 자본주의가 불러온 거대한 해일이 몰려올 때, 소시민들이 그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파울의 본체는 거의 타격을 입지 않고 무이는 다시 유명한 재난 여행지가 되면서 파울은 이득을 얻게 되는 것처럼, 우리 사회 역시 그렇게 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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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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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은 소설'이라는 개념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단편보다도 짧은 이야기들. 『행성어 서점』 속 이야기들은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이 굉장히 새롭고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각 소설들이 독립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이어지는 면도 있다. 특히 「늪지의 소년」, 「오염 구역」, 「가장 자리 넘어」로 이어지는 세계관은 정말 흥미로워서, 연작 소설이나 장편소설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부분인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에서는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닿지 않아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 「행성어 서점」이 왜 표제작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책을 읽기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되거나, 모든 언어가 쉽게 번역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생소한 언어를 익히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은 아닐까. 『행성어 서점』 속 수록작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가 이 표제작 속에 녹아있다. 표지 일러스트와 안에 수록된 일러스트가 왠지 모르겠으나 초현실주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바가 있는데, 일러스트가 풍기는 모호하고도 감성적인 분위기가 이런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선인장 끌어안기」는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라 이미 읽은 바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파히라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에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yborg_positive」에서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행복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보그가 '아름답기 때문'에 보통 눈이 아닌 기계 눈을 가지고 싶다는 말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극복했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시혜적 태도일 뿐이 아닐까? 아름다운 기계 눈을 가지기 위해 멀쩡한 자신의 눈을 뽑기라도 할 생각일까?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영상 매체에 대한 수요가 치솟는 현재에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시각 데이터를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모든 기술이 쏠려 있을 때, 데이터가 아닌 다른 형태로만 기록될 수 있는 별안개가 다른 기록법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다. 그림이나 글 같은 아날로그적인 기록 방식의 중요성을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뒷부분인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서는 미지의 생명체와 공존하는 삶을 보여준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은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이나 「나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우린 이미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외계인들과 공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드라마 <닥터 후>처럼! 「시몬을 떠나며」는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다들 가면을 여러 겹 쓰고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거짓 표현 대신 진심을 표현하게 만든 기생 생물을 뒤집어쓰고 사는 세상이 훨씬 더 따뜻한 세상일 지도 모르겠다. 아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의 의중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피곤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만들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늪지의 소년」, 「오염 구역」, 「가장 자리 넘어」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외계의 식물이 지구를 뒤덮은 세계. 식물이 지구를 뒤덮었다는 점에서 『지구 끝의 온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짧은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이 외계에서 왔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웬이 발견한 「늪지의 소년」 속 늪지대의 균사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하고 있던 것처럼 「오염 구역」 속 인체에 기생하는 버섯들도 이미 지구에 존재하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점령한 식물도 『지구 끝의 온실』의 모스바나처럼 지구에서 만들어진 식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집 코코」에 등장한 코코가 그 외계 식물들일지도?

나와 잘 맞는 동시대의 작가를 알게 되고, 그의 신작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신작을 읽으며 작가의 글의 방향성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신작을 따라가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써도 나는 거리낌 없이 읽을 것이고, 앞으로의 작품들을 기다리고 기대할 것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면 오히려 더 기쁨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것이다. 『므레모사』를 기다렸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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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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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뜨거운 감자인 메타버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분량이 길지 않은 만큼 메타버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기 보다는 메타버스로 나아가는 길에 대해 설명하는 느낌이 강하다. 본문 글씨 크기도 크고, 여백과 줄간격도 시원시원해서 술술 잘 읽힌다. 표지는 까만 공간에 흰 격자와 점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위에 동그란 두 창 너머로 도시가 보인다. 흔히 생각하는 사이버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라보면 펼쳐지는 또다른 세계를 잘 표현한 것 같다. 장이 넘어가는 부분의 내지도 굉장히 감각적이다. 메타버스가 지금 '핫'한 주제이니만큼 디자인도 세련되고 개성있게 보일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메타버스를 향한 기술의 발전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괜찮았다. 복잡해보이는 전문용어들을 저자가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세를 휩쓴 흑사병과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이라는 팬데믹을 전후로 세계가 큰 변화를 마주한 것처럼,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거대한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동의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알 수 있으니까. 그러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메타버스가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열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가 낙관적인 미래일지, 비관적인 미래일지는 모른다고 말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메타버스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결과의 낙관성이나 비관성을 떠나서 메타버스가 현실을 대체하며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는 주장 자체에 회의적이다. 저자는 기술이 더 발전하면 메타버스에 접속하기 위한 큰 기기들이 더 이상 필요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메타버스 속을 정말 현실처럼 감각하려면 VR기기 같은 연결매체는 필수적으로 필요하지 않나. 이는 결국 메타버스 속 나의 아바타가 존재하더라도 아날로그 현실 속의 나 역시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메타버스 속에서 먹는 음식이 아날로그 현실 속 몸에 직접적으로 영양분을 공급하지는 못한다. 아날로그 현실 속에 신체가 존재하는 한 메타버스는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체화와 관련된 문제점도 존재한다. 메타버스 속 '나'가 '나'라고 정체화 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도 현실에서 SNS로 보여지는 모습의 '나'를 '나'로 정체화하기도 하고, 어떤 집단 속에 속한 자신을 '나'라고 정체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서 예시를 든 것처럼 모든 일들이 메타버스 속에서 진행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는 오히려 메타버스 속 '나'와 아날로그 현실 속 '나' 사이의 괴리감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을까? 지금도 게임 속의 자신과 현실의 자신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게임 속 자신을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보면 충분히 발생 가능하다고 본다.

이렇듯 메타버스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날로그 현실과 병립할 수는 있어도 메타버스가 이 현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역사 유적 연구가 메타버스 속에서 온전히 진행될 수는 없지 않은가. 코로나 팬데믹이 불러온 디지털 기술 발전의 가속화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활동 공간의 탄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 발전을 우리 현실을 뒤바꿔놓을 기술이라며 과도하게 띄워주는 현 세태는 굉장히 못마땅하다.

*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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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아픈 여자들 - 건강 문제를 겪는 젊은 여성들은 일, 우정, 연애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어떻게 헤쳐나가나 앳(at) 시리즈 2
미셸 렌트 허슈 지음, 정은주 옮김 / 마티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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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출판사 앳(at)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시리즈 첫 번째 책이었던 『마이너 필링스』도 굉장히 좋은 평을 받은 책이었기에 『젊고 아픈 여자들』 역시 출간 소식을 안 이후부터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했던 책이다. 앳 시리즈는 어딘가에 국한되지 않고 교차되는 정체성들에 대해 탐구하는 시리즈이다. 나 역시도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기에 꼭 읽어보고 싶은 시리즈이기도 했다. 비문학 책은 자꾸 상당한 시간을 내어 각을 잡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독자 리뷰어에 당첨되는 좋은 기회가 생겨 읽게 되었다.

우리는 왜 항상 걱정해야 할까? 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일까? 언젠가의 나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쿨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남이 보기에 '쿨해 보이는' 사람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도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걸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문제로 나만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작가와 작가가 만난 이들은 나와는 여러방면으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젊은 여성'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나도 공감이 가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사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막연하게 내가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닐까, 내가 아직 이 책을 읽기에는 많이 부족한 사람인 건 아닐까, 하고 여러 고민으로 섣불리 첫 장을 펼치지 못했다. 다행히도 걱정과는 달리 생각보다 잘 읽혔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직접 듣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 위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았다. 작가 자체의 문체가 딱딱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을 했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시시각각 생명에 위협을 받는 질환을 앓고 있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나에게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 주었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러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거나, 혹은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생각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부분이다.

많은 '젊고 아픈 여성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괴로움이 병으로 인해 '내 매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란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나는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더 읽으면서, 그 두려움은 단지 개인의 성향으로 인해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이 있고 뜨겁고 매혹적이고 임신이 가능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따라서 신체적인 건강 문제를 암시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역겨움을 유발하게 된다. (...) 우리가 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느낄 것으로 예상하는 역겨운은 우리 자신에게서도 생겨나기 시작한다."(p.68)는 부분처럼, 그 두려움은 사회가 여성에게 학습'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현대 사회는 "건강 문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우리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라 마라 하는 걸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p.306)

이 책을 읽으며 지난 달에 읽었던 김원영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생각났다.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의 위치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젊고, 아프고, 여성임과 동시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 더욱 초점을 맞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들을 읽고 지속적으로 관련 분야의 책들을 읽어나가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김초엽・김원영의 『사이보그가 되다』, 하미나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앳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등... 벌써 읽고 싶은 책 목록이 한가득 찼다. 올 한 해는 이 책들과 함께 나 스스로에 대해서 깊게 탐구하고, 더 나아가 사회가 외면하는 여성문제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생각을 정립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워본다.

*독자 리뷰어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여성에게 성적 매력이 있고 뜨겁고 매혹적이고 임신이 가능해야 한다고 요구하며 따라서 신체적인 건강 문제를 암시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역겨움을 유발하게 된다. (...) 우리가 학습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느낄 것으로 예상하는 역겨운은 우리 자신에게서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 P68

건강 문제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우리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삶을 어떻게 살아라 마라 하는 걸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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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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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 토스카 리 / 조영학 옮김 / 허블


첫인상이 아주 강렬하다. 표지의 일러스트가 눈을 사로잡는다. 제목의 폰트 역시 뇌리에 강하게 박힌다. 표지만 봐도 어떤 내용이 전개가 될지 대강 알 수 있다.


윈터는 엄마와 함께 신천국에서 살게 된다. 방문자의 신분이었을 때의 대우와 달리, 신천국의 현실은 여느 사이비 종교와 다르지 않았다. 윈터는 신천국 교리에 얽매여 자연스럽게 느끼는 욕망을 자신의 죄악이라고 여기며 지내게 된다. 윈터는 어떤 일을 계기로 신천국에서 쫓겨나고, 어렸을 때 알고 지내던 줄리의 집에서 살게 된다. 그런데, ‘조기치매’라고 불리는 이상한 병에 걸린 환자들이 나타나고, 이윽고 미국 전역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윈터는 이 상황이 신천국 교리에서 이야기하는 ‘세계의 종말’이라고 여기며 힘들어한다. 줄리네 가족 역시 시카고를 떠나기로 결정한 날 밤, 신천국에 남아 있는 줄 알고 있던 언니 재클린이 윈터를 찾아오고, 윈터는 자신과 신천국, 팬데믹 상황을 둘러싼 연결고리를 알아가며 달리기 시작한다.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를 읽으며 깨달은 바는 현재-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나 아포칼립스 장르는 내가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사실이었다. 워낙 사실적으로 묘사가 되어있는 데다가 시공간적 배경이 지금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 상황에 더 깊게 마음을 쓰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거기다 주인공이 여성인 점까지 말이다. ‘내가 갑자기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어쩌지’와 같은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따라붙었다.


이건 개인적인 성향이 듬뿍 담긴 감상일 뿐이고, 작품 자체만 본다면 흡입력이 대단하다. 분량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 손에 들면 계속 읽게 된다. 소재가 힘들었던 나조차도 윈터가 나아가는 길이 궁금해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으니까.

『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는 윈터가 심리적 측면에서 어떻게 ‘신천국’의 억압에서 벗어났는가를 보여주는 윈터의 내적 성장을 이야기한다. 매그너스는 여느 사이비 종교들이 그렇듯 신천국이 진정한 천국이고, 바깥세상은 지옥이자 곧 멸망할 세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억압당하고 있던 윈터 역시도 밖으로 나와 매그너스의 주장의 영향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윈터는 길 위의 여정에서 스스로 빠져나온다. 다시 만난 줄리가 매그너스의 말이 맞는 거냐며 불안해 하는 물음에 윈터가 건네는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안 끝나요.”


(지금부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윈터가 달리는 길을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았지만, 내용상 아쉬웠던 설정들이 몇 가지 있었다. 윈터가 재클린을 만나고 망설임 없이 줄리의 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데, 이때 ‘줄리의 가족들이 따로 탈 수 있는 여분의 차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에 노아의 벙커에서 줄리를 다시 만나기에 어찌저찌 줄리도 안전하게 벙커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이 부분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자칫하면 윈터가 자신을 거두어준 이들의 것을 탈취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의문은 체이스가 살아 돌아왔다는 점이다. 물론 체이스가 이야기에서 퇴장할 때 나 역시도 굉장히 아쉬웠다. 하지만 ‘헬기가 차를 쫓는 상황이었는데 체이스가 살아남았다는 게 실질적으로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있었다. 노아의 벙커에서 다시 만난 체이스는 어떻게 그 상황을 빠져나왔는가를 “사륜구동이 얼음은 쥐약인데 모래에선 제법 힘을 쓰더라고.”라며 간단하게 넘겼기 때문에 더 그렇다. 물론 윈터 중심의 이야기 전개이기에 짧게 서술했을 수도 있다. 체이스와 윈터가 다시 만난 건 무척 다행이다. 그러나 앞에서는 아주 막막해 보였던 일들이 후반부에 너무 쉽게 해결된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의문들은 다음 편에서 해결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두 편은 주요 인물은 동일하지만 서로 독립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각각 읽어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들이 다음 편에서도 해결되기란 어려워 보이기도 한다.


*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좋아. 베이컨을 구하면 세상도 구한다."
그가 끄덕였다. "베이컨을 위해 세상을 구하자고." - P308

"아뇨. 세상은 이런 식으로 안 끝나요." - P410

비극이 다 그렇듯,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진정한 용기에 관해서였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어둠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다. - P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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