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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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본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 After Yang>은 고도로 발달한 테크노 사피엔스, 즉 인간과 차이가 없는 안드로이드형 로봇이 대중화된 근미래를 작중 배경으로 한다. 입양된 중국계 딸인 미카가 백인 아버지 제이크와 흑인 어머니 카이라의 슬하에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은 아주 세심한 마음으로 선택된 안드로이드 '세컨드 시블링스(second siblings)'다. 미카와 양은 같은 중국계 문화와 기억, 그리고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때로는 친남매처럼, 때로는 인간과 로봇 비서처럼 지내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갑자기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 남겨진 가족은 양의 메모리 칩을 살펴본다. 그 속에는 리퍼된 로봇인 양이 가족들과 만나기 전의 기억부터 주인공 가족들과 지냈던 추억까지, 그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SF의 단골소재인 인간의 마음을 가진 로봇이 처음 논의되고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극히 짧지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즉 인간을 구성하는 '자아'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마주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로봇이라도 결국 인간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인공지능과 기체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핵심이다. 다시 말하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구현해내야 하는 셈인데 상대적으로 명확하고 가시적인 하드웨어에 비해 이를 통제하는 소프트웨어를 무어라 정의하고 개발하기란 훨씬 힘든 일이다. 인간에 최대한 가까운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 그 자체에 대한 통찰이 필수적인데 아닐 세스의 『내가 된다는 것』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쉽지 않은 책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인간은 '동물기계'같은 존재이기에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류 문명이 가장 급속도로 변화했던 근대 시대, 이를 뒷받침했던 근대성의 원리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주체성, 자율성, 합리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동물이긴 하지만 여타 동물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러나 최근의 신경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토록 고상하다고 여겨졌던 인간의 의식은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의식이라는 건 우리 생각만큼 객관적이지 않으며, 지금도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생명 활동을 총괄하는 처리 과정인 것이다. 요컨대 철학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의식의 문제는 심리학, 생물학, 의학, 화학, 공학 등 온갖 학문이 융합된 신경과학의 최신 연구 성과로 인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   


  학부 새내기 때 들었던 교양과목인 심리학개론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까지의 내 지식으론 심리학은 곧 프로이트의 학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100년동안 심리학은 무척이나 빠르게 변하여 이제 심리학에는 수많은 제반분야가 있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신경과학은 프로이트의 이론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생물학에 훨씬 더 가까운 학문이 되었다. 신경과학의 핵심 탐구과제는 이 책의 주제인 '의식'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인간의 지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의 메커니즘은 곧 '본다'라는 행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본다는 능동적인 행위는 사실 빛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반사되는 빛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시각 외에 온갖 감각을 통해 우리가 총체적으로 인지하는 대상은 우리의 의식이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허구에 가깝다는 게 책의 요지다. 의식을 더욱 과학적, 객관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역설적으로 우리 의식은 생각만큼 그리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다는 걸 드러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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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때문에 - 인터넷은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바꿨을까?
그레천 매컬러 지음, 강동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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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지만 아마 초등학교,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꼭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나머지 온갖 합성어, 신조어가 생기는 것은 물론 처음 듣는 사람들은 의미를 좀처럼 알 수 없는 각종 줄임말이 우리말 문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선생님이 주시는 받아쓰기 카드를 보면서 정확한 단어와 띄어쓰기, 구두점 사용을 열심히 익히는 데에 집중했는데 몇 년 후엔 그때 배웠던 것과 정반대되는 문법에 매일 노출되면서 실생활에서도 곧잘 활용하니 기성 세대 입장으로서는 우려할만 할 거다. 


  인터넷에 쓰인 글과 댓글을 아주 조금만 읽어봐도 정형화된 한국어 문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ㅋㅋ, ㅎㅎ 같은 웃음표현은 없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지경이고, ㅇㅋ, ㅇㄷ?, ㅗ 같은 표현으로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아주 간단히 전달한다. 원래 !와 ?는 하나만 쓰는 게 규칙이지만 사람이 그래도 정이 있지, 매정하게 하나만 쓸 수가 있나. 티슈 한 장 달라는 말을 들으면 꼭 두 장을 빼서 주는 것처럼 하나뿐인 느낌표와 물음표는 뭔가 어색하다. 몇 년 전부터 유행한 야민정음, 그러니까 야갤에서 쓰기 시작한 '댕댕이(멍멍이)' '커엽다(귀엽다)' '숲장훈(김장훈)' 같은 표현은 모양이 유사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대치하는 창의적인 시도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을 거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 표현은 무수하며, 이제는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으나 10년 전쯤부터 보급된 스마트폰으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노출되는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히 인터넷의 영향력 또한 더욱 커졌다. 이대로면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글의 우려대로 인터넷이 문법을 다 부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그런 지적은 인터넷의 부정적 면모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한 것이다. 


  애초에 언어라는 건 생물과 같아서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법이다. 다만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워낙 상용화, 보편화됐기에 그 속도가 예전보다 더욱 빨라졌을 뿐이다. 애초에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에도 우리는 문어가 아닌 구어에서는 문법을 엄청 까다롭게 지키지는 않았던가. 우리는 문어와 구어, 격식체와 비격식체를 상황에 맞춰 적절히 사용한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페르소나가 공존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쓰는 언어의 양상은 하나가 아니라 그만큼 다채로운 셈이다.


  월드와이드웹(WWW)로 대표되는 인터넷에는 국경이 없다. 성별도, 연령도, 인종도, 언어도, 취미도 다른 사람들이 그럼에도 어우러져 같은 공간을 누리려면 최소한의 규칙이 필요하다. 이모티콘/이모지가 이런 역할을 한다. 내 경우 트위치(twitch)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롤 경기를 자주 보는데, 영어 중계를 해주는 글로벌 채널의 시청자의 국적은 다양하다. 도저히 눈 뜨고 못봐줄 플레이가 나오면 댓글창은 LULW, KEKW를 뜻하는 이모티콘으로 도배가 된다. 평소에 쓰는 언어가 달라도 마음은 하나인 거다.


  언어학 연구자의 시점에서는 저자의 고백처럼 인터넷이 정말 유용한 도구임이 틀림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대한 표본을 큰 수고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가 있고, 기록이 계속 남아있다. 워낙 유행에 민감하니 변화도 빨라 언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이 가능하다는 것도 기존의 언어학의 연구 대상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이쯤되면 인터넷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한 쪽 면만 보기에는 인터넷은 너무 크고 넓은 존재이며 몸담은 사람도 너무 많다. 어찌됐든 인터넷은 우리 삶과 분리할 수 없는 요소가 된지 오래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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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철도 - 근대화, 수탈, 저항이 깃든 철도 이야기
김지환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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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이 1905년과 1915년에 각각 발표한 특수, 일반 상대성 이론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된 개념임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앞선 19세기의 끝과 20세기의 시작 무렵, 한반도에서도 시공간의 개념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철도’ 덕분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다가 워낙에 산지가 많은 지형 덕분에 한반도의 육상 교통은 오랫동안 발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육로를 활용한 마차가 다니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었던 해상 교통 수단인 배는 내륙 지역을 이어주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달랐다. 내륙 깊숙한 지역을 이어줄 수 있었고 속도 또한 마차에 비해 획기적으로 빨랐다. 무엇보다도 정해진 시간에 출발과 도착을 하는 기차는 농경 사회의 희박한 시간 개념을 대체하고 ‘정시성’을 심어주었다.


  열차가 다른 교통 수단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철도라는 전용도로가 필요하단 것이다. 일반 도로에 비해서 철도 건설에는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더 크다. 하지만 일단 공사가 끝나고 나면 열차는 철도 위를 쉼없이 왕복하며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른다. 철도의 개통 덕분에 인간이 체감하는 단위는 근본부터 달라졌다. 걸어서 몇 주나 가야할 거리는 이제 하루도 채 걸리지 않게 되었고, 인력으로 도저히 감당치 못할 만큼의 물자도 철도를 따라 쉽게 이동이 가능해졌다. 경인선, 경부선, 호남선, 경의선,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한반도의 각 지역은 일일 생활권으로 거듭났다. 이른바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런 근대화가 꼭 긍정적인 변화만을 수반한 것은 아니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 일본은 수십 년간 조선을 병합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는데 철도 건설은 그 중 핵심 사업이었다. 조선의 물자를 더욱 용이하게 공출하여 일본에 경제를 종속시키고, 조선을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 부설된 철도는 일본의 협궤 철도가 아니라 대륙의 철도와 호환성을 맞추기 위해서 표준궤로 건설되었다. (표준궤에 비해 협궤는 철도 규격이 짧아 건설 비용이 적게 들고, 산지 지형에 쉽게 부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적 용량에 제약이 크고 소음 문제가 발생한다. 광궤는 협궤와 정반대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철도를 적극 건설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 당시 철도를 적극 활용하여 러시아에 비해 병력과 물자 보급에 우위를 점했다. 러시아가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연합군에 비해 산업화가 뒤쳐져 보급에서 밀렸다는 걸 고려해보면 러일전쟁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었다.

  이외에도 철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일화는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안중근의 의거 이전에 안양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목숨을 노렸던 원태우, 서울역에서 3•1운동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폭사시키고자 했던 강우규의 이야기는 생소했다. 새삼스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이 이렇게나 많았고 이분들의 노고를 계속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철도 공사 와중 미국산 재료의 수입으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외래종 꽃인 개망초의 이야기, 기차와 전철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에 완한 대목은 철도에 이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와닿았던 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시모노세키 열차, 시모노세키-부산 관부연락선, 부산-서울-신의주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던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의 일화다. “철마는 계속 달리고 싶다”는 표어는 아직도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건만 한반도는 분단된지 반세기를 진작 넘어 어느덧 한 세기를 향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각지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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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시대, 무엇이 가난인가 -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가난의 정의
루스 리스터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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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 속의 빈곤‘의 의미가 뭔지, 능력주의가 만연한 한국에서 가난이란 뭔지 궁금합니다! 수치상으로 우리는 과거보다 분명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정작 체감하는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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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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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스턴(Houston), 응답하라." '휴스턴'이란 지명은 우주비행사들이 나오는 영화에 꼭 등장하는 지명이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연구하는 곳이 바로 NASA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사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거다.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으며 꾸준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천체물리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거다.


  그런데 하킴 올루세이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례와 결이 많이 다르다. 현재 NASA의 과학임무국에서 근무하는 물리학자 중 유일한 흑인이다. 1965년 민권법 제정 이후 흑인들이 법적으로 받는 차별은 공식적으로 없어졌으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러 층위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며 바닥 같은 삶을 경험하고 있는 비율도 높다. 미국이란 나라의 공교육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작동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좀처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교육학에서 오랜 논쟁은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인데,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을 발현시킬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재능이란 본성은 미처 발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하킴 올루세이의 어릴 때 이름)의 어린 시절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별거 중인 부모를 따라 어느 한 곳에서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다. 제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온갖 잡일을 해야 했다. 비슷한 상황에 노출된 많은 어린이들처럼 하킴은 빈민가의 갱스터로 전락하기 충분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하킴은 주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엄마가 방문판매업자에게서 구매해준 백과사전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두꺼운 백과사전의 지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주제들 중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Einstein)과 뉴턴(Newton) 같은 물리학자들의 생애와 이론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돈을 세는 행동이나 퀴즈를 푸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동거하는 가족과 다니는 학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고등학생 시절 용돈벌이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몰래 마약을 팔았다. 선생님들의 꾸준한 격려를 받으며 스탠퍼드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지만 흑인인 그는 주위의 백인들에게서 크나큰 소외감을 느끼며 방황했다. 마약 중독자가 될 정도로 말이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수했는지를 강조하며, 그 후의 일은 동화책의 결말처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하킴은 그 후에도 자신이 얼마나 외줄타기 같은 인생을 보냈는지를 술회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같은 일들은 결국 인생이란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는 있어도 목표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건 결국 삶에서 죽음까지의 지난한 과정인데, 어떤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인생이 그 이후로 확실한 길을 보장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갱스터, 마약 중독자, 대마초를 판매하는 문제아, 가난과 폭력, 떠도는 삶, 흑인으로서 겪은 인종차별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부정적인 면, IQ 162, 영재, 스탠퍼드 대학 박사, NASA 소속 천체물리학자, 대학 교수, 연구원 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도 될 것이다. 양극단적인 삶의 단면은 그러나 반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그의 인생에서 함께 했다. 컴퓨터는 이진법을 써서 세상을 0과 1이라느 극단값의 조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은 이진법을 쓰지 않는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로 온갖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며, 심지어 0과 1 사이에는 저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은 희망이다"라는 그의 말을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삶을 극단적인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으로 보기보다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살피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죽는 순간까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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