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연습 - 돌기민 장편소설
돌기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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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연습』 돌기민 / 은행나무


표지의 그림은 과연 무엇일지 궁금했는데, SNS를 통해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표지 재질이 빛에 비추면 홀로그램처럼 무지개빛이 나는 재질이기도 한데(코팅 떄문일까?), 언뜻 비치는 색색의 색을 보니 '노란색 바탕에 빨간 반점이 찍히고 한낮의 하늘처럼 파란 몸털'로 뒤덮힌 무무의 본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본문 아래 여백이 널널하고 줄간격이 넓은 건지(확실치 않음) 체감상 한 페이지에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고 느껴지지 않아 시원시원하게 읽힌다. 이러한 본문 편집 덕분에 이후 언급할 띄어쓰기가 틀어진 부분도 덜 힘들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화자의 서술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에 굉장히 속도감 있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다만 무무가 본모습일 때 본문의 띄어쓰기가 엉망인데,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에는 익숙치 않은 무무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본문이지만 읽을 때 조금 머리가 아팠다. 띄어쓰기가 엉망진창이니 글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점 역시 우리와 다른 존재를 마주했을 때 우리가 마땅히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띄어쓰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주의점은 적나라한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무무는 고향 행성이 파괴되어 도망치던 중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이다. 외계 난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생활 방식이나 주변 환경이 자신과 맞지 않아 연료를 구하는대로 지구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지만, 쉽지 않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지구에 체류 중이다. 연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식성에 맞는 음식을 찾는 것도 힘들었다. 결국 무무가 찾아낸 것은 인간이다. 무무는 인간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인간과 다른 무무가 인간이 대다수인 지구에서 식인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살인 및 식인은 과정이 까다롭기에, 무무가 효율적인 음식 공급을 위해 택한 방법은 바로 데이팅 어플이다. 데이팅 어플을 통해 대상을 물색하고, 만난 뒤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상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무무는 자신의 신체를 인간처럼 개조해야만 한다. 이 신체 개조는 고통을 동반하고, 신체를 개조한다고 해서 인간이 지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밖을 거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한 두 다리로 중력의 무게를 버텨야 한다.

인간이 아닌 제3자로서 무무가 바라보는 인간 사회는 불편함 그 자체다. '성별 맞추기 게임'의 숙련자인 인간은 자신이 추측한 성별에 의존하여 상대를 대한다. 또한, 여자인 경우에는 '여자처럼 꾸미고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한낱 괴물 나부랭이로 취급'받기 때문이다.(p.14-15) 이러한 묘사는 무무가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관습적으로 부여한 성역할에 부합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괴물'로 취급하는 것을 꼬집는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은 무무에게 아주 커다란 문제이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 두 다리로 힘겹게 중력의 무게를 버티며 걷는 무무의 모습은 우리 주위의 환경이 얼마나 불친절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중교통 및 출입구 등 우리가 항상 이용하는 것들은 모든 이가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규범에 몸을 맞추도록 강요할 게 아니라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지하철 역에는 마땅히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친절한 환경은 소위 '정상이 아닌' 몸을 가진 이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몰아낸다. 사회적 규범에 몸을 맞추지 못한다면 사회에 속할 수도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을 사냥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무무는  '그들이 나와 같다면 난 그들을 못 먹습니다. 그들이 나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수준에서 다르다고 믿으면, 그들을 거리낌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p.113) 상대를 철저히 대상화함으로써 행위로 인한 죄책감을 더는 것이다. 무무의 식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을 대상화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간 역시 타인을 대상화함으로써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무무는 자신의 모습을 독자에게 설명하며 '나는 항상 이렇게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존재 입니다.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도 날 모릅니다. 설명은 언제나 나같은 존재만 합니다. 요구하는 것은 당신, 요구받는 것은 나. 당신은 생명체의 기본값입니다. 당신이 우주의 중심이라서 아아아아아아주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p.66-67) 이러한 무무의 말을 통해 독자는 (우주는 차치하더라도)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주 생명체가 인간인 양 생각하는 인간중심주의를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과연 지구의(우주의) 중심일까?

*서평단에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내가 여자라니 무슨 뜻일까요? 여자처럼 꾸미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기꺼이 의무를 짊어 집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한낱 괴물 나부랭이로 취급받으니까요. 괴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기. 여기에 나의 일과 생존이 걸려 있습니다. - P16

나 는항 상이렇 게 친 절한설명 이 필 요한 존 재입니 다. 설 명하지 않으 면아 무도날 모릅니 다. 설 명은 언제 나나 같은존재 만 합 니다. 요 구하는 것은당 신 ,요 구받는 것 은나. 당 신은생 명체 의기 본값 입니 다.당신 이우 주의중 심이라서아아 아아아 아주좋 겠습 니다. - P67

여기에도 카메라가 있고, 저기에도 카메라가 있습니다. 오래된 카메라도 새 카메라도 있습니다. (...) 그리고 내 안에서 나를 촬영하는 카메라까지. 카메라는 전부 자기 정체를 모릅니다. 다른 카메라를 찍으며 또 카메라에게 찍힙니다. 서로 찍고 찍히는 카메라들. 감시하고 감시당하기. 감시당하고 감시하기.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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