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의 과학 허세 (리커버판, 양장)
궤도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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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읽은 교양과학 서적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과학을 싫어하는 쪽이었다. 정정. 과학 시험 보는 걸 싫어했다. 그냥 과학 이야기를 듣는 건 좋아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주에 대한 이야기라면 환장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손에 잡은 과학도서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러가지 과학적 사실들을 쉽게 설명해준다. '알아두면 쓸데있는 신비한 과학사전' 같은 느낌이다. 어려운 개념들을 다루면서도 가볍게 예를 들어 독자를 이해시킨다. 대중을 독자로 상정한 교양과학 서적이기 때문에 문체가 가볍고, 그렇기 때문에 예시로 언급하는 것들도 매우 가볍다. 그러나 이 점이 나에게는 도리어 역효과였던 것 같다. 나는 차분하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것을 선호하기에 이 책이 정한 방향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책 제목 자체가 '과학 허세'였으니 그 점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아무래도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읽기 힘든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초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과학 서적을 찾던 이들이라면 충분히 추천해 줄만 한 책이다.

문체에 대한 선호도와는 별개로, 과학에 대해 몰랐던 것들을 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기억에 남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 눈동자의 흰자의 의미는?

  • 갑자기 켜지는 현관 입구의 등, 혹시 귀신?

여러분도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시라고 의미는 써두지 않을 것이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재미있는 과학 토크쇼를 보는 느낌으로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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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초월 1
우다영 외 지음 / 허블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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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면서 몇몇 작품은 단편이라기엔 끝맺음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펴내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허블에서 '초월' 시리즈로 출간될 작품들의 프리퀄 격의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장편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작가 라인업도 장르 소설을 쓰지 않았던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어 신선하고 좋았는데, 그 작가들이 SF를 녹여낸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한 표지 자체가 시선이 꽂히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표지 이미지가 수록작품들의 표지에서 조금씩 이미지를 따와 구성된 것이라 표지 속에서 각각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책 제목의 글씨체 역시 기본적인 고딕이나 명조체가 아니라 약간은 웹소설의 제목이 생각나기도 하는 모서리가 둥글고 손글씨 같은 글씨체인 점도 좋았다. 흔히 생각하는 소설이 아니라 뭔가 새롭게 시도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긴 예지」는 수록작품들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가장 완성도 있게 다가왔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예지를 가진 인간들의 능력이 더 예민해지며, 집단지성처럼 예지 능력을 모아 '레마'를 훈련시켜 결과적으로는 종말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 해나가던 어느날, 효주는 예지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져 오는 시선 역시 미래를 보는 시선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과거를 바라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레마의 도움을 받아 효주는 과거를 바라보게 되는데, 길고 긴 삶을 살아낸 효주가 깨달은 사실은 신이 태어나기 위해 종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모든 것들은 신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의지에 따라 예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이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고, 신의 탄생은 결국 종말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 말인 즉슨, 신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시선을 보고 습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예지'라는 능력이 신의 의지에 따라 인간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선택 그 자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호수에서」는 작가의 다른 단편집인 『칵테일, 러브, 좀비』의 수록작인 「습지의 사랑」이 떠올랐다. 설정은 다르지만 뭐랄까, 진하와 나루의 분위기가 전작 속 두 주인공의 분위기와 닮았다. 호수 속 괴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역사가 궁금하기도 해서 장편소설로 완성되었을 때가 기대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 노트>에서 엿본 13년 후의 이야기였다. 13년 간 진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궁금해서 장편에 대한 기대감을 더해주기도 했고, 13년이란 시간동안 나루를 기다리며 그 호수를 바라본 진하의 마음이 절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은 기억칩」은 읽으면서 '이렇게 끝나버린다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작품이라 아쉬웠는데, 그래서 더 긴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사라-17은 어떤 연유로 만들어지고 이손의 기억칩을 가진 채로 세상에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이손의 엄마는 어떤 연유로, 어떤 목적으로 이들을 설계한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다. 설정상 흥미로웠던 부분은 기억칩에 기억이 저장되었다는 것은 훼손되지 않는한 기억손상이 없다는 것을 보통 의미하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감쇠기'의 존재로 인해 기억칩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 역시 인간의 기억처럼 점점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당신들의 기억이 곧 영혼'이라는 이손의 엄마의 말이었다. 나 역시도 영혼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손의 엄마는 이손의 영혼을 다시 재구성하고자 사라-17들의 기억을 다시 기증받고 싶다한 것인데, 에이미의 말처럼 이손의 기억칩 위에는 각 사라-17들의 새로운 기억들이 덧붙여졌기에 과연 그것이 이손의 영혼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웹소설, 특히 현대판타지 장르의 설정들이 생각났다.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현판 웹소설 속에서는 '헌터'라고 불리며 대부분 추앙받는 존재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괴물'이라고 불리며 추앙보다는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웹소설 속 헌터들의 능력은 강력하면서 아름답다는 설정이 주를 이루고, 이 소설 속 괴물들은 폭주 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한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홀로 남은 도연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 역시 좋았던 작품 중 하나다. '지구가 다른 행성의 사후게계라면?'이라는 설정이 너무 좋았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가 김초엽 작가의 「공생 가설」과 설정이 겹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도 했고, 그래서 미리 김초엽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하는데, 두 작품 모두 좋게 읽은 독자로서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각자의 매력이 살아있는 이야기다. 메란드가인의 영혼은 어떻게 지구에 오는 것일까? 물리적 한계가 적용되지 않는 초월성이 이 이야기를 더 신비롭고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박서련 작가는 요새 이름을 많이 듣고 있는데,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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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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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나 역시도 여성이자 청년이며, 다양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에 어떤 한 가지 특징으로 날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느라 계속 뒷전으로 미루지는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저자가 영화감독이기도 하다보니 문화콘텐츠를 즐기는 나의 기호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괴롭기도 했다. 책의 경우에는 여성 작가들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지만, 즐겨보는 뮤지컬의 경우에는 선호하는 작품이 주로 남성 2, 3인극이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좋아하고 재밌어서 보는 것이지만, 내가 해당 극들을 즐겨보는 만큼 '여성서사' 작품들을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한정된 예산을 내가 보고 싶은 공연에 쏟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항상 마음 한 켠에는 이런 죄책감이 응어리져 있다. 이 점은 내가 계속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내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 많이 느껴지고, 나는 너무 편협한 시각 속에 갇혀 편히 살려하지는 않았는지 계속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름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책의 페이지가 잘 넘어간 것과는 다르게 내 마음 속은 너무 보갑해졌다. 사실 글을 쓰는 것도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과연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내 생각을 이렇게 밝혀도 되는 걸까? 내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내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뿐만 아니라, 내가 더이상 대학생이 아니게 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끊임없이 커져만 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힘을 얻어가는 부분은, 이것은 단지 나 혼자만 고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앞서 읽었던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언급했듯이, 사회가 개인을 지탱해줄 필요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단지 나약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질문과 그에 따른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하고 경험하고 도전하고 모험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여러 차례의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사회가 아닐까?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생애주기에 따라 시도와 도전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을까? 결과만을 강조하는 시장 경쟁의 가치에 입각해 ‘성공'만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특정한 가치만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p.250)

이 부분을 보며 나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에 서서 나 스스로에 대한 불확실함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버티며 나아가보려고 한다. 저자가 말했듯, 나도 저자를 이어 말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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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개정증보판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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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가장 부끄러웠던 점은 나 역시도 부모가 자식을 체벌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도 어렸을 때 많이는 아니지만 회초리로 맞고, 벌을 섰던 기억이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작가가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과 비교를 하며 설명하는 부분을 읽고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여성이 당하는 폭력과 비교하니 우리 사회가 아동 체벌에 대해 취하는 입장이 얼마나 이상한지가 확 느껴졌다. 모든 인간은 다른 인간이 행사하는 폭력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데 어째서 우리 사회는 아동이 '체벌'이라는 명목하에 받는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며 방기했는가.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다. p.33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아동에 대한 체벌을 금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우리나라는 2021년 1월에서야 민법에서 부모의 자녀에 대한 징계권이 사라졌다. 이는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영향이 아주 컸다. 아이들의 죽음이 없다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 사회가 막막할 뿐이다. 그러나 징계권이 폐지되었다고 해서 법적으로 완전히 체벌을 금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체벌에 관한 논란은 일어나고 있고, 나 역시도 징계권 폐지에 대한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작가가 소개한 스웨덴의 선례에 따르면, 스웨덴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법을 바꾼 이후, 해당 법안에 대한 국가적인 홍보와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아동에 대한 체벌은 금지되어야 한다.'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도 이런 선례를 보며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법안이 제정될 수 있다는 입에 발린 말은 집어치우고 정부가 앞장서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특히나 '차별금지법'에 대한 정부의 미온한 대처는 아주 실망스럽다. 현정부에서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제정되지 않았다니. 또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짐에 따라 결혼 관계가 아니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생활동반자법' 역시 여전히 제정되지 않았다. 해당 법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아직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어렵습니다.'인 것이 너무나도 답답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것을 계속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위와 같은 법안 제정이 계속해서 미루어지는 것도 그렇고, 저출산(나는 '저출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작가가 서두에 밝힌 이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이해가 되어 이 글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하려고 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자꾸 가족의 해체에 집중하며 과거로 회귀하고자 하는 가족 정책을 바라보면 한숨만 나온다. 부모와 아이로 이루어진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고 여기며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는 '비정상적'이라고 여기고 차별하는 사회. 결혼을 한 관계에서도 아이를 낳으면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 빈번한 사회. 아이를 양육하는 모든 과정과 비용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누가 아이를 낳으려고 하겠는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낳고 싶은 여성도 아이를 낳으려는 마음을 접기 일쑤다.

대선 이후 인수위에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인구가족부, 미래가족부 등 새로운 부서를 신설해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이관하고 확대하는 방안을 꾀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앞으로의 5년이 너무 걱정스럽고 막막하다. 또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운동 당시 내세웠던 여성 정책이 오로지 '출산 장려'에만 몰려있던 것도 굉장히 우려스럽다. 성평등 사회에서 멀어지는 것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대통령 당선인과 그가 구성할 차기 정부가 과연 '정상가족'의 문제점을 인지할 수 있을까? 갈 길이 한참 남았어도, 속도가 느리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는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앞으로 들어설 새 정부가 앞서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의 고착화를 꾀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정상가족'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 지금보다 더 소외를 느끼고 차별을 당할까 걱정스럽다.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지만 정부가 나와 같은 사람들의 주장과 노력을 무시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나는 언제든 너의 몸에 손댈 수 있다는 가르침, 과거 여성에 대한 폭력도 같은 메시지를 깔고 있었다. 체벌을 비롯하여 친밀한 관계에 있는 타인에 대한 반복적 폭력은 모두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언제든 당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메시지, 당신이 존재할 권리를 결정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때리는 사람인 나라는 주장, 그렇게 힘으로 상대를 침묵시키고 상대의 목소리를 부정하고 때리는 사람의 목소리를 상대 안에 심으려 하는 시도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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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연습 - 돌기민 장편소설
돌기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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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연습』 돌기민 / 은행나무


표지의 그림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SNS를 통해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표지 재질이 빛에 비추면 홀로그램처럼 무지개빛이 나는 재질이기도 한데(코팅 떄문일까?), 언뜻 비치는 색색의 색을 보니 '노란색 바탕에 빨간 반점이 찍히고 한낮의 하늘처럼 파란 몸털'로 뒤덮힌 무무의 본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본문 아래 여백이 널널하고 줄간격이 넓은 건지(확실치 않음) 체감상 한 페이지에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이러한 본문 편집 덕분에 이후 언급할 띄어쓰기가 틀어진 부분도 덜 힘들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화자의 서술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속도감 있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만 무무가 본모습일 때 본문의 띄어쓰기가 엉망인데,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에는 익숙치 않은 무무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이지만 읽을 때 조금 머리가 아팠다. 띄어쓰기가 엉망진창이니 글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점 역시 우리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마땅히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띄어쓰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주의점은 적나라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무는 고향 행성이 파괴되어 도망치던 중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다. 외계 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활 방식이나 주변 환경이 자신과 맞지 않아 연료를 구하는대로 지구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지만, 쉽지 않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지구에 체류 중이다. 연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무무가 찾아낸 것은 인간이다. 무무는 인간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인간과 다른 무무가 인간이 대다수인 지구에서 식인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살인 및 식인은 과정이 까다롭기에, 무무가 효율적인 음식 공급을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데이팅 어플이다. 데이팅 어플을 통해 대상을 물색하고, 만난 뒤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상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무무는 자신의 신체를 인간처럼 개조해야만 한다. 이 신체 개조는 고통을 동반하고, 신체를 개조한다고 해서 인간이 지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밖을 거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두 다리로 중력의 무게를 버텨야 한다.

인간이 아닌 제3자로서 무무가 바라보는 인간 사회는 불편함 그 자체다. '성별 맞추기 게임'의 숙련자인 인간은 자신이 추측한 성별에 의존하여 상대를 대한다. 또한, 여자인 경우에는 '여자처럼 꾸미고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한낱 괴물 나부랭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p.14-15) 이러한 묘사는 무무가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관습적으로 부여한 성역할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괴물'로 취급하는 것을 꼬집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은 무무에게 아주 커다란 문제이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 두 다리로 힘겹게 중력의 무게를 버티며 걷는 무무의 모습은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얼마나 불친절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중교통 및 출입구 등 우리가 항상 이용하는 것들은 모든 이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규범에 몸을 맞추도록 강요할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지하철 역에는 마땅히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친절한 환경은 소위 '정상이 아닌' 몸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몰아낸다. 사회적 규범에 몸을 맞추지 못한다면 사회에 속할 수도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사냥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무무는  '그들이 나와 같다면 난 그들을 못 먹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수준에서 다르다고 믿으면, 그들을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p.113) 상대를 철저히 대상화함으로써 행위로 인한 죄책감을 더는 것이다. 무무의 식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 역시 타인을 대상화함으로써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무는 자신의 모습을 독자에게 설명하며 '나는 항상 이렇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존재 입니다.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날 모릅니다. 설명은 언제나 나같은 존재만 합니다. 요구하는 것은 당신, 요구받는 것은 나. 당신은 생명체의 기본값입니다. 당신이 우주의 중심이라서 아아아아아아주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p.66-67) 이러한 무무의 말을 통해 독자는 (우주는 차치하더라도)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주 생명체가 인간인 양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과연 지구의(우주의) 중심일까?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여자라니 무슨 뜻일까요? 여자처럼 꾸미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기꺼이 의무를 짊어 집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한낱 괴물 나부랭이로 취급받으니까요. 괴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기. 여기에 나의 일과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 P16

나 는항 상이렇 게 친 절한설명 이 필 요한 존 재입니 다. 설 명하지 않으 면아 무도날 모릅니 다. 설 명은 언제 나나 같은존재 만 합 니다. 요 구하는 것은당 신 ,요 구받는 것 은나. 당 신은생 명체 의기 본값 입니 다.당신 이우 주의중 심이라서아아 아아아 아주좋 겠습 니다. - P67

여기에도 카메라가 있고, 저기에도 카메라가 있습니다. 오래된 카메라도 새 카메라도 있습니다. (...) 그리고 내 안에서 나를 촬영하는 카메라까지. 카메라는 전부 자기 정체를 모릅니다. 다른 카메라를 찍으며 또 카메라에게 찍힙니다. 서로 찍고 찍히는 카메라들. 감시하고 감시당하기. 감시당하고 감시하기.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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