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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와 문명등급 -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에서 본 근대 세계
리디아 류 외 지음, 차태근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평점 :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괴리가 있는 법이다.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닌데, 당장 UN 상임이사국의 막강한 권한만 봐도 알 수 있다. 모든 나라가 평등하고 자주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게 이상적이지만 실상은 그와 거리가 너무나 먼 것이다. 정치학의 하위 분야 중 국가 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을 국제관계학 혹은 국제정치학이라고 말한다. 강대국들이 전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워낙에 막강하기에 국제관계학은 강대국의 정책을 주로 탐구하며, 지나치게 강대국 중심적이란 비판도 자주 받는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국가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보다 ‘더’ 평등하다.” 짐작하시다시피 여기서 말하는 ‘어떤 국가들’은 미국이나 일부 유럽 국가 같은 강대국들을 지칭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를 막론하고 서구 강대국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전세계적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서구 우위 현상은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났는가? 이로부터 국가별, 문명별 등급이 어떻게 파생되었으며 이것이 계속 고착화되었는가? 이상의 의문에 답하고자 중국 각 분야의 학자들이 발표한 글을 묶은 것이 이 책 <세계질서와 문명등급>이다.
한때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중국은 서구 열강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것도, 서구의 침탈 대상이 되었던 것도, 그리고 혁명으로 왕조가 무너졌던 것도 모두 청나라 대의 일이란 게 아이러니하다. 절대 청을 약소국이라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서구의 성장이 너무 빨랐던 것이 문제였다. 오스만 제국의 팽창으로 지중해가 제한받자 유럽은 대서양으로 눈을 돌렸다. 신항로를 개척하면서 당시 최강 대국이었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세계를 양분했고, 유럽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과 바티칸이 이를 보증해줬다. 그 후 과학혁명,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유럽과 미국, 그리고 전세계 다른 나라들과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이 커졌다.
날이 갈수록 커졌던 격차는 결국 제국주의라는 극단적 이념으로 변모하여 지배국-식민지라는 종속적인 관계로 이어졌다. 공식적인 식민 관계는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부분 종결되었으나 한때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에는 여전히 그때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있다. 가장 큰 병폐는 식민 관계가 청산된 이후에도 자신을 온전히 자신의 눈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서구라는 타자화된 시선으로 자기 평가를 계속한다는 점이다. 사이드가 주장한 ‘오리엔탈리즘’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책은 서구의 기준이 곧 세계 기준이 되어버린 현실을 비판하면서 ‘글로벌 히스토리’의 시각을 강조한다. 각국사는 한 나라의 역사에 천착하면서 나라별 상호작용이라는 큰 그림을 놓치기 쉽고, 세계사는 개별 국가에 내재된 특수성을 간과하면서 지나치게 획일화되고 단일한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반해 각국의 개별사와 세계사를 통합하여 전지구적인 흐름을 강조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히스토리다. 일견 너무나 이상적이고 원론적인 주장인 것 같으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문제 의식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 코로나 국면을 거치며 반중 정서가 전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웃나라인 한국의 반중 정서는 한한령, 소분홍, 편파적인 올림픽 판정 등 갖가지 이유로 더욱 극심하다. 때문에 중국에 대한 시선과 보도도 비판적인 게 보통이다. 그러나 중국이 싫다고 해서 중국에서 나오는 모든 걸 비판적으로 판단할 순 없지 않는가. 적어도 책이 제시하는 주장과 탐구하는 역사적 맥락은 서구가 아닌 다른 나라의 측면에서 충분히 동의할만한 것이 많다. 그리고 이 책은 중국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국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적어도 이 책에 관해서는 메세지와 메신저를 혼동하는 오류를 보내서는 아니될 것이다.
*. 교유당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