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
임우진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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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감각이란 건 사실 그다지 미덥지 못하다. 낯선 대상과 환경에는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고 날카롭게 집중을 하다가도 그것이 반복되면 감각은 점점 무뎌진다. 적응하는 과정이 체화되고, 효율성은 곧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느낌에 가려진다. 해외여행을 가면 아주 사소한 차이에도 쉽게 반응을 하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나라, 도시, 마을의 특이점은 쉬이 찾지 못한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일어나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가장 큰 발명품인 도시는 일종의 유기체다.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는 온갖 생명 활동은 분명 실재하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시를 이루는 수많은 구성 요소도 어지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도시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국과 프랑스라는 상이한 공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통찰은 어느 한 지점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그동안 우리가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려준다.

  1부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환경의 차이가 인간의 다른 행동을 끌어낸다는 것이 결론이다. 왜 어떤 차만 정지선을 지킬까. 정지선을 준수하는 운전자들은 단순히 개인의 양심을 떠나서 정지선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된 결과이다. 이 환경의 차이는 신호동의 위치에 기인한다. 프랑스의 신호등은 정지선 앞에서 멈추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에 위치한 반면 한국에서는 정지선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다음 신호를 보는 데에 큰 문제가 없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회에서 고성이 오가는 까닭은 마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위계질서가 내부 구조에 그대로 반영된 탓이다. 서로 마주 앉는 영국의 의사당 구조와 대비된다.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간의 구획을 더 뚜렷이 하려는 경향이 있다. 마을과 묘지는 각각 삶과 죽음을 나타내기에 엄밀하게 나눠진 곳이고, 서로의 공간을 구분하려는 문화는 한옥 안의 여러 건물과 현대에는 특유의 ‘방 문화’로 이어졌다.

  내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광장과 무덤에 관한 장이었다. 주로 2부 “보이지 않는 도시”에 서술되는 내용인데 1부의 내용을 더욱 확장시킨 느낌이다. 한국에는 왜 유럽처럼 광장이 없냐는 건의가 빗발치자 우리나라에도 광화문 같은 공간이 서구식 광장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길이 먼저 형성되고 나머지 공간에 건물이 들어선 서구식 도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건물이 먼저 생기고 길은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점을 이어주는 선과 같은 느낌으로 발달했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길은 일종의 사적 공간의 연장선으로 작용했고 따라서 공적 공간인 광장이 들어설 필요성이 떨어진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상대적으로 희미한 한국과 엄격한 유럽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길의 다른 성격이 선명해진다.

  무덤의 경우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게 한국의 문화지만 유럽에서는 묘지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독일에 교환학생으로 머물 때 도시마다 있는 공원묘지waldfriedhof에서 사람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게 신기했는데, 이들에게는 공원과 묘지가 별개의 공간이 아닌거다. 삶과 죽음은 구분된다고 해도 공간을 굳이 엄격히 나눌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머무는 곳이니 말이다.

  비교를 하면 차이가 선명해진다. 그러나 그 차이를 너무 선명하게 드러내다 보면 자칫 자국에 대한 폄하와 한탄, 멸시, 타국에 대한 맹목적인 선망과 추종으로 빠지기 쉽다. 저자도 이런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단순한 비교에서 끝을 낸다. 특별한 해결책을 보여주지 않아도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충분히 던져준다.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그럼으로써 더 많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 을유문화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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