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요결 - 율곡 선생의 인생 가르침
이율곡 지음, 이민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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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일신 우일신 일일신(句日新 日新 又日新). "실로 하루가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새롭게 하고 날로 새롭게 하라진실로 하루가 새로워지려면나날이 새롭게 하고 날로 새롭게 하라"는 뜻이다. 진실로 새로운 삶을 살려면이미 새로워진 것을 바탕으로 나날이 새롭게 하고조금도 중단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귀다.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율곡 이이 선생이 남긴 『격몽요결(訣)』을 읽고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구도장원공'이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그 어렵디 어려운 과거 시험에서 줄곧 급제를 했고, 높은 벼슬을 맡아 국정에 힘쓰는 한편, 조선에서 성리학을 더욱 무르익게 했다. 최고의 자리는 오르는 것보다도 지키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율곡 선생에게 대입해보면 그는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고 묵묵히 자기가 갈 길을 나아갔다. 쉬이 게을러지는 나는 그 비결이 궁금했다.


"입으로만 글을 읽을 뿐 자기 마음으로는 이를 본받지 않고, 또 몸으로 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있고 나는 나대로 있을 뿐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 p. 74"

비결이 다른 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지행합일. 곧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생에 좋은 것,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건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이를 말로만 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중요한 건 그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느냐다.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소견이 어둡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사람은 반드시 글을 읽고 이치를 궁리해서 자기 자신이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을 밝혀야 한다. 그런 뒤에야 조예(造詣)가 정당해지고 행동도 올발라진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이런 학문이 날마다 행동하는 데 있음을 알지 못하고 공연히 이것은 까마득히 높고 멀어서 보통 사람으로서는 행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학문을 자기는 하지 못하고 남에게 밀어 맡겨 버리고서 자신은 스스로 이것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 p.14"

학문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남에게서 배우고, 나를 되새겨보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학문을 넓은 의미로 보는 방법이다. '평생학습'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앞으로 내 인생을 멀리 보는 와중 내가 걸어왔던 길을 반성해야겠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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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목록 - 소멸을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들
유디트 샬란스키 지음, 박경희 옮김 / 뮤진트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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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가치를 다시 알아보는 안목과 세심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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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 로마의 가장 위대한 적수
필립 프리먼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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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Hannibal Barca, BC 247~BC 183?/181?)이란 이름은 전설로 남았다. 카르타고 출신인 불세출의 명장. 로마와 카르타고 간 운명을 가른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걸출한 활약을 남겼으나, 끝내 패전국의 적장으로 전락했다. 한니발은 로마 역사상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음에도 왜 끝내 로마에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나? 책은 이 의문에서 출발한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큰 장애물은 기록이 불충분하다는 사실이다. 한니발처럼 유명한 인물을 탐구하는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현존하는 기록만으로 한 사람의 생애를 당시처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아무리 세계사에 한획을 그은 인물이라도 결국 한니발은 패장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카르타고은 끝내 멸망했으나 로마는 훨씬 오래 지속했다. 한니발에 관한 당대 기록은 곧 적국이었던 로마와 로마 역사가들의 관점으로 쓰인 셈이다. 이 기록이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니발에 대한 바탕이 된다. 이 때문에 저자 필립 프리먼은 일부러 카르타고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애초에 남은 기록 자체가 충분치 않고, 그마저도 로마의 관점이 투영되었다. 이런 조건에서는 객관적인 서술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가 택한 차선책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책을 서술하여 지금껏 기울어진 역사의 무게추를 조금이라도 균형 잡는 것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는 것은 그만큼 로마란 나라가 숱한 세월 속에서 온갖 역경을 딛고 지속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하밀카르를 따라 어릴 때부터 로마에 대한 적게심을 불태운 한니발에게 선택지는 처음부터 두 개였다. 적국 로마가 멸망하근, 아니면 본국 카르타고가 멸망하든지. 제1차 포에니 전쟁 결과 막대한 부채를 떠앉았던 카르타고는 로마보다 우위에 있었던 상업과 교역을 바탕으로 또다시 로마를 위협할 세력으로 떠올랐다. 로마는 카르타고와 전쟁을 대비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엔 한니발이 있었음을, 한니발이 설마 지중해가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에서부터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진격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 자리 잡은 로마군 요새, 사군툼을 공격하면서 한니발은 기나긴 2차 포에니 전쟁의 막을 올렸다. 로마는 중요한 식민지 거점을 잃었지만 본국과 거리가 먼 곳이었다. 아직 수습할 틈은 있었다. 그러나 한니발은 로마의 예측을 뛰어 넘었다. 그는 5만 여명의 병력을 직접 이끌고 지금도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지중해성 기후에 익숙한 카르타고인들에겐 알프스 눈보라는 혹독했다. 산맥에 살던 원주민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절반이 넘는 병력을 희생하면서 결국 산맥을 넘었다. 엄청난 규모를 이끌면서 무모한 목표를 제시했던 한니발의 역량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로마 본토에서 벌어진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은 대승을 거뒀다. 한니발은 로마로 진격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역사의 수수께끼였다. 왜 한니발은 로마로 진격하지 않았는가? 첫째, 한니발이 이끄는 별동대는 공성전에 적합하지 않았다. 수비보다 공격 쪽에서 더 많은 병력과 물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니발은 멀리 떨어진 본국에서 충분한 보급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둘째, 카르타고 본국에서 충분한 원조가 이뤄지지 않았다. 애초에 상업을 우선시했던 카트타고는 전면전보다는 우호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교역 활동을 기대했다. 한니발이 기대한대로 스페인, 사르데냐, 시칠리아를 통제하여 로마의 숨통을 조을 역량도, 의도도 없었다. 셋째, 궤멸적이누피해를 입었지만 로마는 강화 협상에 임할 의지가 없었다. 한양과 국왕만을 노리고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진격했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종래의 관습과는 달리 로마군은 수도가 위험한 와중에도 쉬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한니발의 계산을 어그러뜨렸다.

결과론적으로 한니발은 실패했다. 그럼에도 왜 우리는 2천년이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한니발의 업적과 성취를 되돌아보는가? 숱한 전투에 승리했지만 단순히 그를 결국 전쟁에 패배한 장수로 치부할 수는 없다. 한니발이 취했던 온갖 허를 찌르는 계책(책의 7장 알프스 산맥부터 11장 티키누스강, 트레비아강, 아르노 습지, 트라시메노 호수에 이르기까지 잘 제시되어 있다)은 로마를 궁지에 몰아 넣었다. 본국으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음에도 적국을 멸망시킬 뻔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그리는 대로 한니발은 로마 멸망의 분기점에 서있던 인물이었다.

로마가 오늘날 서양 문명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한니발을 재평가하는 일은 곧 로마 역사를 재고찰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한니발과 그의 맞수였던 스키피오의 말년은 비극적이었으나, 한 인물의 생애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보다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 거기에서 무엇을 볼지는 각자 견해에 달린 것이겠으나 적어도 보아야 할 것은 확실히 가려야겠다. 우리가 역사를 탐구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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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 예술 중독자 현대 예술의 거장
메리 V. 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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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을 예술가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오로지 창작자나 연주자 혹은 공연자만이 예술가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1898~1979)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활약과 노력, 집념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20세기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 나라들이 말려든 세계 대전이 두 차례나 있었고, 19세기 후반 등장한 인상주의 이후 예술 사조는 전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변화했다. 단순한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각 사조가 추구한 신념은 저마다 달랐다. 예술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각기 다른 사조로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계에 등장했다.   


  예술가들은 많았고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들은 더욱 많았다. 애석한 일이지만 모든 예술가와 작품이 명성을 떨칠 수는 없었다. 부유한 실업가 가문의 일원이었던 페기는 큰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가문 이름을 내건 재단을 통해 당시의 예술 작품을 모아들였던 것처럼 혼란스러운 전쟁 중에도 예술품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에 한 점씩" 산 작품들은 뒤샹, 자코메티, 피카소, 미로, 콜더, 몬드리안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큰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설립한 구겐하임 재단, 그리고 그가 수집한 작품들은 뉴욕, 빌바오에 위치한 인상적인 건물 속에 자리를 잡았다. 반면 페기가 수집한 작품들은 전쟁의 참화를 피해 미국으로 옮겨졌다가 페기와 함께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페기의 열정적인 '예술 중독'이 없었다면 20세기 예술은 지금보다 훨씬 빈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동안 알려진 페기의 모습은 지나친 남성 편력과 행복하지 못했던 가정사가 부각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며, 그런 면모로 페기의 업적을 폄훼하는 건 부당하다. 시대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페기의 업적과 인생은 뭇 남성보다도 훨씬 진취적이고 역동적이었으나 당대에나 통용된 페기, 아니 여성을 향한 못마땅한 시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건 맞지 않은 일이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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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 - 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암실문고
토베 디틀레우센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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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책은 으레 주인공이 시련을 겪다가 결혼을 하며 행복한 인생을 맞이하는 걸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결혼이 어떻게 인생의 종착점일 수 있으며 행복만을 보증해줄 수 있을까. 넉넉하지 못하고 자식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부모 밑에서 성장한 어린 토베를 지탱했던 건 언젠가 시를 쓰겠다는 커다란 열망이었다. 시인이 되겠다는 그의 꿈은 마치 나침반처럼 항상 그 방향만을 가리키곤 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허드렛일을 전전하던 토베는 어머니보다 나이가 많은 비고라는 문학 평론가와 결혼했다. 첫눈에 빠진 사랑 앞에서 커다란 나이 차이는 그리 중요치 않았다. 결혼 후 마침내 꿈에 그리던 문학계에 가까워지고 자신의 인생 또한 더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을까?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온도를 잃고 냉각되는 것처럼 빠르게 결심한 비고와의 결혼은 금세 싸늘해지고 말았다. 어쩌면 토베가 사랑했던 것은 비고가 아니라 그의 문학성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피에트라는 젊은 남자와 불륜에 빠지지만 토베는 피에트에게 버림받고 말았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더이상 지속할 이유는 없었다. 


  비고와의 결혼을 정리한 후 토베는 에베라는 대학생을 선택했다. 비고에 비하면 에베는 평범한 남자였다. 평범함, 그게 토베가 두 번째 결혼을 택한 이유였다. 에베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이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에베는 토베가 외면하고 싶었던 정곡을 찌른다.


  [나는 요람 위로 몸을 굽히고 조그만 손가락들을 만지며 말한다. “이제 우리는 아버지고, 어머니고, 아이고, 그렇네요. 정상적인 보통 가족이 됐어요.” 그러자 에베가 묻는다. “왜 정상적인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당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데.” 그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이 되는 건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해 왔던 일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 속에서 찾아온 에베와의 두 번째 아이. 새로운 생명의 잉태가 언제나 축복할 일은 아니다. 토베가 원치 않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임신 중절을 통해 아이를 낳지 않는 걸 택하지만 당시 덴마크에서 낙태는 금지되어 있었다. 모임에서 알게된 의사 카를을 통해 겨우 낙태를 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토베는 온갖 약물에 중독되고 말았다. 토베 인생 마지막 남자였던 빅토르와 다시 결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미 약물에 '의존'하게 되어버린 토베는 더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시인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불법적인 일도,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아니건만 토베의 인생은 어느 순간부터 되돌릴 수 없는 수렁에 빠진 것만 같았다. 인생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녕 벗어날 수 없는 팔자라는 게 있는 걸까?


  얼마 전 발표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에르노에 비하면 토베 디틀라우센의 인지도는 훨씬 떨이질 지도 모르나 사실 내가 받은 충격은 더욱 강렬했다. 코펜하겐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작품은 앞선 작품들과는 달리 3년 전에야 영미권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고 한다. 위도가 높은 북유럽의 겨울은 유달리 길다. 토베의 인생은 마치 덴마크의 긴 겨울처럼 갈수록 어두워졌지만 겨울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건 아니다. 그의 작품이 가져다 준 봄이 작가가 죽고난지 한참 후라는 게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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