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철도 - 근대화, 수탈, 저항이 깃든 철도 이야기
김지환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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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이 1905년과 1915년에 각각 발표한 특수, 일반 상대성 이론 덕분에 우리는 시간과 공간이 서로 연결된 개념임을 알게 되었다. 그보다 조금 앞선 19세기의 끝과 20세기의 시작 무렵, 한반도에서도 시공간의 개념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철도’ 덕분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에다가 워낙에 산지가 많은 지형 덕분에 한반도의 육상 교통은 오랫동안 발달하지 못했다. 때문에 육로를 활용한 마차가 다니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았고, 비교적 자유롭게 운행할 수 있었던 해상 교통 수단인 배는 내륙 지역을 이어주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기차는 달랐다. 내륙 깊숙한 지역을 이어줄 수 있었고 속도 또한 마차에 비해 획기적으로 빨랐다. 무엇보다도 정해진 시간에 출발과 도착을 하는 기차는 농경 사회의 희박한 시간 개념을 대체하고 ‘정시성’을 심어주었다.


  열차가 다른 교통 수단과 크게 구분되는 지점은 바로 철도라는 전용도로가 필요하단 것이다. 일반 도로에 비해서 철도 건설에는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이 더 크다. 하지만 일단 공사가 끝나고 나면 열차는 철도 위를 쉼없이 왕복하며 사람과 물자를 실어나른다. 철도의 개통 덕분에 인간이 체감하는 단위는 근본부터 달라졌다. 걸어서 몇 주나 가야할 거리는 이제 하루도 채 걸리지 않게 되었고, 인력으로 도저히 감당치 못할 만큼의 물자도 철도를 따라 쉽게 이동이 가능해졌다. 경인선, 경부선, 호남선, 경의선, 경원선이 개통되면서 한반도의 각 지역은 일일 생활권으로 거듭났다. 이른바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런 근대화가 꼭 긍정적인 변화만을 수반한 것은 아니었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 일본은 수십 년간 조선을 병합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는데 철도 건설은 그 중 핵심 사업이었다. 조선의 물자를 더욱 용이하게 공출하여 일본에 경제를 종속시키고, 조선을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삼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에 부설된 철도는 일본의 협궤 철도가 아니라 대륙의 철도와 호환성을 맞추기 위해서 표준궤로 건설되었다. (표준궤에 비해 협궤는 철도 규격이 짧아 건설 비용이 적게 들고, 산지 지형에 쉽게 부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선적 용량에 제약이 크고 소음 문제가 발생한다. 광궤는 협궤와 정반대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선에 철도를 적극 건설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 당시 철도를 적극 활용하여 러시아에 비해 병력과 물자 보급에 우위를 점했다. 러시아가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것도 연합군에 비해 산업화가 뒤쳐져 보급에서 밀렸다는 걸 고려해보면 러일전쟁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 셈이었다.

  이외에도 철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주는 게 이 책의 매력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일화는 더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안중근의 의거 이전에 안양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목숨을 노렸던 원태우, 서울역에서 3•1운동 이후 새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폭사시키고자 했던 강우규의 이야기는 생소했다. 새삼스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신 분이 이렇게나 많았고 이분들의 노고를 계속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철도 공사 와중 미국산 재료의 수입으로 우리나라에 건너온 외래종 꽃인 개망초의 이야기, 기차와 전철로 인한 각종 사건 사고에 완한 대목은 철도에 이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와닿았던 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도쿄-시모노세키 열차, 시모노세키-부산 관부연락선, 부산-서울-신의주를 지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던 손기정과 남승룡 선수의 일화다. “철마는 계속 달리고 싶다”는 표어는 아직도 공허한 메아리로 남았다.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건만 한반도는 분단된지 반세기를 진작 넘어 어느덧 한 세기를 향하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유라시아 각지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 책과함께 출판사의 서평단 활동으로 이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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