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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라이프 - 빈민가의 갱스터에서 천체물리학자가 되기까지
하킴 올루세이.조슈아 호위츠 지음, 지웅배 옮김 / 까치 / 2022년 6월
평점 :
"휴스턴(Houston), 응답하라." '휴스턴'이란 지명은 우주비행사들이 나오는 영화에 꼭 등장하는 지명이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최첨단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광활한 우주의 비밀을 연구하는 곳이 바로 NASA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사에 들어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거다.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으며 꾸준히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천체물리학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닐거다.
그런데 하킴 올루세이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례와 결이 많이 다르다. 현재 NASA의 과학임무국에서 근무하는 물리학자 중 유일한 흑인이다. 1965년 민권법 제정 이후 흑인들이 법적으로 받는 차별은 공식적으로 없어졌으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흑인은 여러 층위의 차별에 노출되어 있으며 바닥 같은 삶을 경험하고 있는 비율도 높다. 미국이란 나라의 공교육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작동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교육은 좀처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교육학에서 오랜 논쟁은 본성(nature)과 양육(nurture)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것인데,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 재능을 발현시킬 환경이 받쳐주지 못한다면 재능이란 본성은 미처 발화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제임스 플러머 주니어(하킴 올루세이의 어릴 때 이름)의 어린 시절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별거 중인 부모를 따라 어느 한 곳에서도 정을 붙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다. 제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한 채 온갖 잡일을 해야 했다. 비슷한 상황에 노출된 많은 어린이들처럼 하킴은 빈민가의 갱스터로 전락하기 충분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하킴은 주변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은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엄마가 방문판매업자에게서 구매해준 백과사전을 아주 소중하게 여겼다. 두꺼운 백과사전의 지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많은 주제들 중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Einstein)과 뉴턴(Newton) 같은 물리학자들의 생애와 이론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돈을 세는 행동이나 퀴즈를 푸는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동거하는 가족과 다니는 학교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 속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고등학생 시절 용돈벌이를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몰래 마약을 팔았다. 선생님들의 꾸준한 격려를 받으며 스탠퍼드 대학원 물리학과에서 학업을 이어나갔지만 흑인인 그는 주위의 백인들에게서 크나큰 소외감을 느끼며 방황했다. 마약 중독자가 될 정도로 말이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은 스탠퍼드 같은 명문대에 입학하는 순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과 인내를 감수했는지를 강조하며, 그 후의 일은 동화책의 결말처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하킴은 그 후에도 자신이 얼마나 외줄타기 같은 인생을 보냈는지를 술회한다.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 같은 일들은 결국 인생이란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는 있어도 목표 그 자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건 결국 삶에서 죽음까지의 지난한 과정인데, 어떤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인생이 그 이후로 확실한 길을 보장해주진 못하기 때문이다.
갱스터, 마약 중독자, 대마초를 판매하는 문제아, 가난과 폭력, 떠도는 삶, 흑인으로서 겪은 인종차별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부정적인 면, IQ 162, 영재, 스탠퍼드 대학 박사, NASA 소속 천체물리학자, 대학 교수, 연구원 같은 측면은 하킴 인생에서 긍정적인 측면으로 봐도 될 것이다. 양극단적인 삶의 단면은 그러나 반으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고 언제나 그의 인생에서 함께 했다. 컴퓨터는 이진법을 써서 세상을 0과 1이라느 극단값의 조합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사람은 이진법을 쓰지 않는다. 0부터 9까지의 숫자로 온갖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며, 심지어 0과 1 사이에는 저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가능성이 있다. "내가 관측한 것 중에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은 희망이다"라는 그의 말을 어떻게 되새겨야 할까. 삶을 극단적인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으로 보기보다는 그 사이에 숨어있는 실낱 같은 가능성을 살피는 게 인생이 아닐까.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죽는 순간까지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는 않다.
*. 까치 출판사의 서평단 모집 이벤트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