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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은 소설'이라는 개념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단편보다도 짧은 이야기들. 『행성어 서점』 속 이야기들은 짧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이 굉장히 새롭고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한 소재들을 바탕으로 각 소설들이 독립적으로도 존재하지만, 이어지는 면도 있다. 특히 「늪지의 소년」, 「오염 구역」, 「가장 자리 넘어」로 이어지는 세계관은 정말 흥미로워서, 연작 소설이나 장편소설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부분인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에서는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닿지 않아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 「행성어 서점」이 왜 표제작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책을 읽기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모두가 같은 언어를 쓰게 되거나, 모든 언어가 쉽게 번역이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생소한 언어를 익히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은 아닐까. 『행성어 서점』 속 수록작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바가 이 표제작 속에 녹아있다. 표지 일러스트와 안에 수록된 일러스트가 왠지 모르겠으나 초현실주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바가 있는데, 일러스트가 풍기는 모호하고도 감성적인 분위기가 이런 주제의식을 잘 보여준다.
「선인장 끌어안기」는 서울리뷰오브북스 0호에 수록되었던 작품이라 이미 읽은 바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파히라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에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yborg_positive」에서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행복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보그가 '아름답기 때문'에 보통 눈이 아닌 기계 눈을 가지고 싶다는 말은 섬뜩하게 다가온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게 극복했기에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시혜적 태도일 뿐이 아닐까? 아름다운 기계 눈을 가지기 위해 멀쩡한 자신의 눈을 뽑기라도 할 생각일까?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영상 매체에 대한 수요가 치솟는 현재에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한다. 시각 데이터를 통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모든 기술이 쏠려 있을 때, 데이터가 아닌 다른 형태로만 기록될 수 있는 별안개가 다른 기록법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우치게 만든다. 그림이나 글 같은 아날로그적인 기록 방식의 중요성을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지 않을까.
뒷부분인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에서는 미지의 생명체와 공존하는 삶을 보여준다.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은 천선란 작가의 「어떤 물질의 사랑」이나 「나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우린 이미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외계인들과 공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드라마 <닥터 후>처럼! 「시몬을 떠나며」는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다들 가면을 여러 겹 쓰고 살아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거짓 표현 대신 진심을 표현하게 만든 기생 생물을 뒤집어쓰고 사는 세상이 훨씬 더 따뜻한 세상일 지도 모르겠다. 아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우리로 하여금 서로의 의중을 꿰뚫어보고자 하는 피곤한 생각을 멈출 수 있게 만들어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늪지의 소년」, 「오염 구역」, 「가장 자리 넘어」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외계의 식물이 지구를 뒤덮은 세계. 식물이 지구를 뒤덮었다는 점에서 『지구 끝의 온실』이 떠오르기도 한다. 짧은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 그것들이 외계에서 왔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오웬이 발견한 「늪지의 소년」 속 늪지대의 균사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구에 존재하고 있던 것처럼 「오염 구역」 속 인체에 기생하는 버섯들도 이미 지구에 존재하던 것들일지도 모른다. 지구를 점령한 식물도 『지구 끝의 온실』의 모스바나처럼 지구에서 만들어진 식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우리집 코코」에 등장한 코코가 그 외계 식물들일지도?
나와 잘 맞는 동시대의 작가를 알게 되고, 그의 신작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신작을 읽으며 작가의 글의 방향성이 어떻게 변화해가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신작을 따라가는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써도 나는 거리낌 없이 읽을 것이고, 앞으로의 작품들을 기다리고 기대할 것이다.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면 오히려 더 기쁨 마음으로 기다리게 될 것이다. 『므레모사』를 기다렸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