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케네스 클라크 지음, 이연식 옮김 / 소요서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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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같은 질문으로 끝난다.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주지 않고 독자가 계속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끈다. 대략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서유럽 문명을 예술을 중심으로 톺아보며 문명이란 무엇인지를 그린다. 저자는 동양 문명은 자신이 알지 못하니 서양 문명을 살펴본다고 말했지만 서양 문명 중에서도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문명에 치중한 것이 한계겠다. 애초에 텍스트로 기획된 내용이 아닌 다큐멘터리 대본이기 때문에 영상 매체에서 시각적, 청각적 이해를 돕는 다양한 작품들을 보거나 듣지 못하면 텍스트가 말하는 내용이 또렷하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웠지만, 최대한 많은 도판을 수록하여 그 아쉬움을 최소화하였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다큐멘터리 전편이 올라와있어 궁금하면 시청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기간의 예술 작품은 르네상스 정도까지만 익숙하고 그 이후는 (사상을 제외하고) 굉장히 낯설게 느낀다는 걸 깨달았다. 나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사조라는 키워드만 알고 작품들은 모르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동아시아에 사는 사람인데 서유럽 작품 좀 모른다고 문제될 게 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옮긴이 후기에서 언급한 ‘중심과 주변의 불균형, 문화적 배경이라는 권력’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물론 난 연구자는 아니지만,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 등 현대 매체를 볼 때도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가 그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기도 한다는 걸 깨달은 적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다. (대표적인 게 바로 성경 아닌가 싶다.) 읽는 내내 저자의 광범위한 식견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문화적 배경의 차이나 성별 표현 등 모든 문장을 그대로 수용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옮긴이 후기에서 거론된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아주 궁금해졌다.


다시 책 속으로 돌아가보자면, 10장에서 계몽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론된 『백과전서』와 관련된 서술이 기억에 남는다.


 “『백과전서』를 만든 이들은 결코 불순한 의도를 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인 정부는 사전과 같은 책을 싫어했습니다. 그런 정부는 허위의식과 추상적인 개념에 의지해 존립되기에 언어가 정확하게 정의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백과전서』는 두 차례나 발행 금지처분을 받았지만 마침내는 승리를 거두었고, 이 책을 낳은 우아한 살롱의 기품 있는 모임은 혁명 정치의 선봉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과학의 선봉이기도 했습니다. ”(p.341)


『제3제국사』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면서 느꼈던 제3제국의 언어를 통해 생각을 폭을 좁히는 방식과 현재의 어떤 정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책 관련 예산을 줄이고, 연구 예산을 줄이는 정부 말이다. 또한 1장에서의 한 문장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문명에는 약간의 여가를 누릴 만큼 소소한 물질적 번영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신뢰,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와 법률에 대한 확신, 스스로의 정신력에 대한 자신감입니다.”(p.27)


‘지금 우리에게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신뢰, 사회를 떠받치는 정의와 법률에 대한 확신’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했듯, 불확실한 전망 속에서 우리는 확신을 품고 나아갈 수 있을까?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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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3 세트 - 전3권 - 제2판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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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멋진 판형과 디자인으로 새로롭게 출간되어 바로 구매했습니다!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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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의 전쟁 1939-1945 - 편지와 일기에 담긴 2차대전, 전쟁범죄와 폭격, 그리고 내면
니콜라스 스타가르트 지음, 김학이 옮김 / 교유서가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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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전후의 독일인의 생각이나 생활사가 정말 궁금했는데, 번역되어서 반가운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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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너머 - 사라진 나라, 동독 1949-1990
카트야 호이어 지음, 송예슬 옮김 / 서해문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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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했는데, 이런 책이 나와서 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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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언스 - 의식의 발명 Philos 시리즈 22
니컬러스 험프리 지음, 박한선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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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꽃부터 개와 고양이에 이르기까지, 주변 생물체도 인간처럼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적이 있는가? 인간처럼 사고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좀 더 심오하게 표현하자면,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학 작품에서는 다양한 생명체가 화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작품을 읽다보면 자연히 정말 그렇지는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저자는 심리학과 뇌과학을 기반으로 '의식'이란 무엇인지를 추적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의식이란 무엇이며, '의식이 있다'는 것의 의미는 또 무엇인지, 비인간 동물도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지각' 능력을 가지면 '현상적 자아'가 발생할 확률이 높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의식'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굉장히 까다롭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현상적 자아를 가질 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체도 자신처럼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각 능력도 한계가 있기에 다른 생물체가 지각하는 방식이나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과거 행해진 실험들을 소개하며 그 실험의 한계는 바로 실험대상인 비인간 동물(주로 원숭이, 침팬지, 보노보, 개 등이다)에게 인간의 행동 방식이나 사고 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표현 방식이 다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따라서 저자는 한계가 존재했던 과거 실험보다 발전한 새로운 지각 능력 측정 방식을 제안한다.


저자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현상적 자아를 성장시키며 풍부한 자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행동을 보이는가'와 '성체가 된 동물이 자아를 살찌우며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며 자아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계속 찾아다니는가'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인간이 음악을 듣는 것을 든다. 인간은 '귀에서 들리는 감각의 즐거움을 느끼고, 그 주관적 경험을 그 자체로, 그것이 주체로서 좋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다. 뭘 배우려는 겻이 아니다. 뭘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티펫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운다.' 하지만 음악 감상을 비인간 동물의 지각 여부를 판별하는 척도로 내세우기엔 무언가 부족하다. 그들이 음악을 듣는 이유가 인간과 동일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음악 감상과 유사한 사례로 침팬지가 폭포에서 보이는 행동을 든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놀이'가 '모든 지각 동물에서 기대되는 행동'이며, '놀이가 관찰되지 않는다면 지각이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반려견 버니의 행동을 관찰하는데, 비인간 동물이 지각을 바탕으로 긍정적 자아를 형성한다는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종(침팬지, 개, 앵무새 등)은 눈에 띄는 결과를 보인다고 한다.


'의식'의 존재를 파헤치는 이 책은 인공지능을 언급하며 끝난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도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과 유사한 답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혹은 인간이 그런 데이터를 입력했기 때문이지 구별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인간은 왜 의식이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고 싶어할까? 저자가 제안한 윤리적 이유가 기억에 남는다. "미래의 후손이 우주적 관대함을 가지고 현상적 의식의 멸종을 막기 위해 지적 로봇을 우주 도처에 뿌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 아르테 북서퍼 활동으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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