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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 - 예술 중독자 ㅣ 현대 예술의 거장
메리 V. 디어본 지음, 최일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평점 :
어떤 사람을 예술가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오로지 창작자나 연주자 혹은 공연자만이 예술가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1898~1979)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활약과 노력, 집념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20세기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온 나라들이 말려든 세계 대전이 두 차례나 있었고, 19세기 후반 등장한 인상주의 이후 예술 사조는 전례 없는 속도로 빠르게 변화했다. 단순한 유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각 사조가 추구한 신념은 저마다 달랐다. 예술가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각기 다른 사조로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는 것도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이처럼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계에 등장했다.
예술가들은 많았고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예술 작품들은 더욱 많았다. 애석한 일이지만 모든 예술가와 작품이 명성을 떨칠 수는 없었다. 부유한 실업가 가문의 일원이었던 페기는 큰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가문 이름을 내건 재단을 통해 당시의 예술 작품을 모아들였던 것처럼 혼란스러운 전쟁 중에도 예술품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하루에 한 점씩" 산 작품들은 뒤샹, 자코메티, 피카소, 미로, 콜더, 몬드리안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큰삼촌 솔로몬 구겐하임이 설립한 구겐하임 재단, 그리고 그가 수집한 작품들은 뉴욕, 빌바오에 위치한 인상적인 건물 속에 자리를 잡았다. 반면 페기가 수집한 작품들은 전쟁의 참화를 피해 미국으로 옮겨졌다가 페기와 함께 다시 유럽으로 돌아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은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열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페기의 열정적인 '예술 중독'이 없었다면 20세기 예술은 지금보다 훨씬 빈약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그동안 알려진 페기의 모습은 지나친 남성 편력과 행복하지 못했던 가정사가 부각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며, 그런 면모로 페기의 업적을 폄훼하는 건 부당하다. 시대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페기의 업적과 인생은 뭇 남성보다도 훨씬 진취적이고 역동적이었으나 당대에나 통용된 페기, 아니 여성을 향한 못마땅한 시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건 맞지 않은 일이다.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을 실제로 마주한다면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을유문화사의 서평단 모집에 당첨되어 이 책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