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역사책 재미난 이야기 역사책
정기문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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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부터 역사이고, 어디부터 신화인가? 어떤 개념을 정의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는 가장 큰 잣대는 기록이다. 과거 사람들이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어떤 인물과 사건이 실재했는지, 실재했다면 어떤 면모였을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아무 기록이나 신뢰하기는 힘들다. 그것이 진정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는 다른 기록들과의 교차 검증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역사는 정말 머나먼 과거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다. 그러다보니 어떤 역사적 인물들은 현대인에겐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예컨대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던지, 네로는 폭군이었다던지,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굴다고 주장했다던지, 로베스피에르가 과도한 공포정치를 실행하다가 살해당했다던지.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진다는 과학적 진리처럼, 앞서 열거한 역사적 사실들은 의문 부호가 붙을 필요가 없는 상식이 되었다.

모든 학문은 의문에서 출발하는 법인데 역사학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다면 앞선 예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곧 ‘진실’인지 의심해보고 확인해봐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정기문 교수의 이 책은 우리가 여태껏 상식으로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표하면서, 단편적으로 알려져 있던 역사적 진실에 접근한다.

종교에 별 관심도 없고 성경에도 무지한 나조차 알고 있던 사실이 바로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진실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모순점이 많다. 그래서 책의 첫 장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든 모순을 뒤로 하고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 까닭은 기독교가 지금의 위상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내세울만한 인물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다윗이었다. 다윗은 당대 인물들의 업적이 뒤섞이고 덧붙여져 실제보다 더 위대해진 인물이라는 게 결론이다.

네로와 로베스피에르를 다루는 장에서는 그동안의 부정적 프레임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네로는 정말 폭군이었나? 민생을 위한 정치를 펼친 네로는 자연스레 원로 귀족들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들을 추진핺다. 네로의 생전이건 사후이건 황제의 권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평민이 아닌 귀족이다. 네로의 실제 행적 이상으로 음해받기에 충분한 환경이 갖추어진 셈이다. 로베스피에르는 어떤가. 당통의 뒤를 이어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을 전 유럽에 전파하고 당시 혼란스러웠던 국내 정세를 안정시키는 게 그의 사명이었다. 모든 변화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한 법이건만 로베스피에르에게 지워진 족쇄는 너무 가혹했다.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프랑스 대혁명을 최고의 가치로 내건 오늘날의 프랑스에서도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나 건축물은 찾을 수 없을 정도다.

역사 속에 흔히 알려진 인물들에 대한 재평가로 끝낼 게 아니라, 나에게 정말로 와닿았던 대목은 소크라테스의 여스승 아스파시아와 동로마 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아내 테오도라에 관한 장이었다. 그동안의 역사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차가웠는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지만, 두 인물은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도 알려지지 않은 수준이다. 최대한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역사 분야를 가장 많이 읽는 나에게도 아스파시아와 테오도라는 완전히 낯선 인물이었다. 이들에 대한 기록이 완전히 전승이 끊긴 게 아님에도 왜 우리는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일까.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대영제국의 포문을 연 군주로 그동안 충분히 연구가 된 까닭에, 같은 여성이라고 해도 아스파시아와 테오도라에 비해 남다르게 다가왔다.

역사는 이야기다.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켜켜이 쌓인 이야기다. 그런데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볼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기록이기에 우리는 과거의 사건과 인물을 온전히 대할 수는 없다. 오로지 남은 기록에 바탕을 두어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학기에 <세계외교사>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한 학기 내내 ‘거문도 점령 사건’을 배웠다. 논문마다 달리 제시하는 거문도 사건의 발발 원인과 해결 과정에 대한 논거를 읽으며 내 스스로 사건을 재구성해야 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사건을 온전히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당시 상황을 촤대한 재구성할 수는 있지 않을까.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마주한다는 게 마치 퍼즐을 짜맞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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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와 문명등급 -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에서 본 근대 세계
리디아 류 외 지음, 차태근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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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는 법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닌데, 당장 UN 상임이사국의 막강한 권한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나라가 평등하고 자주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게 이상적이지만 실상은 그와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다. 정치학의 하위 분야 중 국가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을 국제관계학 혹은 국제정치학이라고 말한다. 강대국들이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에 막강하기에 국제관계학은 강대국의 정책을 주로 탐구하며, 지나치게 강대국 중심적이란 비판도 자주 받는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국가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평등하다.” 짐작하시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어떤 국가들’은 미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 같은 강대국들을 지칭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구 강대국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전세계적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서구 우위 현상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났는가? 이로부터 국가별, 문명별 등급이 어떻게 파생되었으며 이것이 계속 고착화되었는가? 이상의 의문에 답하고자 중국 각 분야의 학자들이 발표한 글을 묶은 것이 이 책 <세계질서와 문명등급>이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중국은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것도, 서구의 침탈 대상이 되었던 것도, 그리고 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졌던 것도 모두 청나라 대의 일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절대 청을 약소국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서구의 성장이 너무 빨랐던 것이 문제였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으로 지중해가 제한받자 유럽은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신항로를 개척하면서 당시 최강 대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세계를 양분했고, 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과 바티칸이 이를 보증해줬다. 그 후 과학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이 커졌다.

날이 갈수록 커졌던 격차는 결국 제국주의라는 극단적 이념으로 변모하여 지배국-식민지라는 종속적인 관계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식민 관계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종결되었으나 한때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에는 여전히 그때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다. 가장 큰 병폐는 식민 관계가 청산된 이후에도 자신을 온전히 자신의 눈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서구라는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기 평가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사이드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즘’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책은 서구의 기준이 곧 세계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면서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을 강조한다. 각국사는 한 나라의 역사에 천착하면서 나라별 상호작용이라는 큰 그림을 놓치기 쉽고, 세계사는 개별 국가에 내재된 특수성을 간과하면서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단일한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해 각국의 개별사와 세계사를 통합하여 전지구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히스토리다. 일견 너무나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인 것 같으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문제 의식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 코로나 국면을 거치며 반중 정서가 전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한국의 반중 정서는 한한령, 소분홍, 편파적인 올림픽 판정 등 갖가지 이유로 더욱 극심하다. 때문에 중국에 대한 시선과 보도도 비판적인 게 보통이다. 그러나 중국이 싫다고 해서 중국에서 나오는 모든 걸 비판적으로 판단할 순 없지 않는가. 적어도 책이 제시하는 주장과 탐구하는 역사적 맥락은 서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측면에서 충분히 동의할만한 것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은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국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적어도 이 책에 관해서는 메세지와 메신저를 혼동하는 오류를 보내서는 아니될 것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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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밤에 대하여 - 우리가 외면한 또하나의 문화사 교유서가 어제의책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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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R. 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신비하고 정체 모를 인물은 단연 빛의 신 를로르를 섬기는 멜리산드레라는 여성이다. 신도들에게 항상 “밤은 어둡고 공포로 가득하니(The night is dark and full of terrors)”라는 말을 전파하며빛의 신을 향한 투철한 신앙심을 강조하는 이 대사는 사실 ‘밤’에 대한 과거 사람들의 인식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



  인간은 여러 가지 감각 기관을 골고루 사용하지만 그중에서도 시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시각에 크게 의존하는 인간에게 빛이 부재하는 밤이라는 시간은 치명적이다. 빛을 빼앗거나 시각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익숙한 행동은 이내 낯설고 덜컥 겁이나게 된다. 그리하여 밤은 단순히 빛이 부재하는 시간대가 아니라, 사람들이 조심하고 또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변한다.



  잡지, 일기, 여행기, 문학 작품, 학술지 등 온갖 문헌을 섭렵하고 정리한 결과물인 이 책은 우리가 그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던 ‘밤’이라는 대상 그 자체를 다룬다. 책의 전반부인 1, 2부에서는 근대 유럽을 중심으로 밤에 어떤 범죄가 일어났으며, 국가와 국민은 밤에 어떻게 스스로를 통제했는지 온갖 사례들이 나와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밤에는 특히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 강력범죄가 일어나기 쉬웠다. 또한 전기가 없던 시대에는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해 불을 쓰는 게 필연적이었는데, 이는 화재로 이어지기 쉬우니 사고 방지를 위해서라도 불의 사용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를 구실로 다양한 제재가 이어졌다.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상은 책의 후반부로도 이어진다. 계급에 따라 서로 향유하던 밤의 모습도 두드러지게 달랐다. 해가 진 직후나 해 뜨기 전 가장 어두울 무렵 평민들은 낮과 다를 바 없이 노동을 해야 했으나 귀족들에겐 밤이야말로 진정한 유희가 시작되는 때였다. 베네치아의 명물인 가면 축제와 밤하늘을 수놓은 온갖 화려한 불꽃놀이가 좋은 예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지막 부분이라고 보는데 이 대목에서 당시 사람들의 수면 패턴과 수면 장애에 관한 설명이 뒤따른다. 밤에 잠을 끊어서 두세 번에 걸쳐 수면을 했다는 건 지금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지만 그 와중에 일어나는 수면 장애를 보면 사람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전기를 통해 온갖 인공조명이 등장한 이후 밤의 모습은 이전과는 너무나도 달라졌다. 도시의 야경을 이루는 불빛들을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 요즘의 밤은 낮보다 더 밝고 활기찬 듯하다. 그러나 불과 몇백 년전만 하더라도 밤은 낮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시간이었다. 낮과의 대조를 통한 게 아니라 ‘밤’을 그 자체로 보려는 책의 서술과 저자의 노력 덕분에 새삼스러운 걸 깨달았다. 우리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밤은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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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볼가강에서 몽골까지
피터 B. 골든 지음, 이주엽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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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배우는 역사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자국의 역사인 한국사, 서유럽과 미국 중심의 세계사 혹은 서양사, 그리고 중국과 일본 중심의 동양사다. 우리의 역사와 관련있는 나라와 지역을 중점적으로 배우다 보니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등지는 비중이 떨어지는 이른바 주변부 지역으로 전락한다. 앞서 언급한 지역들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한국이 속한 동아시아와 연관성이 떨어지기에 해당 지역의 역사가 낯선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한국과 그리 멀지 않은 중앙아시아는 어떤가? 중앙아시아는 지리적 인접성은 물론 한국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나라들이 활동했던 지역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내용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국사를 배울 때 돌궐, 여진, 거란과 같은 북방 민족들을 빼놓을 수는 없다. 한국의 국경선은 역사적으로 변동이 자주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압록강, 두만강을 기준으로 하는 자연 경계는 이들 유목 민족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되었다. 심지어 중국 역사에서 중원을 통일한 원과 청은 각각 몽골과 여진이라는 유목 민족을 기원으로 하는 국가다. 한국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친 원 간섭기, 원명 교체기, 명청 교체기, 조청 관계는 고려와 조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주무대였던 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마치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듯하다.


  볼가강에서 몽골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와 이곳에서 발생하고 소멸했던 수많은 국가들의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가장 즐겨 읽는 분야 역시 역사책이지만 중앙아시아에 관해서만 서술한 책을 접한 건 처음이었기에 새로 알게된 내용들이 정말 많았다. 중앙아시아하면 실크로드가 으레 생각나듯, 동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이어주던 가교 역할을 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다층적이다. 역사적으로 하나의 지역이나 민족을 이룬 적이 없었고, 씨족, 부족, 신분, 종교가 더 두드러졌다. 특히 불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동방 정교 등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양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지금은 거의 폐기됐지만 한국어의 언어적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알타이어족과 같은 거대한 언어 개념으로 묶을 수 있는 중앙아시아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됐고, 그만큼 발전했던 곳이다. 특히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오아시스 정주민들과 유목 민족들의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국가들이 출현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화약 무기가 이 넓은 초원 지대를 분할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결국 청과 러시아라는 거대 제국 사이의 영향력에 놓이는 처지가 된다. 이번 학기 세계외교사 수업을 들으면서 19세기말 동아시아에 집중하고 있기에 책의 후반부에 있는 근대 중앙아시아 문제들에 관한 서술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레이트 게임과 간도 협약 같은 다른 문제들로 관심사를 확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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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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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만큼 오래된 학문 분야도 없지만 정작 역사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E. H. 카의 주장에 입각하여 역사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한다면, 역사의 역할은 단순한 시간 구분이 아니라 재평가에 방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커다란 시계열과 그 속에 있는 무수한 사건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익숙한 역사는 통사, 즉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삶에 밀접한 연관을 미치는 요소에서 큰 변곡점을 일으켰던 사건을 위주로 이해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역사가 현재와 미래에 맞닿아 있다고 해도 결국 주로 다루는 것은 과거의 일이다. 한번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쉬이 잊힌 인물들의 이름과 행적은 무수하다. 역사를 이끌어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깊이, 다양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곧 조명받지 못하던 인물에 집중해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한욱 교수는 폭넓은 역사의 이면을 소개해주기 위해 10년 동안 꾸준히 칼럼을 기고했다. 한정된 지면에 제한된 분량의 글을 써야 하니 당연히 아무 이야기를 할 순 없는 노릇이고, 해당 칼럼이 실리는 일자에 맞추어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전달해주고 교훈을 전달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새삼 놀라운 점이 참 많다.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동안 꾸준히 글을 쓰셨을까 하는 점,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다른 분야에 비해 역사책을 더 많이 읽었지만 처음 들어보고 새로 알게된 점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점, 역시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자랑하는 식견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럼에도 본인 역시 자료 조사를 게을리할 수 없었다는 점을 담담하고 겸손하게 밝히신다는 점, 정해진 분량을 지키면서 내용 전달과 저자의 목적을 함께 전달한다는 점이다.


  책의 순서를 따라 시간순으로 인물, 사건, 주제를 새로 배우는 것도 좋지만 뒤에 실린 색인을 참고해 내가 관심이 가는 주제별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아무 페이지나 열어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 작년부터 일력을 매일 떼면서 인상 깊은 글귀를 필사하고 모아두는 걸 루틴으로 삼고 있는데 지금부터 <소소한 세계사>를 하루치 분량만큼 읽는 걸 루틴에 포함시켜 매일 꾸준히 접하는 텍스트를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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