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때문에 - 인터넷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
그레천 매컬러 지음,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졸업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마 초등학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꼭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나머지 온갖 합성어, 신조어가 생기는 것은 물론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의미를 좀처럼 알 수 없는 각종 줄임말이 우리말 문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선생님이 주시는 받아쓰기 카드를 보면서 정확한 단어와 띄어쓰기, 구두점 사용을 열심히 익히는 데에 집중했는데 몇 년 후엔 그때 배웠던 것과 정반대되는 문법에 매일 노출되면서 실생활에서도 곧잘 활용하니 기성 세대 입장으로서는 우려할만 할 거다. 


  인터넷에 쓰인 글과 댓글을 아주 조금만 읽어봐도 정형화된 한국어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ㅋㅋ, ㅎㅎ 같은 웃음표현은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지경이고, ㅇㅋ, ㅇㄷ?, ㅗ 같은 표현으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아주 간단히 전달한다. 원래 !와 ?는 하나만 쓰는 게 규칙이지만 사람이 그래도 정이 있지, 매정하게 하나만 쓸 수가 있나. 티슈 한 장 달라는 말을 들으면 꼭 두 장을 빼서 주는 것처럼 하나뿐인 느낌표와 물음표는 뭔가 어색하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야민정음, 그러니까 야갤에서 쓰기 시작한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 '숲장훈(김장훈)' 같은 표현은 모양이 유사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대치하는 창의적인 시도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을 거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 표현은 무수하며, 이제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으나 10년 전쯤부터 보급된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히 인터넷의 영향력 또한 더욱 커졌다. 이대로면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의 우려대로 인터넷이 문법을 다 부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런 지적은 인터넷의 부정적 면모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 언어라는 건 생물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다. 다만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워낙 상용화, 보편화됐기에 그 속도가 예전보다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애초에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에도 우리는 문어가 아닌 구어에서는 문법을 엄청 까다롭게 지키지는 않았던가. 우리는 문어와 구어,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상황에 맞춰 적절히 사용한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공존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쓰는 언어의 양상은 하나가 아니라 그만큼 다채로운 셈이다.


  월드와이드웹(WWW)로 대표되는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성별도, 연령도, 인종도, 언어도, 취미도 다른 사람들이 그럼에도 어우러져 같은 공간을 누리려면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모티콘/이모지가 이런 역할을 한다. 내 경우 트위치(twitch)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롤 경기를 자주 보는데, 영어 중계를 해주는 글로벌 채널의 시청자의 국적은 다양하다. 도저히 눈 뜨고 못봐줄 플레이가 나오면 댓글창은 LULW, KEKW를 뜻하는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된다. 평소에 쓰는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하나인 거다.


  언어학 연구자의 시점에서는 저자의 고백처럼 인터넷이 정말 유용한 도구임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표본을 큰 수고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가 있고, 기록이 계속 남아있다. 워낙 유행에 민감하니 변화도 빨라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도 기존의 언어학의 연구 대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쯤되면 인터넷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한 쪽 면만 보기에는 인터넷은 너무 크고 넓은 존재이며 몸담은 사람도 너무 많다. 어찌됐든 인터넷은 우리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가 된지 오래된 것이니 말이다.


*. 어크로스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