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단어로 읽는 중세 이야기 - 어원에 담긴 매혹적인 역사를 읽다
김동섭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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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학원에서 알바를 한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학생들의 단어 시험을 봐주는 것이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고등학생들이 보는 영어 단어장 중에는 어원을 기준으로 단어를 나누어 단어의 뜻을 쉽게 파악하고 암기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있다. 오늘날 영어는 명실상부한 세계공용어lingua franca이고, 한국에서 영어는 곧 권력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어와 영어는 도무지 공통점을 찾을 수 없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언어이기에 학습의 과정이 지난해지기 쉽다는 점이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자료 중에는 미국 외교부에서 선정한 언어 중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로 한국어와 일본어가 꼽혔다고 한다. 미국인 기준으로, 영어와 가장 거리가 먼 언어가 한국어와 일본어이고, 그래서 미국인들에겐 두 언어가 그만큼 학습 난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어 학습에는 절대적인 난이도보다는 모국어와의 유사성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기에 한국인이 한국어와는 글자도, 문법 체계도 모국어와는 너무도 상이한 영어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공부에도 왕도가 있는 법 아닌가.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한자를 알고 있으면 모르는 단어의 뜻을 수월하게 유추할 수 있다. 한국어 어휘의 상당수는 한자어이고, 한자를 알면 동음이의어도 맥락별 용법을 쉬이 알기 때문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의 문법과 발음에 온갖 예외가 많은 것은 그만큼 영어에 많은 언어들이 뒤섞여 일관성을 잃은 탓인데, 복잡한 영어의 역사에도 중심이 되는 변곡점은 존재한다. 『100단어로 읽는 중세이야기』에 따르면 영어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프랑스어이고, 프랑스어의 영어로의 유입은 중세에 두드러졌다.


  역사학에서 시대 구분의 기준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중세의 시작은 476년의 서로마 제국의 멸망, 중세의 끝은 1453년의 동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구 문명의 근간이었던 로마 제국의 명맥이 불완전하게나마 지속됐던 시기가 바로 중세인 것이다. 하지만 1453년에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 이외에도 역사적 사건이 하나 더 있었는데, 당시 서유럽의 최강국이었던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서 1337년부터 이어졌던 백년전쟁이 종식되었던 것도 같은 해에 일어난 대사건이었다. 워낙 중요한 사건이라 책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한 내용인데 1066년 프랑스 국왕의 신하였던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정복하여 윌리엄 1세로 즉위하였다. 즉 잉글랜드 왕은 공교롭게도 프랑스 왕의 신하가 된 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 헨리 2세가 프랑스 재정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했던 아키텐 지방의 상속녀 엘레오노르와 결혼을 하면서 이 지역의 통치권을 가져가 프랑스로서는 더이상 좌시할 수 없었다. 명목상 신하였던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에서 프랑스 왕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이러니로 인해 116년동안 전쟁이 이어졌다.


  두 로마 제국의 멸망 사이엔 십자군전쟁과 백년전쟁같은 굵직한 전쟁도 있었지만 중세하면 역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종교, 즉 기독교다. 중세의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를 넘어 생활 전반과 사람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친 개념이었다.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성경Bible은 고대 이집트 신화의 오시리스와 이시스로부터 출발하여 페니키아의 비블로스Biblos 왕국, 고대 그리스에서 파피루스를 통칭하던 단어 biblos의 뜻이 확대되어 결국 책 중의 책인 '성경'이 되었다. 책은 100개의 단어를 세분화하여 '중세의 일상', '의식주', '사람들', '이름', '경제', '직업', '사랑과 명예', '종교', '오락', '왕과 전쟁'이란 주제별로 묶었다. 원래 전쟁사에 관심이 많던 내게 왕과 전쟁, 사랑과 명예에서 나온 기사도와 관련된 설명이 가장 잘 읽혔다. 또한 윌리엄William, 에드워드Edward, 헨리/앙리Henry, 샤를/찰스Charles, 루이Louis, Otto로 대표되는 중세 왕들의 이름으로 통사를 설명한 것이 역사를 공부하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비슷한 이름들이 반복되는 유럽사에서 헷갈리는 대목인데 이 부분의 요점을 정리해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q-나 ch-로 시작하는 영단어들은 프랑스어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고 이 흔적이 일상어 곳곳에 남아있다는 대목이 흥미로웠다. 내가 따로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없지만 프랑스어를 조금이라도 배운 적이 있다면 아마 이 부분의 설명이 가장 재밌게 다가왔을 것이다. 윌리엄 공의 잉글랜드 정복 이후 영국의 상류층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오늘날 영어의 고급 어휘들은 프랑스어에 기반을 두고 있고, 이 뜻이 확대되어 평민들이 사용하던 일상어를 조금씩 대체했다. 원래 켈트족이 살고 있던 잉글랜드를 로마, 앵글로색슨, 바이킹, 노르만족이 차지하면서 게르만어군의 한 갈래였던 영어는 이웃 언어들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불규칙한 언어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지금껏 유럽 언어 중 독일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를 배웠지만 영어만큼 체계성과 규칙성에서 거리가 먼 언어를 마주한 적은 없다. 비록 이 대목이 영어 학습의 가장 큰 난관이지만 영어 속에 숨어있는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루한 문법과 일관적이지 못한 발음을 학습하는 것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도 영어 속에 살아 숨쉬는 프랑스어의 영향을 알게됐으니 내가 다음에 배워볼 외국어는 역시 프랑스어가 최우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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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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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이론을 공부하면 마주하는 설명이 내재적 관점과 외재적 관점이다. 내재적 관점은 작품의 구조, 운율, 형식과 같은 작품 자체에 주목하는 반면 외재적 관점은 작가, 현실, 독자 등의 요소를 함께 고려하여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실 작가-작품-독자-현실을 칼같이 구분하는 건 힘든 일이라 문학에 대한 내재적/외재적 관점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 아니라 어느 것에 주안점을 둬야하는지 입장 차이를 정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곽재식 작가가 서문에서 밝힌 말을 곱씹어본다면 그동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관점의 폭을 스스로 제한한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말처럼 학문을 문과와 이과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학문이 더욱 심화되고 학제 간의 연구도 활발한 오늘날의 기준에서 기계적으로 문이과를 양분하는 것은 학문 그 자체는 물론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사고를 심어주기 쉽다. 당장 이 책의 저자인 곽재식 선생님은 공학 박사 출신이다. 글을 쓰기에 비교적 유리하거나 수월한 전공은 있지만, 공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글이 난해하다거나, 아니면 너무 계산적이거나 치밀하다는 생각은 큰 편견이다. 사람의 얼굴이나 성격만큼 다양하게 나타나는 게 글을 쓰는 방식인데 성별이나 전공 같은 아주 사소한 단서로 그 사람의 글을 지레짐작하는 건 우리의 사고와 이해를 오히려 가둬놓는 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곽재식 작가의 작품을 검색해보면 빠른 집필 속도와 다양한 장르에 놀랄 수 밖에 없는데 이 책은 저자의 폭넓은 관심사과 지식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흔히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도 하는데, 시대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같은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시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과학과 기술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부터 이어지는 문학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13개의 문학 작품과 그와 연관된 과학 이론과 발명품은 저자의 흥미가 가장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 한다. 책을 순서대로 읽으면 짧은 문학사를 읽는 기분이다. 1장 <길가메시 서사시>와 기후변화에서는 자연 환경의 변화가 인간의 원초적 서사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단서를 제공해준다. 2장 <일리아스>와 금속학, 3장 <변신 이야기>와 콘크리트, 4장 <천일야화>와 알고리즘은 고대와 중세인의 수준이 오늘날과 비교해봐도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의 통찰력이 가장 빛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5장 <수호전>과 시계, 6장 <망처숙부인김씨행장>과 화약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학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중국과 한국의 비교적 낯선 고전을 인용해 각각 송나라와 임진왜란을 독해하는 방식은 새로웠고, 저자의 상식이 얼마나 폭넓은지 신기했다.


  여러 종류의 책을 썼지만 곽재식 작가는 SF를 중심으로 글을 쓰시는 분이다. 7장 <걸리버 여행기>와 항해술, 8장 <80일간의 세계일주>와 증기기관에서는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의 결과로 인한 시대 변화가 오늘날 SF의 근간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9장 <오 헨리 단편집>과 전봇대, 10장 <무기여 잘 있거라>와 질소 고정, 11장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자동차는 20세기 초중반의 사회상을 위 작품을 통해 색다른 관점으로 제시한다. 12장 <픽션들>과 냉장고, 13장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와 화성 탐사선에서는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이 점차 오늘날의 현실로 변하고 있는 상황을 얘기하며 상상과 현실 사이의 매개체로서 SF의 역할을 역설한다. 비록 이 책이 본격적으로 SF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문학과 과학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으면서 저자의 말처럼 SF의 역할과 기능이 무엇인지 나 역시 계속 곱씹어보게 되었다. 그것도 자연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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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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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감각이란 건 사실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낯선 대상과 환경에는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카롭게 집중을 하다가도 그것이 반복되면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적응하는 과정이 체화되고, 효율성은 곧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느낌에 가려진다. 해외여행을 가면 아주 사소한 차이에도 쉽게 반응을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나라, 도시, 마을의 특이점은 쉬이 찾지 못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일어나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가장 큰 발명품인 도시는 일종의 유기체다.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는 온갖 생명 활동은 분명 실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시를 이루는 수많은 구성 요소도 어지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도시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상이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통찰은 어느 한 지점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1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환경의 차이가 인간의 다른 행동을 끌어낸다는 것이 결론이다. 왜 어떤 차만 정지선을 지킬까. 정지선을 준수하는 운전자들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을 떠나서 정지선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된 결과이다. 이 환경의 차이는 신호동의 위치에 기인한다. 프랑스의 신호등은 정지선 앞에서 멈추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반면 한국에서는 정지선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다음 신호를 보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회에서 고성이 오가는 까닭은 마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위계질서가 내부 구조에 그대로 반영된 탓이다. 서로 마주 앉는 영국의 의사당 구조와 대비된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간의 구획을 더 뚜렷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을과 묘지는 각각 삶과 죽음을 나타내기에 엄밀하게 나눠진 곳이고, 서로의 공간을 구분하려는 문화는 한옥 안의 여러 건물과 현대에는 특유의 ‘방 문화’로 이어졌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광장과 무덤에 관한 장이었다. 주로 2부 “보이지 않는 도시”에 서술되는 내용인데 1부의 내용을 더욱 확장시킨 느낌이다. 한국에는 왜 유럽처럼 광장이 없냐는 건의가 빗발치자 우리나라에도 광화문 같은 공간이 서구식 광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이 먼저 형성되고 나머지 공간에 건물이 들어선 서구식 도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건물이 먼저 생기고 길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점을 이어주는 선과 같은 느낌으로 발달했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길은 일종의 사적 공간의 연장선으로 작용했고 따라서 공적 공간인 광장이 들어설 필요성이 떨어진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희미한 한국과 엄격한 유럽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길의 다른 성격이 선명해진다.

  무덤의 경우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게 한국의 문화지만 유럽에서는 묘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머물 때 도시마다 있는 공원묘지waldfriedhof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게 신기했는데, 이들에게는 공원과 묘지가 별개의 공간이 아닌거다. 삶과 죽음은 구분된다고 해도 공간을 굳이 엄격히 나눌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머무는 곳이니 말이다.

  비교를 하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그러나 그 차이를 너무 선명하게 드러내다 보면 자칫 자국에 대한 폄하와 한탄, 멸시, 타국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과 추종으로 빠지기 쉽다. 저자도 이런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단순한 비교에서 끝을 낸다. 특별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아도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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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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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본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 After Yang>은 고도로 발달한 테크노 사피엔스, 즉 인간과 차이가 없는 안드로이드형 로봇이 대중화된 근미래를 작중 배경으로 한다. 입양된 중국계 딸인 미카가 백인 아버지 제이크와 흑인 어머니 카이라의 슬하에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은 아주 세심한 마음으로 선택된 안드로이드 '세컨드 시블링스(second siblings)'다. 미카와 양은 같은 중국계 문화와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친남매처럼, 때로는 인간과 로봇 비서처럼 지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남겨진 가족은 양의 메모리 칩을 살펴본다. 그 속에는 리퍼된 로봇인 양이 가족들과 만나기 전의 기억부터 주인공 가족들과 지냈던 추억까지, 그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SF의 단골소재인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이 처음 논의되고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극히 짧지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즉 인간을 구성하는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로봇이라도 결국 인간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인공지능과 기체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해내야 하는 셈인데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가시적인 하드웨어에 비해 이를 통제하는 소프트웨어를 무어라 정의하고 개발하기란 훨씬 힘든 일이다. 인간에 최대한 가까운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이 필수적인데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쉽지 않은 책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간은 '동물기계'같은 존재이기에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가장 급속도로 변화했던 근대 시대, 이를 뒷받침했던 근대성의 원리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주체성, 자율성, 합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동물이긴 하지만 여타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토록 고상하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의식은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건 우리 생각만큼 객관적이지 않으며, 지금도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생명 활동을 총괄하는 처리 과정인 것이다. 요컨대 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의식의 문제는 심리학, 생물학, 의학, 화학, 공학 등 온갖 학문이 융합된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로 인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학부 새내기 때 들었던 교양과목인 심리학개론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까지의 내 지식으론 심리학은 곧 프로이트의 학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00년동안 심리학은 무척이나 빠르게 변하여 이제 심리학에는 수많은 제반분야가 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신경과학은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생물학에 훨씬 더 가까운 학문이 되었다. 신경과학의 핵심 탐구과제는 이 책의 주제인 '의식'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의 메커니즘은 곧 '본다'라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본다는 능동적인 행위는 사실 빛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반사되는 빛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시각 외에 온갖 감각을 통해 우리가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대상은 우리의 의식이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허구에 가깝다는 게 책의 요지다. 의식을 더욱 과학적,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우리 의식은 생각만큼 그리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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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때문에 - 인터넷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
그레천 매컬러 지음,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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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마 초등학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꼭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나머지 온갖 합성어, 신조어가 생기는 것은 물론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의미를 좀처럼 알 수 없는 각종 줄임말이 우리말 문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선생님이 주시는 받아쓰기 카드를 보면서 정확한 단어와 띄어쓰기, 구두점 사용을 열심히 익히는 데에 집중했는데 몇 년 후엔 그때 배웠던 것과 정반대되는 문법에 매일 노출되면서 실생활에서도 곧잘 활용하니 기성 세대 입장으로서는 우려할만 할 거다. 


  인터넷에 쓰인 글과 댓글을 아주 조금만 읽어봐도 정형화된 한국어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ㅋㅋ, ㅎㅎ 같은 웃음표현은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지경이고, ㅇㅋ, ㅇㄷ?, ㅗ 같은 표현으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아주 간단히 전달한다. 원래 !와 ?는 하나만 쓰는 게 규칙이지만 사람이 그래도 정이 있지, 매정하게 하나만 쓸 수가 있나. 티슈 한 장 달라는 말을 들으면 꼭 두 장을 빼서 주는 것처럼 하나뿐인 느낌표와 물음표는 뭔가 어색하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야민정음, 그러니까 야갤에서 쓰기 시작한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 '숲장훈(김장훈)' 같은 표현은 모양이 유사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대치하는 창의적인 시도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을 거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 표현은 무수하며, 이제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으나 10년 전쯤부터 보급된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히 인터넷의 영향력 또한 더욱 커졌다. 이대로면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의 우려대로 인터넷이 문법을 다 부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런 지적은 인터넷의 부정적 면모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 언어라는 건 생물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다. 다만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워낙 상용화, 보편화됐기에 그 속도가 예전보다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애초에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에도 우리는 문어가 아닌 구어에서는 문법을 엄청 까다롭게 지키지는 않았던가. 우리는 문어와 구어,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상황에 맞춰 적절히 사용한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공존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쓰는 언어의 양상은 하나가 아니라 그만큼 다채로운 셈이다.


  월드와이드웹(WWW)로 대표되는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성별도, 연령도, 인종도, 언어도, 취미도 다른 사람들이 그럼에도 어우러져 같은 공간을 누리려면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모티콘/이모지가 이런 역할을 한다. 내 경우 트위치(twitch)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롤 경기를 자주 보는데, 영어 중계를 해주는 글로벌 채널의 시청자의 국적은 다양하다. 도저히 눈 뜨고 못봐줄 플레이가 나오면 댓글창은 LULW, KEKW를 뜻하는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된다. 평소에 쓰는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하나인 거다.


  언어학 연구자의 시점에서는 저자의 고백처럼 인터넷이 정말 유용한 도구임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표본을 큰 수고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가 있고, 기록이 계속 남아있다. 워낙 유행에 민감하니 변화도 빨라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도 기존의 언어학의 연구 대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쯤되면 인터넷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한 쪽 면만 보기에는 인터넷은 너무 크고 넓은 존재이며 몸담은 사람도 너무 많다. 어찌됐든 인터넷은 우리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가 된지 오래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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