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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ㅣ 초월 1
우다영 외 지음 / 허블 / 2022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으면서 몇몇 작품은 단편이라기엔 끝맺음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펴내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허블에서 '초월' 시리즈로 출간될 작품들의 프리퀄 격의 이야기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장편으로 다시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작가 라인업도 장르 소설을 쓰지 않았던 작가들도 포함되어 있어 신선하고 좋았는데, 그 작가들이 SF를 녹여낸 이야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한 표지 자체가 시선이 꽂히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표지 이미지가 수록작품들의 표지에서 조금씩 이미지를 따와 구성된 것이라 표지 속에서 각각의 작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책 제목의 글씨체 역시 기본적인 고딕이나 명조체가 아니라 약간은 웹소설의 제목이 생각나기도 하는 모서리가 둥글고 손글씨 같은 글씨체인 점도 좋았다. 흔히 생각하는 소설이 아니라 뭔가 새롭게 시도해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긴 예지」는 수록작품들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가장 완성도 있게 다가왔다. 종말이 다가올수록 예지를 가진 인간들의 능력이 더 예민해지며, 집단지성처럼 예지 능력을 모아 '레마'를 훈련시켜 결과적으로는 종말을 막는 것을 목표로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 해나가던 어느날, 효주는 예지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과거부터 이어져 오는 시선 역시 미래를 보는 시선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과거를 바라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레마의 도움을 받아 효주는 과거를 바라보게 되는데, 길고 긴 삶을 살아낸 효주가 깨달은 사실은 신이 태어나기 위해 종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 이 모든 것들은 신이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이 신의 의지에 따라 예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신이 그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에는 신이 존재하지 않고, 신의 탄생은 결국 종말이라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 그 말인 즉슨, 신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시선을 보고 습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예지'라는 능력이 신의 의지에 따라 인간이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신의 의지가 아닌 인간의 선택 그 자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호수에서」는 작가의 다른 단편집인 『칵테일, 러브, 좀비』의 수록작인 「습지의 사랑」이 떠올랐다. 설정은 다르지만 뭐랄까, 진하와 나루의 분위기가 전작 속 두 주인공의 분위기와 닮았다. 호수 속 괴물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역사가 궁금하기도 해서 장편소설로 완성되었을 때가 기대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작가 노트>에서 엿본 13년 후의 이야기였다. 13년 간 진하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궁금해서 장편에 대한 기대감을 더해주기도 했고, 13년이란 시간동안 나루를 기다리며 그 호수를 바라본 진하의 마음이 절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은 기억칩」은 읽으면서 '이렇게 끝나버린다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작품이라 아쉬웠는데, 그래서 더 긴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다. 사라-17은 어떤 연유로 만들어지고 이손의 기억칩을 가진 채로 세상에 살아가고 있던 것일까? 이손의 엄마는 어떤 연유로, 어떤 목적으로 이들을 설계한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다. 설정상 흥미로웠던 부분은 기억칩에 기억이 저장되었다는 것은 훼손되지 않는한 기억손상이 없다는 것을 보통 의미하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감쇠기'의 존재로 인해 기억칩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 역시 인간의 기억처럼 점점 잊혀져 간다는 것이다. 단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당신들의 기억이 곧 영혼'이라는 이손의 엄마의 말이었다. 나 역시도 영혼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손의 엄마는 이손의 영혼을 다시 재구성하고자 사라-17들의 기억을 다시 기증받고 싶다한 것인데, 에이미의 말처럼 이손의 기억칩 위에는 각 사라-17들의 새로운 기억들이 덧붙여졌기에 과연 그것이 이손의 영혼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웹소설, 특히 현대판타지 장르의 설정들이 생각났다.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현판 웹소설 속에서는 '헌터'라고 불리며 대부분 추앙받는 존재들이 이 소설 속에서는 '괴물'이라고 불리며 추앙보다는 2등 시민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웹소설 속 헌터들의 능력은 강력하면서 아름답다는 설정이 주를 이루고, 이 소설 속 괴물들은 폭주 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끔찍한' 모습으로 변모한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홀로 남은 도연이 과연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하다.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나면」 역시 좋았던 작품 중 하나다. '지구가 다른 행성의 사후게계라면?'이라는 설정이 너무 좋았다. <작가 노트>에서 작가가 김초엽 작가의 「공생 가설」과 설정이 겹치진 않을까 걱정했다고도 했고, 그래서 미리 김초엽 작가에게 허락을 구했다고 하는데, 두 작품 모두 좋게 읽은 독자로서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각자의 매력이 살아있는 이야기다. 메란드가인의 영혼은 어떻게 지구에 오는 것일까? 물리적 한계가 적용되지 않는 초월성이 이 이야기를 더 신비롭고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박서련 작가는 요새 이름을 많이 듣고 있는데, 이 작품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