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어! 흰털
이진 지음 / 당그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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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했어, 흰털>은 토끼와 함께 살았던 지은이의 흔치 않은 동거 이야기다.
책 소개를 읽고선 멀리 프랑스로 다 늙어 공부 떠난 후배가 토끼를 키웠던 게 생각나 선물로 보내주려고 냉큼 주문했다. 물론 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열어 보고 있지만…^^

책은 열고 서너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글의 구성이 에피소드 모음이라 읽기 어렵지 않은데다 전체적인 원고량도 얼마 되지 않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이 책은.

개와 고양이와는 또 다른 반려동물인 토끼 흰털과의 동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이 책은 작가의 굴곡 많은 생활에 어떻게 끼어든 토끼의 인생유전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만화 <센터로의 일기>처럼 토끼와 함께 사는 생활에서 얻는 기쁨, 놀라움, 즐거움, 버거움 뭐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와 관계가 발전해 가는 내용을 원했었는데 이 책은 그보다는 작가 이야기 중심이다.

다시 말해 작가와 토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작가와 토끼가 어떻게 각각 파란만장 인생사를 겪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나처럼 도시에서 사람과 토끼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가 궁금했던 독자에게는 별 의미 없는 책이고,

하나의 스토리로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대로 괜찮은 책이 될 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이 하나, 둘 떠나는 작가의 상황에는 함께 가슴 아프고, 그런 상황 속에서 토끼에게 위안을 받는 작가의 모습에 동화되고, 악조건 속에서도 토끼에게 책임을 다 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배울 점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앞에 말했던 후배도 키우던 토끼를 결국 동물원에 보냈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결국 동물원으로 흰털을 동물원에 보내고 만다.

물론 후배보다 훨씬 더 피치 못할 사정이 많지만 그래도 그 결과가 마땅치 않다.

물론 작가가 그 과정에서 토끼와 함께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토끼는 또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버림받고 돌아오고 또 버림받고 또 돌아오고…

사람이 동물의 생각을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동물들도 사람의 처지를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꾸만 버려지는 상황이 토끼에게는 너무 모진 형벌인 것 같다.



안 그래도 인간과 사는 게 동물들에게는 그리 기쁜 일이 아닐지 모른다.

인간의 반려동물로 산다는 건 꽤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고 게다가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미래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배도 동물원에 보낸 토끼가 동물원에 찾아가면 가족을 알아보곤 했다며 기뻐했는데 과연 그게 기뻐해야 할 일일까?

그게 사람들의 생각처럼 함께 살았던 가족에 대한 기억일까?

그건 사람의 착각 아닐까?



게다가 이 책의 아쉬운 점 또 하나는 인터넷 사이트 연재물을 엮어서 그런지 글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책의 흐름도 원만치 않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나오려면 좀 더 다듬고 첨가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작가와 토끼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과정이 좀 더 자세히 서술됐다면 전체적인 책의 내용이 독자들에게 더 이해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토끼라는 낯선 생명체와 인간이 만나 살아가는 모습을 작가의 명함을 갖은 사람이 쓰는 글이라(지은이는 시인이자 드라마 작가다) 잔뜩 기대하고 본 책인데 실망이 크다. 평점을 매기라면 별 하나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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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미터의 삶
이노을 지음 / 오늘의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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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3년 전쯤 샀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 보았다.

한국판 ‘동물나라 닭고기 수프’(우리나라엔 101가지 이야기 시리즈로 소개됐다.) 같은 책.

하지만 잭캔필드와 마크빅터한센의 동물나라 닭고기 수프와 다른 점은 너무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 포장이 됐다는 점이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취재와 여러 자료를 취합해 글을 썼음에도

글의 어디에도 이 글이 실화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어느 동네인지, 언제 일어난 일인지, 그 후에 어찌 됐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저자가 동화를 쓰는 사람이라더니

어느 정도의 사실(fact)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동화처럼 만들어낸 모양이다.

요즘 그 흔하다는 팩션(fact + fiction,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허구).

취재가 좀 부족하고, 저자 생각보다 얘기가 감동적이지 못했어도 그냥 그렇게 솔지갛게 쓰면 좋았을 것을, 저자는 왜 솔직해지지 못했을까?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몰입이 어려웠다.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감동이다.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사는 모습은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감동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저자는 왜 오버를 했을까?

독자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이야기를 너무 꾸며냈다는 느낌이 너무 많이 들었던 책이다.



가슴을 울리지 못했던 이 책을 읽고서 머리에 남았던 건 단지 제목뿐이다.

3미터의 삶….

지금도 한국 어디에나 묶여 사는 개들이 있다.

그들의 삶의 길이는 1미터가 고작이다.

마음씨 좋은(?) 주인(그들은 가족이 아니라 주인이다)을 만났더라도 기껏 3미터쯤 될까?

도시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자유로울 거라 환상을 갖고 있는(작가 김훈 아저씨마저도! 그의 책 <개>를 보라) 시골개도 묶여 살긴 비등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으려나? 밭 작물 해친다고 시골의 그 흔한 논밭의 흙 한 번 밟아보지 못하는 게 요즘 한국의 시골개들이다.



이 책의 아이러니는 맨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책은 조시 빌링스의 말을 빌어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당신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지구상에서 개뿐이다.’

라는 말로 장엄하게 끝을 맺는다.



그런데 이어지는 출간 기념행사 페이지.

이 책을 구입한 독자들 중에서 추첨을 해서

1등 1명 애완견(잉글리쉬 코카 스태니얼)

2등 2명 애완견(페키니즈, 시추)

이렇게 준단다. 세상에~~~~



이 이벤트는

개에 관한, 아니 생명에 관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말해주고 있다.

개는 상품일 뿐이다.

책을 사면 주는 책받침, 책가방, 안 팔려서 재고로 쌓인 책들과 동급인 것이다.

이런 이벤트를 만든 사람들의 머리속엔

개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인식이 부재하다.

게다가 1등과 2등의 차이는 뭔가?

코카는 비싸니까 1등이고, 시추는 싸니까 2등인가?



책 읽으며 실망, 이벤트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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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김기찬 지음 / 중학당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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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작가 김기찬 선생은 ‘골목’을 주제로 평생 사진을 찍어오신 분입니다.

김기찬 선생의 작품을 보면

60년대부터 골목을 끼고 살아온 우리의 지난한 삶이 보입니다.

다른 책은 너무 비싸서 못 사고….ㅠ,ㅜ;;

제가 오로지 하나 갖고 있는 건

<개가 있는 따뜻한 풍경>입니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 자신은 특별히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삶이 무거워 그 어떤 동물에도 관심을 갖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의 사진을 보면

가난했던 시절,

사람과 동물이 정을 나누며 그 시간을 함께 건너온 게 보이는군요.

김기찬 선생이 애정을 갖고 몇 십 년간 사진을 찍었던

서울의 중림동 골목은

지난 1997년 재개발로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사람 냄새 묻어나는 골목길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군요.

골목길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 수 많은 생명이 함께 삶을 엮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뛰노는 아이들과 강아지,

담벼락의 길고양이가 있어 아름다운 것이지요.

요즘 한강맨션 사태를 보며

언젠가

골목에서 개와 고양이가 다 사라져 버린 날,

사람들은 그때서야 알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요….

사설이 길었죠?

김기찬 선생의 <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 사진 몇 컷 구경하세요.

마음과 몸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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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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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드 로렌츠를 아시나요?

제가 많이 좋아라하는 동물학자죠.

비교행동학이라는 말도 어려운 분야의 창시자이기도 하고요.

많은 반려인들은 '애완동물(pet)'이라는 말 대신 '반려동물(companion animal)'이라는 말을 쓰자고 주창한 사람으로 많이 알고 계시죠.

또는 각인이론으로 유명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동물들을 통계하고 분석해도 연구하지도 않았고,

의인화하여 연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제가 콘라드 로렌츠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죠.

그는 수 많은 동물들과 집에 함께 살며 그 모습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연구를 진행한 학자입니다. 동물들은 완전한 자유 속에서 콘라드 가족과 친밀감을 느끼며 함께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의 연구에는 수 많은 재미난 에피소드가 등장하죠.




콘라드는 보고 관찰한 것을 유머러스한 글과 직접 그린 그림으로 표현하곤 했는데요,

그래서 저는 그가 학자보다 마치 문학가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전도된 창살 효과’라는 제목의 그림도 있습니다.

콘라드네 집은 까마귀, 코커투, 원숭이 등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아이가 생기고 자라자 그와 부인은 뜰에 큼직한 우리를 만들고 그 속에 보행기와 함께 아이를 집어 넣었답니다.

정말 기발하지 않습니까?

일반인이라면 동물들을 가둘 우리를 만들텐데 말이죠.^^*





또 오리 새끼들이 콘라드를 마치 엄마처럼 따라다니는 그림도 있습니다.

오리, 갈가마귀 등 여러 동물들의 소리를 거의 똑같이 흉내낼 줄 알았던 콘라드는 어린 오리 새끼들이 부화할 때 옆에서 엄마 오리 소리를 내서 자신을 엄마로 알고 쫓아다니게 하는 실험을 한 것이죠.

그런데 사람이 서면 키가 너무 커서 오리 새끼들은 헷갈려 버립니다.

그래서 콘라드는 오리 새끼 10여 마리의 제일 앞에서 오리 소리를 꽥꽥 내며 오리 걸음으로 쭈그리고 걸었던 거지요.

그걸 울타리 너머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구경꾼들의 눈에는

턱수염이 더부룩한 뚱뚱한 남자가 쪼그려 앉은 자세로 풀밭을 이리저리 다니면서 끊임없이 꽤꽥 소리를 내는 것은 보이는데

오리 새끼들은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얼마나 웃긴 광경이었겠습니까??? ^^*



정말 재미난 학자지요?

유명한 동물학자 데스몬드 모리스의 책 <나의 유쾌한 동물 이야기>에도 보면 콘라드 로렌츠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존경할만한 동물학자 한 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ㅠ,ㅜ;;;



책에 나온 콘라드 로렌츠의 주옥 같은 글입니다.



* 나는 인간의 성질을 동물 속에 투사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우리 인간 속에 얼마나 많은 동물적 요소가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 솔로몬은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 했다고 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솔로몬처럼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잘 아는 몇몇 동물과는 나도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솔로몬보다 못하지만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낫다.



* 살아 있는 존재는 마술이나 요술 없이도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즉 진실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 인간이 동물과 살려는 욕망은 문화를 갖게 된 인간이 잃어버린 낙원인 대자연을 동경하는 것이다. 동물은 자연의 일부이니까.



* 아파트에서 개와 사는 걸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얼마나 함께 있어주느냐, 얼마나 자주 산책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개에게 있어 인간과의 우정은 삶의 모든 것이다.



* 충성스런 개와의 우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개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과 같다.



* 개가 인간을 위해 갖는 가치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다.

우리는 개가 필요하다.

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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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루우라라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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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지방, 가장 하급의 경마가 열리는 고우치에서 뛰기만 하면 지는 경주마가 있다.

하루우라라!

이름은 ‘화창한 봄날’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데 왜 하루우라라는 1등을 한번도 하지 못하는 걸까?

마침내 100전 100패를 기록하는 경주마 하루우라라의 이야기가 바로 <달려라! 하루우라라>이다.



돈 내고 돈 따는 스포츠에 도통 동화하지 못해 태어나 경마장 구경 한 번을 못했지만,

사람과 교감하는 것이 특별하다는 사회적인 동물인 말에 대한 애정으로 언젠가 승마를 꼭 해보리라 마음먹고 사는 나,

그런 나에게 하루우라라의 삶은 또 다른 세계였다.



책에는 2004년 100전100패를 할 때까지의 이야기밖에 없지만

자료를 찾아 보니 하루우라라는 작년에 은퇴를 했고 113전113패라는 공식 기록을 가졌다.

그런데 경마라는 게 이상하다.

‘꼴찌마 하루우라라!’라고 하길래 온통 꼴찌만 한 줄 알았더니

경마는 1등을 하지 않는 한 모두 패자란다.

그러니까 하루우라라는 2등을 4번이나 했는데도 그것도 역시 패자가 되는 것이다.

경마라는 게 몰아주기구나. 그 세계엔 2등은 없는가 보다.

그런데 그런 1등 지상주의 같은 경마에서 100패가 넘는데도 달리는 말이 있다는 게 또 신기했다.



하루우라라를 돌보는 조련사, 관리사 등은 모두 같은 말을 한다.

“이기는 것만이 꼭 좋은 경기라고는 할 수 없다.

하루우라라는 정말이지 열심히 달린다. 성실한 말이다. 그거면 된 거다.”

경기가 시작되면 이기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는 말,

그들의 말대로 그거면 된 거다.















































그런 하루우라라를 보며 사람들은 희망을 가졌다.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사람, 살면서 평생 실패만 한 사람…..

그런 그들이 100엔짜리 하루우라라의 마권을 사는 이야기.

특별한 말과 그런 말의 존재를 알아보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글을 전문 작가가 취재를 해서 쓰다 보니 현장감은 있지만 잔잔한 감동이 없다.

스포츠 신문 기사를 읽는 느낌.

그게 참 아쉽다.

하루우라라의 아름다운 삶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다니.

그리고 하루우라라 은퇴 뒷얘기가 없어서 아쉽다.



우리나라에도 하루우라라와 같은 경주마가 있다고 들었다.

동진강이라고.

45전45패를 기록한 말.

언젠가 한번 가서 꼭 응원해 주리라 작년부터 마음 먹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올 봄 은퇴를 했단다.(이놈의 죽일놈의 게으름…..)



하루우라라나 동진강이나 경주마들의 은퇴는 곧 폐사, 폐사는 안락사나 육욕으로 쓰이는 거라고 한다.

성적이 형편없으니 씨수말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승마용으로 가는 길도 있다고는 하던데……

과연 두 녀석은 어찌 되었을까?

하루우라라는 동물로는 최초로 그 도시의 관광공로상까지 받았으니 험한 꼴이야 당하지 않았겠지만 동진강은 인간에 의한 억울한 죽음을 피해갈 수 있었을까?



살아 생전 인간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동물들에게는

은퇴 후에도 삶을 보장해주는 게 그들에 대한 예의 아닐까?

호사스런 생활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명은 연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이 두 녀석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않았던가?



까짓 거, 지는 것쯤 별 거 아니라고,

산다는 건 순간순간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거라고!!!

지는 것에 지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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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 2018-04-10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우라라는 다행히 시골목장에서 팬클럽의 방문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고 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